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기획 연말연시

“만두를 빚으며 새해를 맞이합니다”

지역내일 2010-12-26
대치동에 사는 이현선(48)씨는 1월1일, 신정을 쇤다. 신정은 새해 첫날이면서 휴일이고, 음력 1월1일은 설이라는 온 국민의 공감대 속에 연말에 이씨가 명절을 운운하면 이상하게 이 사회의 소수자(?)와 같은 느낌을 받는다.  

연말이 다가오면 맏며느리인 이씨는 부모 형제 조카가 함께 모이는 명절 준비로 정신이 하나도 없다. 남들은 12월 마지막 밤에 해돋이를 보러 동해로 가기도 하고 제야 음악회에 참석하기도 하며 한 해의 마지막을 멋지게 장식한다는데 이씨는 꿈도 못 꿀 일이다.    

이씨 형제들도 남들과 다른 명절문화가 불편하기도 하고 도무지 신도 나지 않아 “우리도 음력설로 바꾸자”고 의견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평생 대의를 따르라”고 가르치시던 시어머님께서 뜻밖에도 이 일만은  “난 평생 양력설만 지내봐서 음력설은 설 갖지 않다. 내 살아생전에는 무조건 양력설을 쇤다”라며 비장하게 말씀하셔서 논의는 한 순간에 끝났다. 그래서 이씨네 시댁은 시대의 흐름도 배격한 체 양력설 고수(?)라는 유일한 가풍을 지키는 가정이 됐다.   

이씨 식구들은 비록 양력이지만 섣달그믐, 까치설날에 하루 종일 바쁘다. 대청소하랴, 설음식 장만하랴 할일이 많아 하루가 금방 간다. 아무리 서둘러도 텔레비전 방송 3사에서 연예인들이 줄줄이 상을 타며 감격해 마지않는 그 순간에도 설음식의 진수인 만두 빚기는 끝나지 않는다. 

그렇게 어수선하게 있다가 텔레비전에서 울리는 보신각 종소리를 들으며 새해를 맞이하면 순간적으로 어제와 오늘, 작년과 올해라는 시차 적응에 기분이 묘하다. 식구들은 처음 만나는 사람들처럼 “너 몇 살이지? 아빠 연세가 어찌 되시죠?”라며 서로 나이를 확인하곤 한다. 

이렇게 1박2일로 명절준비를 마치고 그릇그릇에 가득담긴 음식을 보면   ‘새해맞이 이벤트’한다는 사람들을 부러워했던 마음이 갑자기 사라진다. “12월 말이 얼마나 추워. 12월 31일이 별거야? 뭐하러 집 밖을 싸돌아다니며 유난을 떨어. 이렇게 온 식구가 함께 모여서 ‘내일과 내년’을 준비하는 것이 최고지”라고 말하는 이씨는 서둘러 잠자리에 들기 바쁘다. 내일 아침 떡국 끓일 일을 걱정하면서.
이희수리포터naheesoo@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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