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오랜만에 온 친구를 접대(?)하기 위해 나간 대학로. 학생운동이 한창이던 80년대의 대학로는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던 거리였다. 7,8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던 우리에겐 53년간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는 학림다방 외에는 모든 풍광이 다 바뀌어 낯설기만 했다. 하지만 거리를 걷다보니 어렴풋이 남아있는 추억들이 시계를 거꾸로 돌리 듯 신기하게 되살아났다. 그 날, 대학로에서 만난 한편의 연극은 무심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직은 세상이 아름답다’는 메시지를 선물했다.
손때 묻은 세탁소와 소박한 동네 모습 그대로
최근엔 세탁편의점으로 점차 변화하고 있지만, 그래도 동네 한 켠에는 치익~칙 수증기를 내뿜는 스팀다리미와 함께 허름한 세탁소가 남아 있다. 대를 이어가며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오아시스세탁소. 그러던 어느 날, 단골손님과 다름없는 몇몇 사람들이 오아시스세탁소에 보물이 숨겨져 있다고 오인하고 그것을 찾기 위해 들이닥치면서 이 연극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창작극인 <오아시스세탁소 습격사건>은 2005년, 초연 이후 30개월 동안 11만여 명의 관객이 찾아와 ‘100석 소극장의 기적’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또 남녀노소는 물론 친구, 연인, 가족 누구와 함께 관람해도 공감할 수 있는 대학로의 대표적인 연극으로 자리매김했다. ‘오아시스 극장’의 무대는 로비에서부터 소박한 우리네 거리모습을 그대로 옮겨 놓았고, 입구 또한 ‘오아시스 세탁’이라고 쓰인 세탁소 문을 열고 입장하도록 꾸며져 작은 공간이나마 최대한 전용극장의 이점을 활용했다. 이로써 관객들은 입구에서부터 손때 묻은 세탁소와 정겨운 동네의 모습을 더욱 리얼하게 느낄 수 있다.
오아시스세탁소에 걸려있는 수백 벌의 옷들 하나하나에는 소시민의 삶이 담겨있다. 어수룩한 광대 세탁배달부 염소팔, 40년 전에 어머니가 맡겼던 세탁물을 찾아 희망을 갖게 되는 어느 불효자, 멀쩡한 옷을 찢고 리폼 해 문양을 넣는 신세대 여학생, 명품 마니아족 나가요 아가씨, 그럴듯한 무대의상을 빌리고자 간청하는 가난한 연극배우 등.
사람의 마음도 세탁해 줍니다
30년 세탁장이 강태국은 “우리가 진짜 세탁해야 할 것은 옷이 아니야, 바로 이 옷들의 주인인 그 사람들의 마음이라구!”라며 외친다. 단순히 코믹한 에피소드만 있는 것이 아닌 ‘감동과 교훈’이 살아있는 서민들의 이야기여서 더욱 가슴에 와 닿았다.
5년 전, 대학로에 개업한 이 독특한 세탁소는 사람의 마음까지 빨겠다고 열심히 달려왔다. 2010년 현재 25만 명의 관객을 돌파하며 올해 말까지 계속 공연할 예정이다. 특이한 간판과 매표소, 로비를 지나 공연장 안으로 들어서면 천정 곳곳에 널린 수백 벌의 옷가지들과 스팀다리미, 재봉틀 등 세심하게 신경 쓴 소품과 무대는 영락없이 어느 동네의 한 세탁소를 떠오르게 한다. 관객은 어느새 그 곳에 모인 주민이 되고, 무대와 객석의 경계는 허물어진다.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냈던 진짜배기 세탁장이 강태국(조준형 분)의 실감나는 연기는 무척 감동적이었다. 주인공 조준형씨는 초연 때부터 ‘오아시스세탁소’와 함께 하며 1600회의 공연을 한회도 쉬지 않고 열연했다고 한다. 1시간 40분간의 흥미진진한 공연이 끝났을 때 마지막 장면에서 수많은 비눗방울에 휩싸여 하얗게 세탁된(?) 사람들을 보면서 그 만화적 상상력의 구현에 박수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 그 날은 공연 5주년이 되는 때여서 추첨을 통해 30여명에게 기념품도 나눠주고 관객들 전원에게 생일 떡을 선사하기도 했다. 어느새 그들과 함께 몸과 마음이 깨끗이 세탁된 느낌으로 공연장을 나오니 대학로의 별은 유난히 총총했다.
김선미 리포터 srakim20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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