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의 짜증(1) - 짜증내서 다행이다.

지역내일 2010-07-14

 


김은기 원장
<한의사 엄마의 공부체질 이야기>저자
문의 (02)535-1588


 우리나라 아이들처럼 힘들게 공부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 없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짜증을 자주내고 그 짜증은 고스란히 엄마에게 돌아간다. 이 짜증은 엄마를 병들게 하고 또 계속 받아주는 것이 좋은지 야단을 쳐야할지 고민이 될 때도 많다. 짜증을 안내는 아이를 둔 엄마는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A)는 중3 여름에 처음 진료실을 찾았다. 명문대 영재원에 다녔을 정도로 똑똑했고 학교 성적도 상위 1%였으나 3학년부터 성적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어 과학고 입시를 막 포기한 상태였다.
 중3인데도 (A)는 새벽 2시에 잠들어서 7시에 일어났다. 빡빡한 일정을 군소리 없이 소화해내며 짜증도 내지 않았다. 워낙 건강 체질이라 감기도 잘 걸리지 않는다고 했다. 진료실에서도 잘 웃고 타고난 유머감각으로 분위기를 띄워주었다.
 막상 몸을 진찰해보니 체력저하로 머리는 멍하여 책상에는 몸만 있고 학습은 전혀 되지 않는 상태였다. 자연히 성적은 하강하였고 같은 팀의 아이들과 조금씩 학습량과 결과에서 차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엄마는 정신이 해이해져 그렇다고 아이를 더 다그쳤고 (A)는 엄마 서슬에 눌려 반항보다는 책상에 앉아 상상의 나래를 펴며 나름 스트레스를 풀어가고 있었다. 성적이 오르지 않자 엄마는 잠을 더 줄여 학습시간을 늘리는 방법으로 성적을 만회하려 하였는데 잠을 줄이자 같은 그룹에서 더 성적이 떨어졌고 진료실을 찾게 되었다. 


 중3이면 늦지 않았다. 이미 일반고로 마음을 정한 만큼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자고 싶은 만큼 자게 하도록 지시하였다. 체력을 보강할 수 있는 처방을 주면서 충분한 수면과 휴식을 여러 번 강조했다. 이 상태라면 성적이 중간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A)의 엄마는 잠을 더 줄여 공부에 매진하기를 원했기에 다음 진료 예약일에 오지 않았다.
 반항해야 할 나이에 유순하다는 것은 엄친아, 엄친딸의 징표가 아니다. 힘든 일정에 짜증을 안낸다면 치료해야할 이상 징후로 보아야 한다.
 3년 후 (A)는 고3이 되어 찾아왔는데 성적이 정말 딱 중간이었다. 수면시간은 12시부터 6시 30분까지로 중3 때보다 오히려 많이 늘어났다. 많이 재우고 난 후부터 실제 공부시간이 조금 늘었다고 했다. 학교에서 억지로 야간자율학습을 하지만 책상에는 몸만 있고 생각은 다른 곳에 있기 때문에 조금 일찍 학교에서 나와 개인과외를 하고 있었다.
 숙제는 혼자 해야 하는데 혼자서는 잡념이 많아 숙제가 되지 않아 과외시간에만 충실히 하고 있다고 했다. 물론 이정도로 학습량을 늘려선 성적하락을 막기 어렵다. 그저 하락 속도를 늦추는 것뿐이다.


 (A)는 고3이다보니 계속 쉬어줄 수가 없어 몸이 회복되는 속도도 느렸다. 여름방학이 지나야 신체기능이 자리를 잡아 잡념 없이 맑은 정신으로 공부가 가능할 것이다. 다행히 나쁜 내신을 보완할 수 있는 수시 전형이 많아 재수를 하더라도 결과는 긍정적이다. 


사춘기에 접어들면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짜증을 낸다. 또 사실 짜증 날만도 하다. 어릴 때는 짜증을 잘 안내던 아이들도 과도한 학업과 무리한 일정이 겹치면 자연 짜증을 내는데 이는 몸에서 주는 신호를 표현하는 것이다. 지나치게 짜증이 많다는 것은 진찰을 받아 정확한 원인을 찾아 치료해야 하지만 적당한 짜증은 자연스런 표현인 것이다.
 지나친 짜증은 엄마가 견디지 못해 진료실을 방문하게 된다. 하지만 (A)의 경우처럼 짜증이 없는 경우는 사태가 심각해질 때까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가 너무 늦게 진료실에 오는 수가 많아 안타깝다. 아이가 아주 잘 적응하고 있다면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다. 짜증 대신 상상의 나라에서 여행하고 있는지 멍하게 앉아있으며 짜증낼 기력도 없는지 재빨리 대응하여 치료해야 한다. 이런 증상들은 학년이 어릴수록 쉽게 치료되며 고학년이라 하더라도 치료가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너무 늦으면 성적을 회복하기 어려워 대학입시에서는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할 때도 있다. 
 자녀의 학벌은 때로 엄마의 명함이기도 하다. 특히나 요즘은 아이 혼자 독학해서 되는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다. ‘자녀의 학벌이 곧 엄마의 능력’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엄마도 자녀의 학습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런 사회의 통념에 물들어 내 아이에게 억지로 잠을 줄이도록 강요하다 아이의 건강이 망가질 수도 있다. 치료시기까지 놓쳐 나쁜 결과를 맞게 된다면 평생 엄마의 짐이 될 것이다. 자녀의 짜증 정말 다행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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