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중에 본의 아니게 엇나가거나 부부 싸움으로 발전하는 일을 종종 경험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남녀의 대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라는데. 어떤 경우에 배우자의 말을 이해할 수 없는지, 배우자에게 어떤 말을 들었을 때 대화하고 싶지 않은지 기혼 남녀 20명에게 물었다. 과연 무엇이 어떻게 다르기에 상대에게 마음의 상처까지 줄까?
“아”만 해도 알아들어줘 vs.
“어”까지 해야 알아들어
아내 나 아파.
남편 그럼 병원 가보지 그래?
아내 (버럭 화를 내며) 내가 병원에 못 가서 그래?
결혼 연차가 어느 정도 된 주부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다. 병원 가보라는 얘기보다는 남편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뜻이 내포된 아내의 대화법이지만, 이런 속뜻을 알아차리는 남편은 흔치 않다.
지난 주말, 결혼기념일을 맞아 아내에게 옷 한 벌 사주고 싶어 함께 쇼핑에 나섰다가 크게 부부 싸움을 한 박승욱(35·서울 동작구 노량진동)씨. 자신의 어떤 말 때문에 아내가 화를 냈는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푸념했다.
아내 (최신 유행 스타일의 원피스를 입어보며) 이거 괜찮아?
남편 (벌써 백화점 안을 한 시간 넘게 헤맨 상태, 피곤이 몰려왔다.)그런 대로.
아내 이건 어때?
남편 그럼 그러든지.
아내 (시큰둥해져) 그냥 가자, 살 것도 없네.
박씨는 “한 시간 넘게 쇼핑하면서 여러 차례 어울리는 옷을 추천해줬거든요. 제 의견에 따라 살 것도 아니면 알아서 샀으면 한 거죠” 라고 말하는 반면, 아내 권혜련(35)씨는 “예쁜 옷은 비싸고, 비싼 것 사려니 남편 눈치가 보여 물어본 거예요. ‘괜찮으니 사’라고 확실하게 얘기해주면 좀 좋아요?” 라고 말했다.
내 말은 귀로도 듣고
눈으로도 들어줘 vs. 요점만 간단히
결혼 11년 차 정효진(37·서울 관악구 봉천동)씨는 얼마 전 남편과 부부 싸움 한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억울함이 가시지 않는단다. 뒤늦게 둘째 아이를 출산, 이제 돌이 지난 아이와 아홉 살 큰아이를 돌보느라 몸도 마음도 지친 어느 날. 퇴근한 남편에게 넌지시 말을 건넨 것이 화근이었다.
아내 여보, 나랑 얘기 좀 해.
남편 오늘 아침에 말한 건 말 아냐? 뭐, 무슨 일 있어?
아내 (남편의 건조한 반응에 순간 눈물이)…….
남편 얘기 좀 하자더니 왜 그래? 너 생리하냐? 내가 뭘 어떻게 해줘야 하는데?
뭘 어떻게 해달라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을 아시나요? 정말 힘들어요”에 대한 남편의 공감을 얻고 싶었다는 게 정씨의 마음.
평소 “요점만 말해. 요점만”이라고 말하는 남편의 말 때문에 화가 난다는 임아무개(43)씨. 얘기를 듣는지 마는지 시선은 TV에 고정한 채 따분하다는 듯 무표정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남편의 태도에 “사람이 얘길 하면 좀 쳐다봐야 할 거 아니냐”고 하면 “말을 귀로 듣지 눈으로 듣냐? 그러니까 요점이 뭔데?”라고 되묻는다고. 임씨는 “남편에겐 ‘요점’이 중요할지 모르지만, 자신에게는 이야기를 듣는 남편의 ‘태도’와 ‘공감’이 중요하다고 하소연했다.
얘기 끝나기 전 회피하지 마 vs.
적당한 선에서 멈춰줘
“남편이 집에 들어와 하는 얘기를 추리면 딱 세 마디예요. 의사를 물어보면 ‘응’, 반응을 원하면 ‘응?’, 거기에 하나 더 추가하면 ‘리모컨은?’ 이죠.”
고1 아들을 둔 김아무개(43)씨는 그나마 아이가 어릴 때는 “애는?”을 챙기더니 요즘에는 아이가 학교에서 으레 늦으려니 해서 그런지 그 말도 쏙 빼놓기 일쑤란다. 어느 덧 대화 단절이 평화롭다고 느껴질 정도로 ‘함량 미달’대화를 한다고. 김씨가 이렇게 된 건 대화를 하다 시도 때도 없이 대화를 회피하는 남편의 침묵 때문.
아내 도대체 왜 이렇게 늦게까지 술을 마신 거야?
남편 후배가 힘들어해서 얘기 좀 하느라고.
아내 꼭 그렇게 늦게까지 마셔야 해?
남편 …….
아내 왜 말이 없어? 내가 말하면 대꾸를 해야 할 거 아냐?
남편 …….
심지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코까지 골며 자는 남편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김씨. 급기야는 잠자는 남편을 깨워 “지금 잠이 와? 우리 아직 얘기 안 끝났잖아!”라며 다그치고, 남편은 “그만 하고 내일 얘기하자”며 버럭 소리를 질러 아내를 더욱 화나게 한다고.
여자들은 대화하다 결론도 짓지 않고 회피하는 남자들이 못마땅한 반면, 남자들은 “그만 하자”고 해도 쉽게 물러서지 않는 여자들의 대화법을 난감해했다. 결혼 15년 차 문아무개(45)씨 역시 적당한 선에서 멈추지 않는 아내와 대화하기 힘들다고.
남편 미안해. 내가 행동을 고쳐볼게.
아내 그게 문제가 아니야.
남편 그럼 또 다른 내 문제가 뭔데?
아내 그 문제를 모르는 게 당신 문제야.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아내에게 지쳐 산책을 하고 돌아온 문씨. 이제 좀 화가 풀렸으려나 기대하면 어디선가 다시 나타난 아내가 “아까 못 한 얘기 다시 해!”라고 말문을 연다는 것. 문씨는 “끝없는 잔소리가 이어지면 집을 뛰쳐나가고 싶다”고 털어놨다.
정주연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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