수학은 서구에서만 발달해온 학문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학생들이 의외로 많다. 하지만 우리 역사를 살펴보면 수학은 계속하여 창조적으로 발전해 왔으며 많은 성과를 이루어냈음을 알 수 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는 신라의 교육제도로 682년에 신문왕이 세운 국학에는 한명의 산학박사와 조교가 배치되었고, 철술, 구장, 삼개, 육장 등을 가르쳤다고 기술되어 있다. 이 중에서 삼개와 육장은 중국의 제도에도 없는 것이었다. 백제의 산학 또한 일본에 건너가 커다란 영향을 주었는데 특히 육장은 일본에서 천문과 역산을 맡는 관리의 교과서로 사용되었다. 고구려의 경우에는 373년인 소수림왕 3년에 중국의 제도를 본떠서 율령을 공포하여 계산술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기술관리를 둘 정도로 그 관심이 높았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산학을 담당하는 산사라는 관리가 있었다. 사실 당시에는 수학과 천문학 구별이 안 될 때이지만, 이러한 수학적 관심은 통일신라시대의 유물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 중 잘 알려진 불국사 다보탑은 1:2:4:8의 등비급수를 이용하여 건조되었다. 또한 불국사 석굴암의 경우 피타고라스학파가 스스로 부정한 무리수임에도 자랑스럽게 그들의 상징으로 삼았던 황금비율을 이용해 건축되었는데 이는 당시 통일신라의 수학적 능력이 얼마나 발전되어 있었던가를 쉽게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고대로부터 발전해온 우리의 선진 산학이 국력이 약해진 조선 후기 이후에 발전하지 못하고 서구의 산학에 자리를 내준 것은 안타까울 따름이다. 과학 사료보관에 대한 무관심과 일제의 식민화정책 때문에 산학이 발전할 수 없었고 우리의 자랑스러운 많은 자료가 훼손되었지만 아직 남아있는 건축물들만 보아도 우리민족이 수학을 얼마나 잘 이용해왔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수학문제가 어렵고 하기 싫어질 때 이러한 우리민족의 자랑스러운 수학의 역사를 한번 살펴보면 어떨까? 수학에 대한 새로운 흥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후배들 사이에서 세계적인 수학학자가 나오길 바래본다.
문의 (02)508-0959 이길동 수학전문 학원 이길동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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