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을 속삭여 줄게
정혜윤 지음. 푸른숲. 1만2천원
이 책은 소설은 아니지만 ‘갈리버 여행기’ 를 연상시키는 가장 엽기적이고 무게가 나가는 특별한 개인 여행기이다. 무게라고 한 것은, 런던이란 주제와 관련해서 인용되었거나 저자가 다시 빠져든 회고 대상 책들만해도 1백11권이나 되기 때문이다. 머리든 가슴이든, 지니고 다니기엔 무거운 책 무게다. 단순한 여행기보다는 런던이란 장소를 빌어 오랫동안 축적된 독서량과 읽은 책의 타이틀을 그 위에 전부 펼쳐 보인 인문학 광장이요, 사물을 바라볼 때마다 읽었던 책의 타이틀과 주인공들이 줄지어 튀어나오는 정신적 특이기질을 가진 여성의 현장 독서일기다. 주로 런던시내의 사원, 광장, 박물관등 역사적 명소와 유적지를 돌다보니 자연스럽게 런던을 중심으로 활동했거나 죽어서 묻힌 역사인물과 연관된 ‘모든 상념과 지식’이 펼쳐진다.
여름휴가를 갈 기회를 ‘또’ 놓져 버린 필자는 여름의 끝자락을 붙잡고 아쉬운 마음으로 여행기들을 섭렵하다 이 책을 다시 읽었다. 여행기가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그것이 여행 가이드북 같은 사전적 지침서이든 그보다 부드러운 개인 탐방 체험기이든, 현지의 음식 쇼핑 즐길 거리 정보까지 손쉽게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여행 책은 흔한 인기 아이템이 된지 오래고, 최근엔 여행안내서나 사진 화보집, 직업여행가나 보통 사람들의 여행기까지 ‘보는 책’과 ‘읽는 책’이 모두 엄청난 목록으로 불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쓴 사람만 신나는 그저 그런 이야기로 채워진 여행기들은 구글 지도 탐색이나 웹 서핑보다도 보는 재미 읽는 재미가 다 미흡하다. 차라리 어느 도시의 빛바랜 옛사진을 벽에 붙여놓고 노려보면서 상상속의 여행을 하느니만 못하다.
이 책엔 런던에 얽힌 여행정보와 ‘도시 여행을 이렇게 할 수도 있구나!’라고 할 만큼 부지런한 스케치가 담겼다. 그 뿐 아니라 엉뚱한 상상과 역사관, 철학, 개인 취향까지 무자비하게 털어놓은 저자는 “이게 여행기야, 이야기책이야?” 헷갈리는 책을 쓰고 싶었다고 서두에서 이유를 밝힌다. 그래서 자신은 런던에 가면서, 아직 런던에 가보지 못한 사람들, 언젠가는 런던에 갈 계획인 사람들, 가보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귀에 대고 속삭여주는 심정으로” 이 책을 썼다고 했다.
책은 웨스트민스터 사원 ( 글 내용과 관련해서 인용된 책은 스위프트의 ‘갈리버 여행기’, 제임스 글릭의 ‘아이작 뉴턴’ 등 22권), 세인트 폴 대성당 ( 데카메론, 로빈슨 크루소등 16권) , 대영박물관 ( 헤로도토스의 ‘역사’등 8권) 자연사박물관( 마누엘 푸익의‘거미여인의 키스’등 19권) 트라팔가광장 ( 한광석의 ‘굿모닝 셰익스피어’등 4권) 빅토리아 앤드 엘버트박물관 ( 말라르메의 ‘목신의 오후’등 9권) 런던탑 ( 레싱의 ‘런던 스케치’등 13권) 그리니치 천문대 (멜빌의 ‘모비 딕’등 7권) 에필로그 (스티븐슨의 ‘지킬과 하이드’등 13권)으로 구성돼 있다.
어떤 장소에서 보고 들은 것을 곧장 관련 인물이나 책과 연결시키는 그는 예컨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얽힌 영국 왕실의 왕권다툼, 왕들의 대관식, 결혼식, 장례식의 장소였던 그 곳에 얽힌 역사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엘리자베스1세 여왕이 자신과 알력이 있었던 스코틀랜드의 메리 스튜어트 바로 옆에 누워있는 것을 보고 ‘그 무덤을 배치한 사람들의 좀 엉뚱한 상상력’에 놀라기도 하고, 이 사원을 무덤으로 하고 있는 수많은 음악가, 과학자들에 대한 단상을 열거하기도 한다. 특히 뉴턴같은 인물에 대해서는 관광가이드들이 그의 인생과 ‘다빈치 코드’에 대해 “ 자, 여러분, 이게 ‘다빈치 코드’의 마지막 장면에 나왔던 뉴턴의 무덤이예요”라고 손님들에게 소개하는 장면의 스케치와 오버랩해서, 국내에도 번역된 그의 전기 ‘아이작 뉴턴’의 책 내용을 상세히 소개한다. 이런 방식의 여행기는 저자가 방송프로듀서이면서 번개같은 속도로 숱한 신간을 읽고 소개하는 일을 상당기간 맡았던 인터넷 서점의 독서광 서평가가 아니었다면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인용한 책의 타이틀이나 내용들은 단순한 현학적 열거만은 아니다. 자신이 일견 안전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듯한 우리 사회 현실에 대한 시니시즘이 글속에 번뜩이기도 한다. 이를 테면 여행에 관한 앙드레 지드의 말 “중요한 것은 그대의 시선 속에 있을 뿐 바라보이는 사물속에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를 인용한 뒤에 이어서 “나에게는 사원의 무덤들 역시 멈추지 않는 탐험을 계속해야할 지평선만 같았다. 이 무덤의 주인공들은 대체로 거의 절대적인 자기만의 열정 속에서 인생을 살아갔고 소모했고 탕진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그런 점에서 그들은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이 판타지의 주인공으로 삼을만한 사람들이다. 우리시대는 열정 따위는 죽이고 주변사람들하고 똑같아지기 위해 죽어라 혼신의 힘을 다하는 시기니까”라고 신랄하게 썼다.
하지만 자연사박물관 탐방기에 수록된 찰스 다윈의 생애와 그의 ‘진화론’의 핵심 소개, 역시 비슷한 시기에 지구상의 생물들에게는 종의 활동영역을 결정하는 어떤 경계가 있다는 것을 밝혀낸 박물학자 알프레드 월리스의 이론과 진화론자들의 활동에 관한 언급등은 독자들이 굳이 따로 공부를 하지 않고도 방대한 목록의 책을 다 읽은 것처럼 만들어준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책 안 읽기로 유명한 한국인 독자들을 위해서 저자의 천재적인 다이제스트 능력은 상당한 행운의 선물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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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윤 지음. 푸른숲. 1만2천원
이 책은 소설은 아니지만 ‘갈리버 여행기’ 를 연상시키는 가장 엽기적이고 무게가 나가는 특별한 개인 여행기이다. 무게라고 한 것은, 런던이란 주제와 관련해서 인용되었거나 저자가 다시 빠져든 회고 대상 책들만해도 1백11권이나 되기 때문이다. 머리든 가슴이든, 지니고 다니기엔 무거운 책 무게다. 단순한 여행기보다는 런던이란 장소를 빌어 오랫동안 축적된 독서량과 읽은 책의 타이틀을 그 위에 전부 펼쳐 보인 인문학 광장이요, 사물을 바라볼 때마다 읽었던 책의 타이틀과 주인공들이 줄지어 튀어나오는 정신적 특이기질을 가진 여성의 현장 독서일기다. 주로 런던시내의 사원, 광장, 박물관등 역사적 명소와 유적지를 돌다보니 자연스럽게 런던을 중심으로 활동했거나 죽어서 묻힌 역사인물과 연관된 ‘모든 상념과 지식’이 펼쳐진다.
여름휴가를 갈 기회를 ‘또’ 놓져 버린 필자는 여름의 끝자락을 붙잡고 아쉬운 마음으로 여행기들을 섭렵하다 이 책을 다시 읽었다. 여행기가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그것이 여행 가이드북 같은 사전적 지침서이든 그보다 부드러운 개인 탐방 체험기이든, 현지의 음식 쇼핑 즐길 거리 정보까지 손쉽게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여행 책은 흔한 인기 아이템이 된지 오래고, 최근엔 여행안내서나 사진 화보집, 직업여행가나 보통 사람들의 여행기까지 ‘보는 책’과 ‘읽는 책’이 모두 엄청난 목록으로 불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쓴 사람만 신나는 그저 그런 이야기로 채워진 여행기들은 구글 지도 탐색이나 웹 서핑보다도 보는 재미 읽는 재미가 다 미흡하다. 차라리 어느 도시의 빛바랜 옛사진을 벽에 붙여놓고 노려보면서 상상속의 여행을 하느니만 못하다.
이 책엔 런던에 얽힌 여행정보와 ‘도시 여행을 이렇게 할 수도 있구나!’라고 할 만큼 부지런한 스케치가 담겼다. 그 뿐 아니라 엉뚱한 상상과 역사관, 철학, 개인 취향까지 무자비하게 털어놓은 저자는 “이게 여행기야, 이야기책이야?” 헷갈리는 책을 쓰고 싶었다고 서두에서 이유를 밝힌다. 그래서 자신은 런던에 가면서, 아직 런던에 가보지 못한 사람들, 언젠가는 런던에 갈 계획인 사람들, 가보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귀에 대고 속삭여주는 심정으로” 이 책을 썼다고 했다.
책은 웨스트민스터 사원 ( 글 내용과 관련해서 인용된 책은 스위프트의 ‘갈리버 여행기’, 제임스 글릭의 ‘아이작 뉴턴’ 등 22권), 세인트 폴 대성당 ( 데카메론, 로빈슨 크루소등 16권) , 대영박물관 ( 헤로도토스의 ‘역사’등 8권) 자연사박물관( 마누엘 푸익의‘거미여인의 키스’등 19권) 트라팔가광장 ( 한광석의 ‘굿모닝 셰익스피어’등 4권) 빅토리아 앤드 엘버트박물관 ( 말라르메의 ‘목신의 오후’등 9권) 런던탑 ( 레싱의 ‘런던 스케치’등 13권) 그리니치 천문대 (멜빌의 ‘모비 딕’등 7권) 에필로그 (스티븐슨의 ‘지킬과 하이드’등 13권)으로 구성돼 있다.
어떤 장소에서 보고 들은 것을 곧장 관련 인물이나 책과 연결시키는 그는 예컨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얽힌 영국 왕실의 왕권다툼, 왕들의 대관식, 결혼식, 장례식의 장소였던 그 곳에 얽힌 역사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엘리자베스1세 여왕이 자신과 알력이 있었던 스코틀랜드의 메리 스튜어트 바로 옆에 누워있는 것을 보고 ‘그 무덤을 배치한 사람들의 좀 엉뚱한 상상력’에 놀라기도 하고, 이 사원을 무덤으로 하고 있는 수많은 음악가, 과학자들에 대한 단상을 열거하기도 한다. 특히 뉴턴같은 인물에 대해서는 관광가이드들이 그의 인생과 ‘다빈치 코드’에 대해 “ 자, 여러분, 이게 ‘다빈치 코드’의 마지막 장면에 나왔던 뉴턴의 무덤이예요”라고 손님들에게 소개하는 장면의 스케치와 오버랩해서, 국내에도 번역된 그의 전기 ‘아이작 뉴턴’의 책 내용을 상세히 소개한다. 이런 방식의 여행기는 저자가 방송프로듀서이면서 번개같은 속도로 숱한 신간을 읽고 소개하는 일을 상당기간 맡았던 인터넷 서점의 독서광 서평가가 아니었다면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인용한 책의 타이틀이나 내용들은 단순한 현학적 열거만은 아니다. 자신이 일견 안전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듯한 우리 사회 현실에 대한 시니시즘이 글속에 번뜩이기도 한다. 이를 테면 여행에 관한 앙드레 지드의 말 “중요한 것은 그대의 시선 속에 있을 뿐 바라보이는 사물속에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를 인용한 뒤에 이어서 “나에게는 사원의 무덤들 역시 멈추지 않는 탐험을 계속해야할 지평선만 같았다. 이 무덤의 주인공들은 대체로 거의 절대적인 자기만의 열정 속에서 인생을 살아갔고 소모했고 탕진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그런 점에서 그들은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이 판타지의 주인공으로 삼을만한 사람들이다. 우리시대는 열정 따위는 죽이고 주변사람들하고 똑같아지기 위해 죽어라 혼신의 힘을 다하는 시기니까”라고 신랄하게 썼다.
하지만 자연사박물관 탐방기에 수록된 찰스 다윈의 생애와 그의 ‘진화론’의 핵심 소개, 역시 비슷한 시기에 지구상의 생물들에게는 종의 활동영역을 결정하는 어떤 경계가 있다는 것을 밝혀낸 박물학자 알프레드 월리스의 이론과 진화론자들의 활동에 관한 언급등은 독자들이 굳이 따로 공부를 하지 않고도 방대한 목록의 책을 다 읽은 것처럼 만들어준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책 안 읽기로 유명한 한국인 독자들을 위해서 저자의 천재적인 다이제스트 능력은 상당한 행운의 선물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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