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진단>‘남의 눈에 피눈물나게 하면’(신명식 2001.10.05)
신명식 정치행정 편집위원
우리 사회에서 ‘고비용 저효율’의 대표집단을 꼽으라면 단연 정치권이다. 워낙 유지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집단이다 보니 정치자금을 조달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는 강남지역 개발정보 같은 것을 이용해 정치자금을 만들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 때는 재벌로부터 헌금을 받고, 국세청에 그 내용을 통보해 세금납부에서 혜택을 주게 했다고 한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대형 국책사업을 이용해 헌금을 받은 후 시치미를 딱 떼는 방법을 썼다. 그는 수천 억의 비자금을 은닉했다 퇴임후 구속까지 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정치자금을 한 푼도 안 받았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그의 아들이 PCS 민방 케이블TV 인허가 과정에서 거액의 뇌물을 챙겼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안기부 예산을 꺼내 썼다는 혐의도 받았다.
한나라당은 지난 대선에서 국세청과 안기부 조직을 동원해 선거자금을 모았다는 민주당의 공세에 시달렸다.
정치자금을 조성하는 방법은 달랐지만 이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모두 ‘있는 자’나 기업의 돈을 받았다는 점이다.
벤처 예산지원 재검토 주장을 혼쭐낸 청와대
김대중 정권에서 여당 정치인들은 어떻게 정치자금을 마련할까. 아직까지 그 실상이 정확히 드러난 것은 없다. 그러나 정현준 진승현 이용호게이트 등 이른바 권력형 비리사건에도 공통점이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코스닥을 이용한 주가조작이다. 힘있는 기관의 비호의혹도 실과 바늘처럼 붙어 다닌다. 주가조작으로 만든 자금이 정관계로 유입됐다는 의심도 받고 있다. 이런 의혹사건의 피해자는 힘 없고, 돈도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G&G그룹 이용호씨가 대단한 첨단금융기법을 동원한 것도 아니다. 주가조작, 불법대출, 차명계좌, 특혜성 부채탕감, 내부자거래, 분식회계, 자금세탁 등 관계기관이 조금만 신경을 썼으면 사전에 막을 수 있는 것이었다.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을까.
정부여당은 98년부터 “제조업과 벤처는 경제성장의 쌍두마차”라고 주장하며 벤처육성책을 잇따라 내놓았다. 2년 전 기획예산처의 한 국장은 새해 예산운용에 관한 세미나에서 ‘벤처에 대한 예산지원 방안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가 청와대 비서관에게 혼쭐나기도 했다. 벤처는 경제회복의 상징이었고, 실업난 해소의 효과적 해결책이었다. 김대중 정권하에서 벤처를 폄하하는 발언은 용납되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머니 게임’에 열중하는 벤처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1년내 코스닥 등록예정’이라는 말 한마디로 수십억 수백억원 규모의 자본금을 모으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주가가 수십배 수백배 뛰는 벤처기업이 속출했다.
98년 증권가에는 “K고등학교 동문들이 코스닥에서 잇따라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이용호 게이트에서 등장한 ‘K상고’는 K고 인맥에 비하면 ‘피라미’ 수준이란다. 심지어 ‘조폭’까지 코스닥 열풍에 끼여들어 크게 한몫 잡았다고 한다. 기자가 이러한 설들을 확인한 바로는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줄잇는 ‘…게이트’권력형 비리의 상징, 유착고리 끊어야
코스닥은 졸지에 직장에서 밀려난 40․50대 가장의 피눈물 같은 명예퇴직금을 빨아들였다. 주부들이 알뜰살뜰 모은 곗돈도 빨아들였다. 집 팔고, 전셋돈 줄여 재테크할 곳을 기웃거리던 신세대부부들의 돈도 빨아들였다. 월급쟁이의 상여금도 한입에 삼켰다. 코스닥이란 구멍이 얼마나 큰지 한없이 빨아들였다.
고작 3년이 안돼 벤처에 거품이 걷히고 보니 코스닥은 50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 수백억원을 끌어모은 기업 상당수가 수년이 지나도록 영업이익을 못 내고 있다.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피 같고 살 같은 돈을 ‘막차’에 처박았던 중산․서민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는 오늘이다.
경제 관료들은 “미국 IT산업의 부진으로 코스닥의 침체는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전혀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사이비 벤처’와 조폭들이 주가조작을 일삼으며 순진한 중산․서민층의 주머니를 털었다면 이건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이렇게 번 돈이 정관계로 흘러 들어갔다면 더더욱 그렇다.
정부는 “금융비리사건이 터질 때마다 도매금으로 매도당해 기술개발에 필요한 자금조달이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건전한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 앞에 머리를 숙여야 한다. 특별감찰이든 특별검사든 국정조사든 뭐든 좋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사이비 벤처- 사이비 금융전문가- 조폭- 정관계 비호세력들이 얽혀있는 유착고리를 끊어내 ‘…게이트’를 뿌리뽑아야 한다.
‘…게이트’는 김대중 정권 부패사건의 특징인데, 민심을 계속 외면한다면 딱 맞는 우리 속담이 있다.
“남의 눈에 피눈물나게 하면 언젠가는 제 눈에 피눈물난다.”
신명식 정치행정 편집위원
내일진단>
신명식 정치행정 편집위원
우리 사회에서 ‘고비용 저효율’의 대표집단을 꼽으라면 단연 정치권이다. 워낙 유지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집단이다 보니 정치자금을 조달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는 강남지역 개발정보 같은 것을 이용해 정치자금을 만들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 때는 재벌로부터 헌금을 받고, 국세청에 그 내용을 통보해 세금납부에서 혜택을 주게 했다고 한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대형 국책사업을 이용해 헌금을 받은 후 시치미를 딱 떼는 방법을 썼다. 그는 수천 억의 비자금을 은닉했다 퇴임후 구속까지 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정치자금을 한 푼도 안 받았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그의 아들이 PCS 민방 케이블TV 인허가 과정에서 거액의 뇌물을 챙겼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안기부 예산을 꺼내 썼다는 혐의도 받았다.
한나라당은 지난 대선에서 국세청과 안기부 조직을 동원해 선거자금을 모았다는 민주당의 공세에 시달렸다.
정치자금을 조성하는 방법은 달랐지만 이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모두 ‘있는 자’나 기업의 돈을 받았다는 점이다.
벤처 예산지원 재검토 주장을 혼쭐낸 청와대
김대중 정권에서 여당 정치인들은 어떻게 정치자금을 마련할까. 아직까지 그 실상이 정확히 드러난 것은 없다. 그러나 정현준 진승현 이용호게이트 등 이른바 권력형 비리사건에도 공통점이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코스닥을 이용한 주가조작이다. 힘있는 기관의 비호의혹도 실과 바늘처럼 붙어 다닌다. 주가조작으로 만든 자금이 정관계로 유입됐다는 의심도 받고 있다. 이런 의혹사건의 피해자는 힘 없고, 돈도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G&G그룹 이용호씨가 대단한 첨단금융기법을 동원한 것도 아니다. 주가조작, 불법대출, 차명계좌, 특혜성 부채탕감, 내부자거래, 분식회계, 자금세탁 등 관계기관이 조금만 신경을 썼으면 사전에 막을 수 있는 것이었다.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을까.
정부여당은 98년부터 “제조업과 벤처는 경제성장의 쌍두마차”라고 주장하며 벤처육성책을 잇따라 내놓았다. 2년 전 기획예산처의 한 국장은 새해 예산운용에 관한 세미나에서 ‘벤처에 대한 예산지원 방안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가 청와대 비서관에게 혼쭐나기도 했다. 벤처는 경제회복의 상징이었고, 실업난 해소의 효과적 해결책이었다. 김대중 정권하에서 벤처를 폄하하는 발언은 용납되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머니 게임’에 열중하는 벤처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1년내 코스닥 등록예정’이라는 말 한마디로 수십억 수백억원 규모의 자본금을 모으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주가가 수십배 수백배 뛰는 벤처기업이 속출했다.
98년 증권가에는 “K고등학교 동문들이 코스닥에서 잇따라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이용호 게이트에서 등장한 ‘K상고’는 K고 인맥에 비하면 ‘피라미’ 수준이란다. 심지어 ‘조폭’까지 코스닥 열풍에 끼여들어 크게 한몫 잡았다고 한다. 기자가 이러한 설들을 확인한 바로는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줄잇는 ‘…게이트’권력형 비리의 상징, 유착고리 끊어야
코스닥은 졸지에 직장에서 밀려난 40․50대 가장의 피눈물 같은 명예퇴직금을 빨아들였다. 주부들이 알뜰살뜰 모은 곗돈도 빨아들였다. 집 팔고, 전셋돈 줄여 재테크할 곳을 기웃거리던 신세대부부들의 돈도 빨아들였다. 월급쟁이의 상여금도 한입에 삼켰다. 코스닥이란 구멍이 얼마나 큰지 한없이 빨아들였다.
고작 3년이 안돼 벤처에 거품이 걷히고 보니 코스닥은 50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 수백억원을 끌어모은 기업 상당수가 수년이 지나도록 영업이익을 못 내고 있다.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피 같고 살 같은 돈을 ‘막차’에 처박았던 중산․서민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는 오늘이다.
경제 관료들은 “미국 IT산업의 부진으로 코스닥의 침체는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전혀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사이비 벤처’와 조폭들이 주가조작을 일삼으며 순진한 중산․서민층의 주머니를 털었다면 이건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이렇게 번 돈이 정관계로 흘러 들어갔다면 더더욱 그렇다.
정부는 “금융비리사건이 터질 때마다 도매금으로 매도당해 기술개발에 필요한 자금조달이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건전한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 앞에 머리를 숙여야 한다. 특별감찰이든 특별검사든 국정조사든 뭐든 좋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사이비 벤처- 사이비 금융전문가- 조폭- 정관계 비호세력들이 얽혀있는 유착고리를 끊어내 ‘…게이트’를 뿌리뽑아야 한다.
‘…게이트’는 김대중 정권 부패사건의 특징인데, 민심을 계속 외면한다면 딱 맞는 우리 속담이 있다.
“남의 눈에 피눈물나게 하면 언젠가는 제 눈에 피눈물난다.”
신명식 정치행정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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