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기운이 연애를 불 지르다

지역내일 2010-08-19
흔히 사랑 이야기라고 하면 청춘을 떠올린다. 때로는 격정적이고 때로는 가슴 미어지도록 슬픈 사랑 이야기에는 아무래도 청춘이 어울린다. 그렇다면 마흔두 살의 남녀는 어떨까? <돈 없어도 난 우아한 게 좋아>에 등장하는 연인들이다. 마흔이 넘은 나이라면 불륜을 생각하겠지만 아니다. 그렇다고 재즈가 흐르는 고급 와인 바에서 어려운 이야기를 하며 잘난 체하는 커플도 아니다. 오히려 10대와 맞먹을 정도로 유치하다. ‘인도에 데려가줄게’ 하면서 카레를 요리하고 수다 떨고 행복해하는 게 고작이다. 그런데 이 커플, 마흔두 살의 철 안 든 어른들의 사랑 놀음이 재미있고, 귀엽다.
철학과를 졸업하고 친구와 함께 꽃집을 운영하는 ‘지우’는 멀미가 심해 여행도 못 하고 겨우 자전거나 타고 다니는 이혼한 학원 강사 ‘사카에’와 연인이다. 다른 친구들은 결혼해서 가정을 꾸미며 겉과 속이 알맞게 나이 들어가지만, 지우는 돈 냄새 풍기는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가족에게 아무 생각 없는 사람 취급을 받으며 나름 행복하게 연애를 한다. 국어 강사인 사카에는 자신과 이름이 같은 무정부주의 소설가 ‘쓰보이 사카에’가 쓴 소설의 여주인공 이름이 ‘지우’라는 사실에 크게 의미를 둔다. 그 소설의 주인공이 죽음에 이르는 것을 보고 ‘죽음의 기운은 연애에 불을 지른다’고 생각한다. 간간이 여러 작품의 인용문이 실려 있다. 모두 죽음에 관한 내용이다. 두 사람의 간질간질한 사랑 놀음에 등장하는 조금은 무거운 장면이 흠칫하지만, 죽음만큼 연애를 간절하게 하는 것이 있을까. 이혼남 사카에는 부인이 집 기둥에 목매 죽고 고양이가 죽었다고 거짓말을 하지만, 사실 딸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친척들과 인연을 끊고 살았다. 지우는 사카에의 거짓말과 아빠의 죽음으로 깊은 상실감을 느낀다. 죽음에 얽매어 고통 받는 두 사람은 서로 구원을 받는다. 딸의 죽음으로 힘들어하는 사카에의 삶에 주인공으로 등장한 사람이 지우고, 아버지의 죽음과 가족과 마찰에서 지우를 구원해준 사람이 사카에다. 죽음이 이들에게는 사랑을 불 지르는 것일 뿐만 아니라 성숙의 과정이자 삶의 의욕을 되살리는 계기도 된 것이다.
Review   
돈 없어도 난
우아한 게 좋아
지은이 야마다 에이미
옮긴이  김난주
펴낸곳 민음사
값 1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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