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도 벼룩시장이 열린다. 하루 이용객이 5천 명, 한 달 이용객이 2만 명에 달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얼마 전까지도 서초구청 광장에서 열리던 서초벼룩시장이 보다 넓고 쇼핑하기 좋은 곳으로 장소를 옮겼다. 지난 4월부터 사당역과 이수역 사이 1km 구간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열리고 있다. ‘놀토’에 특별한 계획이 없다면 아이들과 함께 경제교육도 할 겸 서초벼룩시장에 나가보자. 콘서트도 보고, 예술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 백화점이나 마트와는 다른 벼룩시장 특유의 풍경에 아이들도 시간가는 줄 모른다.
흰 구름 두둥실 가을하늘은 높고 햇살은 따갑다. 온 가족이 오랜만에 의기투합해 ‘놀토’ 나들이 장소로 벼룩시장이 정해졌다. 아이들은 벼룩시장에 가면 신기한 물건이 많을 것 같다며 서둘러 가자고 보챈다. 기억은 가물거리지만 언젠가 가봤던 황학동 벼룩시장을 연상하며 길을 나섰다.
오전 11시가 채 안 된 시간인데 서초벼룩시장엔 사람들로 북적였다. 시장통은 왁자지껄 시끄러운데 어디선가 멀리서 생음악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은 바쁜 일상과는 달리 느릿느릿 걸으며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좌판에 펼쳐진 물건들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다.
“1000원이요, 1000원! 골라 골라 뭐든지 1000원!!” 남대문 시장에서나 들었을 멘트지만 역시 정겹다. 벼룩시장은 뭐니 뭐니해도 물건 값이 싸다는 게 매력이다. 무더기로 옷을 쌓아놓고 1000원을 외치는 상인 주변에는 ‘어디 건질 게 없나’ 이것저것 뒤적이며 정신없이 옷을 고르는 사람들로 진풍경이 펼쳐진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서초벼룩시장의 대부분은 구제 옷들로 채워져 있다. 이 많은 옷들이 다 어디에서 왔을까. 여름옷에서부터 한겨울 모피코트까지 잘만 찾아보면 명품들도 보이고 옥석을 가릴 재주가 있는 이들은 보물찾기 놀이하듯 시장 속에 숨어있는 진주를 찾아보는 것도 재밌겠다.
서초벼룩시장은 ‘아나바다’를 생활화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곳인 만큼 무엇보다 집에서 안 입는 옷들을 직접 가지고 나와 파는 이들이 이외로 많다. 그야말로 장사로 나선 상인들도 있지만 하루 재미 삼아 나온 아줌마, 아저씨도 있고, 자매가 나란히 앉아 팔기도 하고 연인끼리 데이트 하며 좌판을 벌인 경우도 있다.
방배동에 사는 김선희(29세, 미혼)씨는 집에서 거추장스럽게 옷장만 채우고 있는 안 입는 옷이며 마트에서 끼워준 모기향, 보지 않는 책 등을 가지고 나왔다. 미국에서 오래 살며 창고 세일에 익숙한 탓인지 벼룩시장 나오는 게 자연스러웠다고 말한다. 김씨는 갖고 온 물건들은 전부 새 것까지도 1000원만 받고 기부하는 기분으로 팔아서 그런지 다른 데보다 장사가 잘 된다며 웃는다. 신림동에 사는 주부 박미경(35세)씨는 여섯 살 아들이 아기 때 입었던 옷을 정리하기 위해 나왔다. 아기 때부터 차곡차곡 모아둔 내복이며 외출복, 신발 등 깨끗하게 입혀서 버리기는 아까운 것들만 골라서 1천 원, 2천 원에 팔고 있다. 그냥 주는 거나 다름없는 옷 가격에 유모차를 끌고 나온 아기 엄마들이 신나서 옷을 고른다.
주부들은 매번 유행이 지난 옷이나 작아진 옷가지, 아이들이 가지고 놀지 않는 장난감이며 책들을 그냥 재활용함에 넣어버리면서도 한편으론 아까운 생각이 든다. 미국에 있을 때 자신의 집 앞에 쓸 수 있는 것은 모두 -숟가락 하나, 컵 하나, 몽당연필까지-창고 세일에 내놓는 것을 보며 그들의 문화에 새삼 놀랐던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에도 누구나 이런 곳에 나와 파는 것이 부끄럽지 않고 당연한 문화가 된다면 여러 가지로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벼룩시장에 활기 불어넣는 젊음의 콘서트
생음악이 흐르는 곳을 찾아 걷다 보니 무대가 보였다. 방배동 노인종합복지관 앞에 마련한
무대에는 한서대학교 실용음악과 학생들로 구성된 보컬 팀의 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객석이랄 것도 없이 몇 개의 파라솔이 전부였지만 그들은 벼룩시장 전체를 객석으로 보고 연주하고 노래하는 듯했다. 벼룩시장에서 열린 아마추어 가수 지망생들의 ‘젊음의 행진’을 연상케 하는 콘서트가 지나가는 행인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파라솔에 잠시 앉아 쉬면서 보컬의 노래에 박수를 보내는 시민들과 만화 삼매경에 빠진 아이들의 모습이 사뭇 대비된다.
서초구에서는 서초토요벼룩시장에서 공연을 원하는 이들에게 무대를 오픈하고 있다. 매주 벼룩시장 인근 길거리나 시장 안 곳곳에서 10시 30분부터 한 시간 동안 콘서트가 열린다.
“이 동네 친구 만나러 왔다가 시간이 남아서 들렸는데 노래도 들을 수 있고 좋네요.”
2천원 주고 티셔츠 2개, 유명 메이커 운동화 2켤레, 겨울 외투까지 샀다며 검정 비닐 속의 옷가지를 보여주는 50대 아주머니. 강동구에 산다는 이 아주머니는 백화점 갔으면 10만원이 훌쩍 넘었을 운동화를 2만원 주고 샀다며 좋은 물건을 저렴한 가격에 사니 대박이라고 활짝 웃는다.
한편 콘서트장 옆 도로에선 창작예술체험 프로그램이 한창 진행 중이다. 어린이들이 군데군데 앉아 원하는 작품을 골라 강사의 도움을 받으며 제법 멋진 작품들을 만들고 있다. 창의력 클레이, 누름꽃 예술작품 만들기, 친환경 비누만들기, 말도로프 인형만들기 등 이곳에선 격주로 가족과 연인, 어린이들을 위한 ‘나도 예술가 창작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다.
벼룩시장 주변 아파트에 산다는 김영미(42세, 방배 4동)씨는 “재미삼아 아이들 데리고 자주 온다”며 “1만원만 주면 아이들 대상 체험 프로그램 3~4개는 할 수 있다”고 전한다.
체험 프로그램이 열리는 이곳은 강사들의 지도아래 아이들이 만들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주부들은 홀가분하게 시장구경에 나선다. 아이들도 좋고 장보는 주부들도 좋고 일석이조의 아이디어에 박수를 보낸다.
질퍽한 삶 묻어나는 시장터에서
돌아가는 길에 아이들은 책과 DVD도 고르고, 비올 때 신을 꽃무늬 장화도 3천 원 주고 샀다. 축구공은 공짜로 얻었다. 휘슬러 압력솥이 눈에 띄어 가격을 물어보니 매장에서 60만원하는 데 20만원에 줄 테니 가져가란다. 중고 명품가방에서 짝퉁까지, 이곳에선 아무리 비싼 명품 가방도 1만 원에서 5만 원이면 해결된다.
벼룩시장은 중고품 수집상들이 전국 구석구석을 벼룩 뛰듯 돌아다니며 희귀한 물건을 모아온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오래되고 망가진 물건들도 즐비하고, 추억이 묻어나는 못난이 인형도 보이고, 낡은 가방과 신발들, ‘뭐할 때 쓰는 물건인고’ 하는 정체 모를 물건들도 간혹 보인다. 황학동 벼룩시장에 비해 오래된 골동품이나 빛바랜 추억 속의 물건들이 많지 않은 것이 아쉽다. 하지만 시장통 안에서 만난 동네 연극인들의 즉석 퍼포먼스와 빨간색 의상에 갖가지 물건을 매달아 시선을 집중시키는 벼룩시장 명물 할아버지의 등장은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어주고 있었다. 벼룩시장이란 자고로 추억의 보물창고이면서 다양한 사람들의 순수한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는 살아있는 삶의 현장이 아닐까.
판매자 참여 신청
방배동 서초토요벼룩시장은 토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사당역에서 이수역 사이의 복개도로 1km 구간에서 매주 열린다. 서초구에서는 일반인들에게 벼룩시장 판매석을 무료로 오픈하고 있다. 판매자로 참여를 원하는 이들은 월요일 오전 10시부터 수요일 오후 6시까지 서초구청 홈페이지(www.seocho.go.kr)에서 신청을 하면 선착순으로 자리배정을 받을 수 있다.
콘서트 및 체험프로그램 안내
서초구청 문화행정과(02-2155-6222~6)에서는 서초토요벼룩시장 길거리 콘서트에 참여를 원하는 개인이나 동호회, 공연단체의 신청을 받고 있다. 격주로 열리고 있는 콘서트는 10월 23일 ‘월드뮤직 리듬페스티벌(인디벤드 COARTS)’, 11월 13일 ‘발걸음의 에메랄드캐슬과 함께’ 등의 공연이 예정돼 있다.
매월 둘째 넷째주 토요일 오전 10:30~12:00 사이에는 다양한 예술품을 직접 만들어 보는 “나도 예술가” 체험 프로그램이 열린다. 매주 친환경 미용비누만들기(참여비 3000원), 격주로 발도르프 인형만들기(참여비 5,000원)가 열리며 11월 13일 ‘마술체험(체험비 5,000원), 12월 11일 ’우노건강 기능 뜸(참가비 5,000원)’ 등 이외에도 다양한 체험활동이 계속될 예정이다.
어린이 벼룩시장 안내
서초토요벼룩시장에는 오는 23일 어린이 ? 청소년이 직접 참여하여 물건을 팔 수 있는 체험공간이 마련된다. 서초구자원봉사센터 홈페이지 www.seochov.or.kr 에서 신청을 받으며 서초구자원봉사센터(02-573-9251)에서 담당하고 있다. 이날 벼룩시장 판매 수익금의 50%는 지역의 소외된 이웃들에게 기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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