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이여, 미안합니다
TV 뉴스 화면에 한 베트남 중년남자가 통곡을 하는 모습이 방영되었다. 일주일 전 한국인신랑에게 살해당한 베트남 신부의 아버지라는 설명에 시청자들은 놀랐다. 같은 한국인이라는 게 부끄러웠다. 한국을 ‘기회의 나라’로 알고 왔을 젊은 신부의 횡액에 공범이 된 것 같은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억울하게 죽은 베트남 신부여, 미안합니다.” “베트남 국민이여, 죄송합니다.”
모두들 이렇게 사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중증 정신병 이력을 가진 47세 신랑에게 까닭 없이 살해되었다는 사건의 내막을 알고서도 그런 마음이 들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맞선 6개월 만인 7월 초 한국에 온 신부는 신혼 일주일 만에 말다툼 끝에 살해당했다. 말이 통할 리 없는 사이였으니 말다툼이란 전해진 이야기일 테고, 일방적인 폭행을 당한 것이 아닌가 싶다. 경찰에 잡혀간 남편은 “귀신이 죽이라고 해서 그랬다”고 횡설수설 한다고 한다. 지난 8년 동안 정신질환 치료를 수십 차례 받은 병력의 소유자라니까, 보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상업화된 국제결혼 중개업 경쟁 방치한 때문
문제는 그런 정신병력 소지자가 병력을 속이고 외국인 신부를 맞이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베트남 중국 필리핀 캄보디아 등의 신부와 한국인 미혼남성을 맺어주는 국제결혼중개업은 자유업에서 등록제로 바뀐 지 3년째다.
2007년 10대 베트남 신부가 40대 남편에게 폭행을 당해 온몸에 골절상을 입어 죽고, 집안에 감금당해 살던 신부가 남편의 폭행을 피해 베란다에서 뛰어내리다가 죽은 사건이 계기였다.
베트남 정부의 항의가 거세고, 미 국무부가 한국남성의 국제결혼을 인신매매라고 국제사회에 고발하자, 정부는 중개업을 규제하겠다는 약속으로 곤경을 피해갔다. 그런데 3년이 지나서도 신랑감 나이와 학력·재산·직업·건강 등을 속인 사기결혼 중개가 끊이지 않으니 책임을 추궁하지 않을 수 없다.
전문가들은 지나치게 상업화된 중개업자들의 경쟁을 방치한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요즘 외국인 신부를 맞으려면 최소한 150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드는데, 그 중 신부 집안에 들어가는 몇십만원과 결혼비용 200만원 안팎, 왕복 항공료 등을 제외한 1000만원 정도가 중개업자 몫이다.
대부분의 신부가 좋은 학력과 직장을 가진 부유한 남성이라는 거짓 정보에 속아 ‘코리안 드림’을 안고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그런 거짓 정보로 버젓이 ‘장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한국과 해당국 정부가 눈감아 주기 때문에 불행의 씨앗을 안고 떠나는 셈이다.
이번 일이 보도된 뒤로 베트남 언론과 인터넷 세상은 연일 한국을 비난하는 격한 언설로 채워지고 있다. 자존심 높은 베트남 사람들의 배반감을 짐작할 만하다. 미국과 싸워 이긴 세계 유일의 민족이라는 자부심을 가진 그들은 돈 때문에 한국에게 웃는 낯을 하고 있다. 미국을 도와 자기들에게 총부리를 들이댔던 나라가 자기들을 얕보는 데 쌓이고 싸인 감정의 앙금이 두터울 것이다.
자존심 높은 베트남 사람들 배반감 생각해야
한 때 호치민시 전쟁박물관에는 월남전 때 한국병사가 베트콩 수급을 들고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찍은 기념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한국군 주둔지에 있는 민간인 희생자 위령탑이 ‘증오의 탑’이라고 불린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런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한국정부 요청으로 그 사진을 철거하고, 한국에 우호적인 제스처를 취하는 것은 베트남인 특유의 참을성과 포용성 때문이다. 우선 나라를 일으켜 세울 때까지 억울한 일들을 잠시 젖혀두는 여유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들이 과거를 잊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들은 불행했던 과거를 잠시 젖혀 두었을 뿐, 결코 잊어버린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번 사건은 한국의 어린 딸들이 힘센 나라 병사들 노리개로 팔리고, 그 병사들 나라를 꿈의 땅으로 동경했던 우리의 지난날을 되돌아보게 한다. 우리의 딸들이 그 나라에 가서 그런 불행을 당했을 때 느끼게 될 민족적 모멸감을 떠올리게 한다. 이제 겨우 밥술이나 먹게 되었다고 벌써 옛일을 잊었다면 그런 민족의 장래는 밝지 않다.
문창재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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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뉴스 화면에 한 베트남 중년남자가 통곡을 하는 모습이 방영되었다. 일주일 전 한국인신랑에게 살해당한 베트남 신부의 아버지라는 설명에 시청자들은 놀랐다. 같은 한국인이라는 게 부끄러웠다. 한국을 ‘기회의 나라’로 알고 왔을 젊은 신부의 횡액에 공범이 된 것 같은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억울하게 죽은 베트남 신부여, 미안합니다.” “베트남 국민이여, 죄송합니다.”
모두들 이렇게 사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중증 정신병 이력을 가진 47세 신랑에게 까닭 없이 살해되었다는 사건의 내막을 알고서도 그런 마음이 들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맞선 6개월 만인 7월 초 한국에 온 신부는 신혼 일주일 만에 말다툼 끝에 살해당했다. 말이 통할 리 없는 사이였으니 말다툼이란 전해진 이야기일 테고, 일방적인 폭행을 당한 것이 아닌가 싶다. 경찰에 잡혀간 남편은 “귀신이 죽이라고 해서 그랬다”고 횡설수설 한다고 한다. 지난 8년 동안 정신질환 치료를 수십 차례 받은 병력의 소유자라니까, 보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상업화된 국제결혼 중개업 경쟁 방치한 때문
문제는 그런 정신병력 소지자가 병력을 속이고 외국인 신부를 맞이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베트남 중국 필리핀 캄보디아 등의 신부와 한국인 미혼남성을 맺어주는 국제결혼중개업은 자유업에서 등록제로 바뀐 지 3년째다.
2007년 10대 베트남 신부가 40대 남편에게 폭행을 당해 온몸에 골절상을 입어 죽고, 집안에 감금당해 살던 신부가 남편의 폭행을 피해 베란다에서 뛰어내리다가 죽은 사건이 계기였다.
베트남 정부의 항의가 거세고, 미 국무부가 한국남성의 국제결혼을 인신매매라고 국제사회에 고발하자, 정부는 중개업을 규제하겠다는 약속으로 곤경을 피해갔다. 그런데 3년이 지나서도 신랑감 나이와 학력·재산·직업·건강 등을 속인 사기결혼 중개가 끊이지 않으니 책임을 추궁하지 않을 수 없다.
전문가들은 지나치게 상업화된 중개업자들의 경쟁을 방치한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요즘 외국인 신부를 맞으려면 최소한 150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드는데, 그 중 신부 집안에 들어가는 몇십만원과 결혼비용 200만원 안팎, 왕복 항공료 등을 제외한 1000만원 정도가 중개업자 몫이다.
대부분의 신부가 좋은 학력과 직장을 가진 부유한 남성이라는 거짓 정보에 속아 ‘코리안 드림’을 안고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그런 거짓 정보로 버젓이 ‘장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한국과 해당국 정부가 눈감아 주기 때문에 불행의 씨앗을 안고 떠나는 셈이다.
이번 일이 보도된 뒤로 베트남 언론과 인터넷 세상은 연일 한국을 비난하는 격한 언설로 채워지고 있다. 자존심 높은 베트남 사람들의 배반감을 짐작할 만하다. 미국과 싸워 이긴 세계 유일의 민족이라는 자부심을 가진 그들은 돈 때문에 한국에게 웃는 낯을 하고 있다. 미국을 도와 자기들에게 총부리를 들이댔던 나라가 자기들을 얕보는 데 쌓이고 싸인 감정의 앙금이 두터울 것이다.
자존심 높은 베트남 사람들 배반감 생각해야
한 때 호치민시 전쟁박물관에는 월남전 때 한국병사가 베트콩 수급을 들고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찍은 기념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한국군 주둔지에 있는 민간인 희생자 위령탑이 ‘증오의 탑’이라고 불린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런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한국정부 요청으로 그 사진을 철거하고, 한국에 우호적인 제스처를 취하는 것은 베트남인 특유의 참을성과 포용성 때문이다. 우선 나라를 일으켜 세울 때까지 억울한 일들을 잠시 젖혀두는 여유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들이 과거를 잊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들은 불행했던 과거를 잠시 젖혀 두었을 뿐, 결코 잊어버린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번 사건은 한국의 어린 딸들이 힘센 나라 병사들 노리개로 팔리고, 그 병사들 나라를 꿈의 땅으로 동경했던 우리의 지난날을 되돌아보게 한다. 우리의 딸들이 그 나라에 가서 그런 불행을 당했을 때 느끼게 될 민족적 모멸감을 떠올리게 한다. 이제 겨우 밥술이나 먹게 되었다고 벌써 옛일을 잊었다면 그런 민족의 장래는 밝지 않다.
문창재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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