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절친하다고 속여 8억원 편취 … ‘블랙머니’ 등 사기소재도 다양화
한 사람이 허공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외친다. “저기에 황금으로 가득찬 성이 보이지 않는가. 내 것이다.” 다른 한 사람이 탐욕의 눈길로 가리킨 곳을 보니 진짜 황금성이 어른거린다. 이때 먼저 외쳤던 자가 다가와 속삭인다. “저 성까지 갈 택시비가 없다. 택시비만 대면 큰방 하나에 가득찬 황금을 다 주겠다.” 사칭성 사기범들은 ‘택시비를 대라는 황금성주’이다. 사기범은 언제나 ‘황금성의 신기루’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데서 작전을 시작한다. 탐욕이 강한 사람은 그 신기루에 마음에 빼앗기고, 그 순간 먹이가 된다.
사기범은 법적으로 처벌받지만 사기를 당한 사람도 주변으로부터 변변치 못한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추석명절을 맞아, ‘저런 말에도 속아 넘어가나’ 싶은 사기사건의 ‘신기루’를 모아보았다. 권력실세 재벌오너 비밀기관, 요즘은 블랙머니와 인터넷상의 가상인물까지 신기루를 빚어낸다.
◆ ‘청와대 실세’는 사기꾼이 먼저 안다 = 정권 3년차는 권력층 사칭 사기범들이 법정에 서는 시즌이다. 새 정권이 들어설 때 권력실세와 가깝다며 설치다가 ‘실패한 사기범’들이 이때쯤 줄줄이 법의 심판을 받는다.
이명박 대통령과 나이가 비슷한 분당의 한 산악회 회장은 두명의 여성에게 “주공 사장이 되길 바라는 임원이 판교의 택지를 아주 헐값에 사라고 한다”고 속여 8억원을 편취했다.
정권의 위세가 가장 강력했던 2008년 4월경의 일이다. 그는 “대통령과 절친한 대학동창인데, 이를 알고 주택공사 임원이 줄을 선다”고 사칭했는데, 이것이 들통나 올해 4월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불교계 모 종파 신도회장이 7월 하순 검찰에 구속됐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의 친인척 및 청와대 고위 관계자와 친분이 있다”고 속여 5억원을 챙긴 혐의때문이다.
지난해에는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에게 부탁해 G20 정상회의 홍보기획단장을 시켜주겠다”며 3000만원을 가로챈 혐의도 받고 있다. 지금은 물러난 ‘이동관 수석’은 한때 최고의 실세반열에 올랐던 인물, 사칭사건의 감초였다.
사기범들의 둔갑술에 청와대의 권력실세는 단골메뉴다. 누가 권력실세인지 알려면 사기범들이 누구를 사칭했는지를 보면 안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다.
◆ 전화 한통이면 들통날 비밀기관 요원 = 7월 하순, 서울 중심가의 숙박비 24만원짜리 초호화 호텔에서 3년 동안 머무르며 호텔직원들에게 ‘명품사모님’이라 불렸던 김 모씨가 구속됐다. 김씨는 전직 대통령들이 숨겨놓은 재산을 찾아내 정부에 반환하는 일을 하는 청와대 비밀요원으로 행세했다. 자신의 휴대전화에 담긴 금괴 동영상을 보여주며 “숨겨진 비자금을 찾으면 15%를 환원해 준다”고 속였다. 비자금 환수비용을 대란다고 8억4000만원을 준 피해자도 있었다.
김씨는 전세계 유명인사들의 전화번호를 기록한 수첩을 보여주며 피해자들에게 신기루를 만들었다.
신 모씨는 ‘전현직 대통령의 비자금을 찾는’ 건국기념사업회 이사 명함을 돌렸다.
경찰청 외사과 실장으로 행세한 박 모씨 등 3명이 한 조로 작전을 폈다. 상당한 자금을 가지고 있는 김 모 여인에게 접근한 이들은 5억원을 빌려 5일만에 그대로 돌려줬다. 사업회 사무실까지 보여주며 믿음을 얻는데 성공하자, 석달 후에 본공사에 착수했다.
이들은 ‘30억원을 빌려주면 일주일후에 60억원을 돌려준다’고 김 여인의 탐욕에 불을 질렀다. 29억원을 송금받은 신씨는 올해 1월 5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청와대에 하명과장이란 직책은 없다. 올 6월 징역형이 선고된 김 모씨는 청와대 하명과장, 전 모 여인은 전직대통령비자금관리자 그리고 이 모씨는 미국 CIA요원으로 위장하고 경기도 일산 아파트건설부지 매입을 추진해주겠다며 2억2000만원을 사취했다.
청와대에 대표전화(02-770-0011) 한통이면 확인할 수 있는 ‘신기루’에 눈속임을 당한 경우다.
◆ ‘정몽구회장 이복동생’도 출현= 사기범들이 ‘황금성주’로 위장할 때 재벌 오너를 지나칠 리 없다.
정 모씨는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의 이복동생’을 사칭했다가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재미교포인 피해자에게 ‘정몽구 회장이 보내온 편지’와 ‘본인 정몽구는 현금 17억원을 보관하였기에 2004년 12월 23일 현대차본사 회장실에서 지급할 것임을 서명날인합니다’라는 현금보관증을 보여주었다.
자신을 ‘고 정주영 회장의 가족이면사 때문에 정몽구 회장이 챙겨줄 수밖에 없는 불우한 사람’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덫에 빠진 피해자는 그가 “박정희 전 대통령 아들 지만씨 결혼축의금이 필요하다”며 요구한 1000만원 등 모두 7000만원을 주었다가 뒤늦게 사기당한 것을 알았다.
임 모씨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회장의 비자금 관리자’를 자처하면서 영락교회유지재단의 토지를 둘러싼 사기를 벌여 9월 초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길모씨는 ‘우미건설 회장의 고철폐기물 처리 대리인’이라며 피해자를 이 회사 8층 접견실로 불러들이는 대담한 수법을 썼다. 공범은 이 회사 과장 명함을 들고 나와 길씨의 말을 보증하게 해 4000만원을 편취했다.
올해 4월 징역 2년이 선고된 이 모씨는 ‘부친은 정보사령관을 역임한 대한항공 2대 주주이고 큰형은 고려제분 대표이사, 작은 형수는 국회의원 딸’이라고 속였다. 자신은 무엇으로 위장했을까.
‘부친으로부터 상속받을 재산이 400억원인, 정관계 고위층과 친분있는 재벌 2세’가 그의 신기루였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과 친하고, 박노빈 삼성에버랜드 사장, 박재완 청와대 수석,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과도 만나는 사이라고 정재계의 내로라하는 사람은 다 끌어들였다.
그가 같이 사업을 하자며 “수익금이 나면 투자금을 먼저 줄테니, 사무실 보증금과 인테리어비용을 달라”고 하자 박 모씨는 5000만원을 넘겨주었다. 재벌 2세가 사무실 보증금이 없다고 대신 내달라고 한, ‘택시비가 없는 황금성주’의 전형적인 사칭유형이지만, 피해자는 모두 1억 6000만원을 뜯기고 나서야 후회했다.
40대 여성 최 모씨는 “모 건설회사 회장이 부인과 사별한 후 나와 결혼하자고 한다”는 말로 이웃남자를 유혹했다.
재벌사모님이 될 몸을 무기삼아 15억원대의 별장과 아파트를 자기 앞으로 소유권 이전토록 만든 혐의로 올 상반기 검찰에 체포됐다.
◆ 잡아도 잡아도 계속되는 검은 유혹 ‘블랙머니’ = 경제가 글로벌화하면서 사기의 소재도 국제화됐다. 미국정부가 테러조직과 맞서 싸우는 조직이나 전쟁국가에 은밀히 자금을 지원할 때, 달러지폐에 검은 용액을 뒤집어 씌워 ‘블랙머니’로 전달한 후 나중에 특수용액을 이용해 원래 지폐로 바꿔 준다고 한다.
‘겉은 반테러 속은 석유확보’라는 이라크전쟁 목표처럼 미국정부가 겉과 속이 다르게 움직인 것이 ‘블랙머니 신기루’를 만든 토양이 됐다.
이 모씨 등 3명은 “앙골라 비자금을 보관하고 있는데, 특수용액 1리터를 사용하면 80억원 상당의 달러로 변환시킬 수 있다”면서 “특수용액 구입비 8000만원을 투자하면 7억5000만원을 주겠다” “블랙머니 5000만 달러가 있는데 특수약품비 2000만원을 투자하면 대체의학센터 건립비 4~5억원을 지원하겠다”고 속여 수억원을 받아냈다가 7월 하순 검찰에 구속됐다.
‘블랙머니’는 외국인들도 들고 설친다. 과테말라인 고메즈, 라이베리아 출신 판블레 등은 “이라크에서 블랙머니 3000만 달러를 미군화물전용기로 한국에 들여왔는데, 운반비를 내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4만 달러를 건네주려고 현장에 갔던 김 모씨는 막판에 경찰에 신고했다.
블랙머니 사기는 2~3년전부터 극성을 피웠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데도 올해 5월 외국인이 가담한 이 사건에 김씨는 깜박 속을 뻔한 것이다.
같은 무렵 라이베리아인 사무엘은 “테러조직에 탈취당하지 않기 위해 블랙머니로 만든 난민구호자금이 있다”며 “특수용액비 3000만원을 투자하면 10만불을 주겠다”고 이 모씨에게 접근했다. 눈앞에서 몇장의 검은돈에 용액을 뿌려 달러지폐로 바꾸는 걸 보여주기도 했다.
저개발국에 대한 경제외교가 활발해지자 외국원수와의 친분도 ‘신기루’를 만든다. 7월 초 캄보디아 총리와의 친분을 내세워 8억원을 챙긴 일당이 경찰에 구속됐다.
캄보디아에 신도시를 건설하겠다고 속여 투자금으로 가로챈 혐의다. 이들은 훈센 총리와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친분이 있는 것처럼 과시했다.
◆ 사이버 유명인 만들어내고 그 인물로 행세 = 인터넷상에 가상인물을 만들어, 그 인물을 사이버상에서 유명인사로 출세시킨 후, 자신이 그 인사로 둔갑해 전화로만 사기를 쳐 ‘성공했던’ 한 여성이 있다. ‘사기범은 머리가 좋다’는 속설대로 사회발전현상을 재빠르게 응용한 사례다.
학원강사 출신인 이 여성은 인터넷 블로그에 외국계 증권사 ‘골드만삭스의 금융변호사 안수빈’이라는 가상인물을 만들었다. 신문에서 읽은 여성금융계 인사들의 이야기를 혼합해 인생스토리도 만들었다.
‘안수빈’은 인터넷 카페를 통해 알게 된 사람들에게 주식투자나 달러매입을 중개하겠다며 투자를 유도했다.
“국가비자금 세탁관련 일을 하는데 32억 잔고가 들어있는 계좌를 활성화하면 큰 이익을 주겠다”며 계좌활성화 비용을 요구했다. 그는 전화통화로만 4억 4000여만원을 편취했다가 지난 6월 3년형을 선고받았다.
진병기 기자 j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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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허공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외친다. “저기에 황금으로 가득찬 성이 보이지 않는가. 내 것이다.” 다른 한 사람이 탐욕의 눈길로 가리킨 곳을 보니 진짜 황금성이 어른거린다. 이때 먼저 외쳤던 자가 다가와 속삭인다. “저 성까지 갈 택시비가 없다. 택시비만 대면 큰방 하나에 가득찬 황금을 다 주겠다.” 사칭성 사기범들은 ‘택시비를 대라는 황금성주’이다. 사기범은 언제나 ‘황금성의 신기루’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데서 작전을 시작한다. 탐욕이 강한 사람은 그 신기루에 마음에 빼앗기고, 그 순간 먹이가 된다.
사기범은 법적으로 처벌받지만 사기를 당한 사람도 주변으로부터 변변치 못한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추석명절을 맞아, ‘저런 말에도 속아 넘어가나’ 싶은 사기사건의 ‘신기루’를 모아보았다. 권력실세 재벌오너 비밀기관, 요즘은 블랙머니와 인터넷상의 가상인물까지 신기루를 빚어낸다.
◆ ‘청와대 실세’는 사기꾼이 먼저 안다 = 정권 3년차는 권력층 사칭 사기범들이 법정에 서는 시즌이다. 새 정권이 들어설 때 권력실세와 가깝다며 설치다가 ‘실패한 사기범’들이 이때쯤 줄줄이 법의 심판을 받는다.
이명박 대통령과 나이가 비슷한 분당의 한 산악회 회장은 두명의 여성에게 “주공 사장이 되길 바라는 임원이 판교의 택지를 아주 헐값에 사라고 한다”고 속여 8억원을 편취했다.
정권의 위세가 가장 강력했던 2008년 4월경의 일이다. 그는 “대통령과 절친한 대학동창인데, 이를 알고 주택공사 임원이 줄을 선다”고 사칭했는데, 이것이 들통나 올해 4월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불교계 모 종파 신도회장이 7월 하순 검찰에 구속됐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의 친인척 및 청와대 고위 관계자와 친분이 있다”고 속여 5억원을 챙긴 혐의때문이다.
지난해에는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에게 부탁해 G20 정상회의 홍보기획단장을 시켜주겠다”며 3000만원을 가로챈 혐의도 받고 있다. 지금은 물러난 ‘이동관 수석’은 한때 최고의 실세반열에 올랐던 인물, 사칭사건의 감초였다.
사기범들의 둔갑술에 청와대의 권력실세는 단골메뉴다. 누가 권력실세인지 알려면 사기범들이 누구를 사칭했는지를 보면 안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다.
◆ 전화 한통이면 들통날 비밀기관 요원 = 7월 하순, 서울 중심가의 숙박비 24만원짜리 초호화 호텔에서 3년 동안 머무르며 호텔직원들에게 ‘명품사모님’이라 불렸던 김 모씨가 구속됐다. 김씨는 전직 대통령들이 숨겨놓은 재산을 찾아내 정부에 반환하는 일을 하는 청와대 비밀요원으로 행세했다. 자신의 휴대전화에 담긴 금괴 동영상을 보여주며 “숨겨진 비자금을 찾으면 15%를 환원해 준다”고 속였다. 비자금 환수비용을 대란다고 8억4000만원을 준 피해자도 있었다.
김씨는 전세계 유명인사들의 전화번호를 기록한 수첩을 보여주며 피해자들에게 신기루를 만들었다.
신 모씨는 ‘전현직 대통령의 비자금을 찾는’ 건국기념사업회 이사 명함을 돌렸다.
경찰청 외사과 실장으로 행세한 박 모씨 등 3명이 한 조로 작전을 폈다. 상당한 자금을 가지고 있는 김 모 여인에게 접근한 이들은 5억원을 빌려 5일만에 그대로 돌려줬다. 사업회 사무실까지 보여주며 믿음을 얻는데 성공하자, 석달 후에 본공사에 착수했다.
이들은 ‘30억원을 빌려주면 일주일후에 60억원을 돌려준다’고 김 여인의 탐욕에 불을 질렀다. 29억원을 송금받은 신씨는 올해 1월 5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청와대에 하명과장이란 직책은 없다. 올 6월 징역형이 선고된 김 모씨는 청와대 하명과장, 전 모 여인은 전직대통령비자금관리자 그리고 이 모씨는 미국 CIA요원으로 위장하고 경기도 일산 아파트건설부지 매입을 추진해주겠다며 2억2000만원을 사취했다.
청와대에 대표전화(02-770-0011) 한통이면 확인할 수 있는 ‘신기루’에 눈속임을 당한 경우다.
◆ ‘정몽구회장 이복동생’도 출현= 사기범들이 ‘황금성주’로 위장할 때 재벌 오너를 지나칠 리 없다.
정 모씨는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의 이복동생’을 사칭했다가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재미교포인 피해자에게 ‘정몽구 회장이 보내온 편지’와 ‘본인 정몽구는 현금 17억원을 보관하였기에 2004년 12월 23일 현대차본사 회장실에서 지급할 것임을 서명날인합니다’라는 현금보관증을 보여주었다.
자신을 ‘고 정주영 회장의 가족이면사 때문에 정몽구 회장이 챙겨줄 수밖에 없는 불우한 사람’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덫에 빠진 피해자는 그가 “박정희 전 대통령 아들 지만씨 결혼축의금이 필요하다”며 요구한 1000만원 등 모두 7000만원을 주었다가 뒤늦게 사기당한 것을 알았다.
임 모씨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회장의 비자금 관리자’를 자처하면서 영락교회유지재단의 토지를 둘러싼 사기를 벌여 9월 초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길모씨는 ‘우미건설 회장의 고철폐기물 처리 대리인’이라며 피해자를 이 회사 8층 접견실로 불러들이는 대담한 수법을 썼다. 공범은 이 회사 과장 명함을 들고 나와 길씨의 말을 보증하게 해 4000만원을 편취했다.
올해 4월 징역 2년이 선고된 이 모씨는 ‘부친은 정보사령관을 역임한 대한항공 2대 주주이고 큰형은 고려제분 대표이사, 작은 형수는 국회의원 딸’이라고 속였다. 자신은 무엇으로 위장했을까.
‘부친으로부터 상속받을 재산이 400억원인, 정관계 고위층과 친분있는 재벌 2세’가 그의 신기루였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과 친하고, 박노빈 삼성에버랜드 사장, 박재완 청와대 수석,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과도 만나는 사이라고 정재계의 내로라하는 사람은 다 끌어들였다.
그가 같이 사업을 하자며 “수익금이 나면 투자금을 먼저 줄테니, 사무실 보증금과 인테리어비용을 달라”고 하자 박 모씨는 5000만원을 넘겨주었다. 재벌 2세가 사무실 보증금이 없다고 대신 내달라고 한, ‘택시비가 없는 황금성주’의 전형적인 사칭유형이지만, 피해자는 모두 1억 6000만원을 뜯기고 나서야 후회했다.
40대 여성 최 모씨는 “모 건설회사 회장이 부인과 사별한 후 나와 결혼하자고 한다”는 말로 이웃남자를 유혹했다.
재벌사모님이 될 몸을 무기삼아 15억원대의 별장과 아파트를 자기 앞으로 소유권 이전토록 만든 혐의로 올 상반기 검찰에 체포됐다.
◆ 잡아도 잡아도 계속되는 검은 유혹 ‘블랙머니’ = 경제가 글로벌화하면서 사기의 소재도 국제화됐다. 미국정부가 테러조직과 맞서 싸우는 조직이나 전쟁국가에 은밀히 자금을 지원할 때, 달러지폐에 검은 용액을 뒤집어 씌워 ‘블랙머니’로 전달한 후 나중에 특수용액을 이용해 원래 지폐로 바꿔 준다고 한다.
‘겉은 반테러 속은 석유확보’라는 이라크전쟁 목표처럼 미국정부가 겉과 속이 다르게 움직인 것이 ‘블랙머니 신기루’를 만든 토양이 됐다.
이 모씨 등 3명은 “앙골라 비자금을 보관하고 있는데, 특수용액 1리터를 사용하면 80억원 상당의 달러로 변환시킬 수 있다”면서 “특수용액 구입비 8000만원을 투자하면 7억5000만원을 주겠다” “블랙머니 5000만 달러가 있는데 특수약품비 2000만원을 투자하면 대체의학센터 건립비 4~5억원을 지원하겠다”고 속여 수억원을 받아냈다가 7월 하순 검찰에 구속됐다.
‘블랙머니’는 외국인들도 들고 설친다. 과테말라인 고메즈, 라이베리아 출신 판블레 등은 “이라크에서 블랙머니 3000만 달러를 미군화물전용기로 한국에 들여왔는데, 운반비를 내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4만 달러를 건네주려고 현장에 갔던 김 모씨는 막판에 경찰에 신고했다.
블랙머니 사기는 2~3년전부터 극성을 피웠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데도 올해 5월 외국인이 가담한 이 사건에 김씨는 깜박 속을 뻔한 것이다.
같은 무렵 라이베리아인 사무엘은 “테러조직에 탈취당하지 않기 위해 블랙머니로 만든 난민구호자금이 있다”며 “특수용액비 3000만원을 투자하면 10만불을 주겠다”고 이 모씨에게 접근했다. 눈앞에서 몇장의 검은돈에 용액을 뿌려 달러지폐로 바꾸는 걸 보여주기도 했다.
저개발국에 대한 경제외교가 활발해지자 외국원수와의 친분도 ‘신기루’를 만든다. 7월 초 캄보디아 총리와의 친분을 내세워 8억원을 챙긴 일당이 경찰에 구속됐다.
캄보디아에 신도시를 건설하겠다고 속여 투자금으로 가로챈 혐의다. 이들은 훈센 총리와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친분이 있는 것처럼 과시했다.
◆ 사이버 유명인 만들어내고 그 인물로 행세 = 인터넷상에 가상인물을 만들어, 그 인물을 사이버상에서 유명인사로 출세시킨 후, 자신이 그 인사로 둔갑해 전화로만 사기를 쳐 ‘성공했던’ 한 여성이 있다. ‘사기범은 머리가 좋다’는 속설대로 사회발전현상을 재빠르게 응용한 사례다.
학원강사 출신인 이 여성은 인터넷 블로그에 외국계 증권사 ‘골드만삭스의 금융변호사 안수빈’이라는 가상인물을 만들었다. 신문에서 읽은 여성금융계 인사들의 이야기를 혼합해 인생스토리도 만들었다.
‘안수빈’은 인터넷 카페를 통해 알게 된 사람들에게 주식투자나 달러매입을 중개하겠다며 투자를 유도했다.
“국가비자금 세탁관련 일을 하는데 32억 잔고가 들어있는 계좌를 활성화하면 큰 이익을 주겠다”며 계좌활성화 비용을 요구했다. 그는 전화통화로만 4억 4000여만원을 편취했다가 지난 6월 3년형을 선고받았다.
진병기 기자 j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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