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폭력, 남편의 정신질환에 이혼 고민 늘어
한국서 쫓겨나지 않으려 웬만한 폭력 참고견뎌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부산으로 시집 온 베트남 여성 탓티황옥(20)씨는 지난 8일 결혼한 지 열흘이 채 안 돼 정신 병력이 있던 남편에게 흉기에 찔려 숨졌다. 알고 보니 남편은 지난 8년 동안 60여차례 정신과 치료를 받을 만큼 중증 정신 질환이 있었다. 그러나 탓티황옥씨는 국제결혼중개업체를 통해 남편의 정신질환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했다.
#한국에 시집온 지 10여일 지난 20대 베트남 여성 A씨. A씨는 결혼 첫날부터 한국인 남편이 자다 깨서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려 소스라치듯 놀랐다. 남편은 제대로 잠을 청하지 못하고 갑자기 일어나서 방을 나갔다 들어왔다 했다. A씨는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 되는 상황에서 남편의 비정상적인 행동을 견디면서 한 방에서 같이 생활하려니 불안하고 무서웠다. 그러던 A씨는 탓티황옥씨 살해 사건을 전해 듣고 이대로 계속 살아도 되는지 시민단체에 상담을 청했다.
지난 8일 베트남 이주여성 탓티황옥(20)씨가 살해당한 사건을 계기로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에 입국한 이주여성들의 삶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주여성들은 주로 남편이나 시댁 식구들의 폭력 때문에 이혼까지 고민하는 것도 나타났다. 남편의 정신질환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례도 상당수 있었다.
이주여성긴급지원센터의 올 상반기 상담통계에 따르면 2만3492건의 상담 중 ‘이혼’ 관련 상담은 3395건으로 14.45%(중복 답변 포함)를 차지했다. 은행 이용 방법이나 한국어 교육 과정에 대한 질문 등 한국에서의 생활 전반에 대한 상담인 ‘생활’ 관련 상담 6021건에 이은 두 번째 순위다. 이혼 고민에까지 이르는 대부분의 원인은 남편의 폭력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권미경 이주여성긴급지원센터 상담팀장은 “이혼에 대해 상담을 해 오는 경우 그 원인으로 가정 폭력의 비율이 높다”면서 “시부모나 시동생 등 시댁 식구들이 이주여성에게 ‘가족 폭력’을 가하는 충격적인 사례도 상당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권 팀장은 “한국 배우자와 결혼을 한 후 한국 국적의 아이를 낳아야 양육권을 가질 수 있고 이후 한국 체류도 가능하다” 면서 “이주여성은 고국 부모형제에게 경제적 지원 등을 하기 위해 한국 체류를 원하는 경우가 많아 가정폭력이 심하더라도 보통 참고 견디기 때문에 이혼 상담까지 하는 사례는 정말 힘들어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고 덧붙였다.
탓티황옥씨와 마찬가지로 남편의 정신질환 때문에 고민하는 사례도 줄곧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주여성긴급지원센터는 탓티황옥씨 살해 사건 이후 관련 상담 사례가 2건 있었으며 그 이전에도 관련 상담은 끊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주여성긴급지원센터는 남편이 정신질환을 가진 경우엔 적절한 도움을 주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남편이 폭력적인 경우엔 폭력을 증거로 경찰에 신고하고 보호시설로 갈 수 있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 적절한 도움을 주는 데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권 팀장은 “차라리 폭력이 발생하면 지원하기가 좋은데 상담을 청해 오는 경우 남편이 장애 몇 급인지 확인하기까지도 오래 걸린다”면서 “국제결혼중개업체에서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가운데 아시아 여성들은 비인권적인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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