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친구들과 가족동반 모임을 한 적이 있었다. 식사 도중에 굳이 한 번쯤은 아이들을 챙기는 나에게, 한 친구가 ‘야, 밖에 나와서도 애들 챙기면서 티 내냐?’면서 농담 반, 진담 반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순간이었지만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과 함께, 우리 아빠들의 현 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1. 각양각색의 아빠들 모습
클리닉에서 아이들을 접하다 보면, 함께 방문하는 부모님들도 같이 접하게 된다. 아무래도 엄마가 함께 방문하는 경우가 절대적으로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아빠 또한 필자의 관심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아빠들의 모습은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는,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아이를 데리고 클리닉에 오는 아빠들이다. 비록 엄마들처럼 섬세하지는 못하고, 아이들의 생활을 구석구석 꿰뚫고 있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모르는 것이 있으면 전화를 걸어 (아이의) 엄마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필자에게 물어보기도 한다. 좀 더 적극적인 아빠들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솔직히 필자도 이야기하기가 참 편하고 더 열심히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리고 아이의 미래상에 대해서도 좀 더 긍정적인 이미지를 그리게 된다. 아마도 아이의 발달과 교육에 적극적인 아빠를 둔 아이가 학교 성적도 좋고 사회생활에 있어서도 더 성공적이었다는 제반의 연구 결과들과 현장에서 겪는 경험들이 무의식 속에 작용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우스갯소리로 회자되는, 아이가 성공하기 위한 3대 조건 중에 아빠의 무관심만큼은 아무래도 해당사항이 아닌 것 같다.
두 번째는, 수동적이지만 불가피한 상황이나 엄마의 압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이와 함께 클리닉에 오는 아빠들이다. 이런 경우 자발적으로 상담실을 찾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필자가 상담실로 아빠를 모시게 될 때가 간간이 있는데, 십중팔구 처음에는 상당한 어색함이 흐르게 된다. 면담이 지속되어도 끝까지 소극적인 입장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 아빠들도 심심찮게 있다.
세 번째는, 순수하게 운전기사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경우이다. 픽업에 충실하거나 상담이 끝날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는 아빠들이 해당한다. 이런 분들 중에는 상담 중 아이들이 호소하는 여러 가지 어려움 중에 아빠와 관련되는 문제들이 있거나, 혹은 문제 해결에 아빠의 도움이 필요하여 잠시 만나 뵙기를 청해도 상담실로 발길을 향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다.
네 번째는, 집에서 원격조종 하는 아빠들이다. 모든 것을 아이나 엄마를 통해 보고 받고, 상황을 나름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려고 애쓰거나, 아니면 비판적으로 평론하거나 혹은 지시하거나 하는 경우이다. 엄마에게 아이의 일을 일임하고 아예 신경을 쓰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상담 시간의 많은 부분이 아이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쓰이기보다는, 엄마의 하소연을 듣는데 할애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러한 다양한 아빠들의 모습은 본 클리닉에서만 나타나는 모습은 아닐 것이다. 아이들이 향하는 곳 어디라도 비슷하게 양상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2. 지금 아빠들은 ‘낀 세대’
지금 학부모 역할을 하고 있는 우리 아빠들은 참으로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최소한, 아빠의 역할에 대해서만큼은 여기저기 치여 오도 가도 못하는 ‘낀 세대’이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가부장적인 사회 환경 속에서 자란 대부분의 지금 아빠 세대는, 외적인 권위에는 참으로 익숙한 환경에서 자랐고 부모님으로부터는 고전적인 아버지상 밖에 경험하지 못했다. 따뜻한 아버지의 마음을 피부로 느껴볼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리고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것은 그대로 우리 사고와 행동방식에 깊이 뿌리를 내렸다. 반면에 시대는 너무나 급속하게 변해 버렸다. 이제는 외적인 권위가 이전처럼 통하지 않는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 쏟아지는 지식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다양함을 겪고 자란 지금의 아이들은 더 이상 가부장적인 아빠의 모습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부부 사이에도 아이 양육에 대한 생각이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를 따라잡기에는 아직 아빠들의 생각이 이에 못 미치는 듯하다. 그래서 끼어 버렸다. 그리고 대처 능력도 떨어져 버렸다. 어떻게 하면 낀 세대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비에프씨 학습클리닉
김재훈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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