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 제6회 서울 국제 미디어아트 비엔날레
트러스트(Trust), 미디어와 현대인의 관계와 소통
총 21개국 신진 작가 45팀 참여, 사색과 토론의 장으로 거듭나
지역내일
2010-10-27
오랜만에 찾은 시청역, 푸르른 잔디가 펼쳐진 시청 앞 광장에서는 G20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하는 새마을운동회원들의 플래카드 캠페인이 한창이었다. 횡단보도를 건너 덕수궁 앞에 서자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4대 종단 성직자들의 단식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순간 외침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때마침 덕수궁 수문장 교대식이 치러졌다. 보통 사람 키의 두 배쯤 될 긴 깃발을 휘날리며 전통의상을 입은 군사들이 돌담길을 지나 줄지어 걸어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또 그 옆 도로변에는 어린이를 비롯해 외국인 관광객들이 우리나라 전통의상을 입어볼 수 있는 무료체험의 장이 펼쳐지고 있었다.
각자의 의지와 삶이 뒤엉켜 복잡하게만 느껴진 도로를 지나 정동길로 들어서자 언제 우리네 삶이 그리도 분주했냐는 듯 하늘을 가린 살짝 가을이 물든 가로수와 고즈넉한 돌담길이 나를 안아주었다. 바로 서울 국제 미디어아트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는 서울시립미술관으로 가는 길이었다.
트러스트(Trust), 미디어 문화도시의 주제가 되다.
미디어시티 서울 안내책자를 받아들고 제1전시실로 들어서자 한쪽에서 도슨트의 안내가 진행되고 있었다. 환한 웃음과 알기 쉬운 설명으로 일행 앞에서 작품설명을 하고 있는 도슨트의 모습에 반해 나는 얼른 무리 속에 섞였다.
미디어시티 서울은 2000년에 시작해 격년제로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최하는 서울의 유일한 국제비엔날레이다. 미디어 시티 서울은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변화되고 있는 동시대 미술의 양상을 세계 각국의 미디어아트를 통해 제시하고 있으며 첨단 미디어 문화 도시로서 서울을 자리매김하는 예술 행사로 이어져왔다고 한다.
올해로 6회째를 맞는 미디어시티 서울의 주제는 트러스트(Trust)다. 이 트러스트는 선의를 기반으로 하는 만큼 의심의 여지를 내포하는 애매모호한 개념이다.
‘미디어의 확장된 형태는 정보를 왜곡하고 메시지를 불투명하게 한다’는 전시의 의도대로 관람객들은 ‘광고는 일상생활이 되었고, 고독감은 집단화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상상속의 도시 ‘서경’이 만들어지고, 마르크스 동상 앞에서 항의하는 중국인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메우는 등 작품들은 끊임없이 재정의 되고 변화하는 지구촌 공동체의 의미와 이러한 관점에서 본 이야기, 역사, 그리고 신화는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더불어 왜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지, 그리고 동시대의 경험을 좀 더 인간적이고 개인적인 시각에서 공유하면 어떻겠냐고 제의하는 듯 했다.
우리시대 최고의 화두, 종교, 인종, 전쟁
작품 설명 중에 도슨트는 종교, 인종, 전쟁을 우리시대 최고의 화두라고 했다. 전시를 모두 감상하고 난 후, 혹시나 그녀가 지적한 종교, 인종, 전쟁에 영향을 받지 않은 작품이 있지 않았을까 돌이켜 생각해 봤지만 역시 없었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로 손꼽히는 ‘킹덤 데이’. 2009년 천재에게 수여된다는 맥아더 상을 수상한 미국 작가 마크 브래드포드는 그의 작품 ‘킹덤 데이’를 통해 미국이라는 거대한 사회에서 여전히 사회 경제적으로 소외된 약자들의 커뮤니티를 다루고 있다. 1960년대 인권운동부터 현재 이민자 문제와 관련된 사회운동을 암시하는 이미지와 오브제로 작품을 구성한 것이다. 캘리포니아 남부의 다양한 문화 지형학적 구조를 연구해온 작가는 거리에서 주워 모은 포스터, 광고전단, 그라피티 스텐실과 로고 같은 대중적이고 일상적인 오브제들을 콜라주 작품으로 구성하고 있는데 이는 마치 20세기 추상화를 연상케 했다.
전시 중 눈길을 끌었던 또 다른 작품 ‘신도안_삼신당’. 칸의 남자, 박찬욱 감독의 동생이자 비디오작가이며 비평가인 박찬경의 작품이다. 그는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이슈를 끊임없이 다루며 사진과 다큐멘터리 그리고 비디오를 이용해 작품 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그의 작품 ‘신도안_삼신당’은 원래 45분 분량의 중편영화에 준하는 작품이었으나 이번 전시에서는 여섯 에피소드가 유기적으로 흘러가는 형식의 시퀀스로 재구성해 개별적으로 전시되었다. 그의 작품은 ‘새 도읍’이라는 뜻의 ‘신도안’이 임진왜란과 일제 강점기처럼 극심한 시대적 혼란기를 거치며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 그리고 퇴락한 성지에 여전히 뿌리내린 생존자들의 모습은 어떠했는지를 통해 냉전과 분단, 정치 종교적 시대정신을 발산하고 있었다.
박수진 리포터 icooc19@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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