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이사 온 지 4년째. 다 좋은데, 교육 여건이 낙후하다고 할까. 그래도 광역시인데 설마 했죠. 큰아이 서울로 대학 보내면서 실감했습니다. 인근 국립대 정보 외엔 전혀…. 미친 듯 알아봐가며 겨우 서울권 대학에 보냈어요.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를 겁니다. 이 타는 속을. 이곳만 모든 정보에서 열외된 느낌이랄까. 내일신문에서 주최하는 학부모 교육 강좌 수강생이 온라인 게시판에 남긴 하소연입니다. 광역시인데다 수능 성적이 어느 지역보다 높은 곳이기에, 교육 정보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엄마들을 보면서 적잖이 놀랐습니다. 어느 지역에 가도 복잡해진 입시가 지방 학생들에게 갈수록 불리하게 작용할 거라는 엄마들의 고민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내일신문이 고민을 나눠보려 합니다. 각 지역의 진학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교사들을 만나보니 실마리는 의외로 가까이 있었습니다. 변화의 바람도 불기 시작했습니다. 한번 들어보시죠.
Part 01 학교도, 학원도, 교육청도…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지방 엄마들이 자녀 교육에서 무엇보다 갈증을 느끼는 건 입시에 대한 정보.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데다 전문가들조차 분석하기 쉽지 않을 정도로 수시 전형이 복잡해졌지만, 여전히 수능 중심의 정시에만 올인 하는 학교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수시 비중은 느는데 정시만 고집하는 학교
큰아이가 반수생의 길을 걷고 있다는 김현정(44·대구 수성구 범물동)씨는 아직도 학교가 원망스럽다. 아이가 고3이던 지난해, 수시보다 정시를 강조하는 학교의 풍토 때문에 결국 입시에 실패했다고 생각하기 때문.
“대구 학교들은 아직까지 학부모들이 수시로 갈 수 있는 방법을 물어봐도 수능만 잘 보면 된다고 고집하는 경향이 있어요. 같은 점수인데도 서울에서 미리 준비한 학생은 수시로 합격하고, 지방 학생은 떨어지는 걸 볼 때마다 정보력이 관건인 수시에선 서울과 지방이 게임이 안 되는 것 같아요. 답답한 마음에 유료 상담을 받으러 갔다가 한 시간 만에 자리를 떴어요. 제가 개인적으로 모은 것보다 못한 자료를 제시하는 걸 보면서 대구의 정보력이 너무 부족하다는 걸 절감했죠. 간혹 수시로 서울대에 진학시킨 엄마들 얘기를 들어보면 주말이나 방학마다 상경, 이곳저곳에서 얻은 정보로 준비했다고 하더라고요.”
고2 자녀를 둔 김선희(44·광주시 북구 일곡동)씨의 고민도 마찬가지. 광주 학생들의 수능 점수가 높다고 언론에 떠들썩하게 보도됐지만, 수시보다 정시 합격률이 단연 높은 광주 지역의 특성상 학교에서도 수시 지원을 적극 권하지 않아 걱정이란다.
“내신, 논술, 대학별 고사, 입학사정관 전형, 수능 최저 학력 기준 등 다방면에서 우수한 학생만 수시에 합격한다고 판단해 정시에 올인하는 실정이에요. 수시로 충분히 갈 수 있는 실력인데도, 정시만 바라보는 학교 때문에 지원조차 못하는 애들도 있어요. ‘SKY’ 대학 진학이 가능한 상위권 학생들은 교육청 차원에서 논술이나 상담 지원도 해주지만, 그 외엔 오로지 수능에 매달려야 해요.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비교과 영역이 중요해졌다지만, 광주 학생들은 수능과 야간 자율학습 때문에 준비할 시간도 없으니 답답하죠.”
정보력, 경제력, 인프라 서울보다 뒤처져
주요 입시 설명회가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되다 보니 정보를 찾을 만한 기회를 잡기조차 어렵다는 것도 지방 엄마들의 불만. 권숙희(45·울산 북구 화봉동)씨는 “얼마 전 부산에서 주요 12개 대학 입학 설명회가 열렸는데, 울산만 빠졌다.
대형 설명회는 울산에 오지 않기 때문에 이곳 엄마들은 부산까지 쫓아다니는 상황”이라며 “혹시 열리더라도 2학기가 훌쩍 지나 열리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수시 대비 전략을 짜기엔 늦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그나마 상위 1~2퍼센트에 드는 학생들에게만 해당되는 설명회가 대부분이어서 교육청 주관 설명회를 자주 듣는다는 현홍진(46·울산 중구 태화동)씨는 “교육청에서 제공하는 대입 정보가 도움이 되긴 하지만 지난해 선발 기준 중심이어서, 매년 수도 없이 바뀌는 수시 전형에 비춰보면 늦은 정보”라고 아쉬워했다.
이런 학부모들의 불만에 대해 울산 현대청운고 허석도 교사는 “울산 지역에서 영남권 7개 사립대 입시 설명회를 개최한 적 있지만, 결과적으로 참여율이 낮았다. 자녀 성적이 좋지 않아도 처음부터 목표 대학을 낮게 잡는 학부모는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주요 대학 설명회가 아니면 지방에서 열리기 힘든 것이 현실인 이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서울까지 원정을 다니며 고급(?) 정보를 보유한 엄마들은 웬만해선 입을 열지 않고, 엄마들의 사교육 의존도는 갈수록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
서울대 합격자 배출 고교
서울 편중 현상 심해
이런 지방 엄마들의 고민은 진학 관련 데이터에서도 엿볼 수 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지난 4월 발표한 ‘2010학년 수능 성적 기초 분석’ 결과에서 지역별 수능 2등급 이내 수험생(수능에서 1등급은 상위 4퍼센트, 2등급은 상위 4~11퍼센트를 의미한다. 보통 상위 11퍼센트 이내인 2등급까지 수험생들이 서울 수도권 주요 대학과 지방 국립대 상위권 학과에 진학할 수 있다) 분포를 보면 언어는 제주가 15.9퍼센트로 가장 높고, 인천이 10.0퍼센트로 가장 낮다. 수리 가는 광주 13.0퍼센트, 충북 5.4퍼센트, 수리 나는 제주 15.8퍼센트, 인천 7.6퍼센트, 외국어는 서울 14.1퍼센트, 인천 6.9퍼센트 등의 분포를 보인다. 특히 사교육 효과가 크다는 수리 영역에서는 편차가 크고, 사교육 효과가 작다는 언어 영역은 편차가 작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울대 합격자 수에서도 지역 간, 학교 간 격차가 크게 벌어진다. 한나라당 황우여 의원이 공개한 5년간 서울대 합격자 수 100위 이내인 학교 지역별 분석 통계를 보면 서울에만 49개가 몰려 있고, 이들 학교도 대부분 특목고나 강남 학군에 위치한 학교다. 서울 휘문고등학교 신동원 교사는 “지역별 서울대 합격자 배출 고교 현황만으로 각 지역의 진학 역량을 판단하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서울대 합격자를 배출하는 학교가 지나치게 서울 지역에 편중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며 “상위권 대학 진학 정보는 물론 정시를 제외한 수시 정보가 상대적으로 부족해 같은 점수로 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서울이나 수도권보다 적다는 지방 학부모들의 불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라고 봤다.
이런 고민 끝에 ‘국내형 기러기 가족’을 선택, 아이만 데리고 상경을 결심하는 엄마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교육 환경이 좋아졌다고 성공을 보장하진 않는다는 것이 지방과 서울을 두루 거쳐본 엄마들의 의견.
입학사정관 전형 등 변화 바람…
지방 학생들, 과연 불리할까?
얼마 전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의 입학사정관 전형 공통 기준까지 발표됐지만, 입학사정관 전형은 스펙에 대한 부담 때문에 지방에선 준비하기 어렵다는 오해가 여전히 깊은 상황. 그러나 한국대학입학사정관협의회 임진택 회장은 “도입 초기부터 제도가 변해왔기 때문에 스펙에 대한 오해가 있었을 뿐, 앞으로 고교 교육 과정 위주로 선발한다는 방향성은 틀림없다”고 단언한다. 임 회장의 설명이다.
“수시 논술 전형을 보면 서울과 수도권 학생들의 지원률이 75퍼센트, 합격률은 80퍼센트에 달합니다. 지방에서 논술 준비하기 쉽지 않다 보니 수도권 편중 현상이 심하죠. 당연히 지방 학생들이 정시 중심으로 준비해온 게 사실인데, ‘환경’이라는 기준으로 수험생의 실적을 다르게 해석하는 입학사정관 전형에선 지방 학생들이 오히려 유리할 수 있습니다. 내신도 수도권에 비해 잘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죠. 앞으로 입학사정관 전형에선 내신 관리를 잘하고, 동아리나 방과 후 활동, 비교과 활동을 좀더 보태면 합격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각 대학의 지역 할당형 전형도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선발하는 추세고요. 10명 중 1명이라는 소수를 위한 전형이 아닌, 비교과 활동을 더한 학생이라면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전형이라고 보면 정확합니다.”
최근 각 대학 입학사정관들이 지방의 고교 현장을 직접 방문, 설명회를 통해 “입학사정관 전형 정착은 학교 안에 비교과 활동을 얼마나 만들어내고, 사교육에 맡기던 체험 프로그램을 얼마나 공교육 안으로 가져오느냐에 승패가 달렸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이는 고교 간 경쟁을 통해 할 수밖에 없다.
가능성 보여주는 성공 사례들…
정보 접근성 취약? 관점부터 바꿔야!
울산의 성신고등학교 사례는 그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지난해 수시 전형에서 서울대에 5명을 합격시켜 보기 드문 이변을 일으켰고, 내신 2.5등급이던 학생이 논술을 전략적으로 대비해 연세대학교 자유 진리 전형에 합격하고, 4등급이던 학생은 구술 면접을 철저히 대비해 경희대학교에 합격하는 성과를 거둔 성신고는 사실 학군이 좋은 편은 아니다. 1학년 입학 후 첫 모의고사 성적은 ‘공부 좀 한다’는 타 학교의 3분의 1 수준이었다고. 강대갑 교장이 꼽은 비결은 ‘맞춤형 진학 교육’.
“1학년 시험 결과에 따라 성적순으로 10명을 선발해 중점 관리하고, 상위권 학생들이 내신 성적을 일관성 있게 관리할 수 있도록 시험문제의 객관성과 변별력을 높이는 데 신경을 많이 씁니다. 학년당 40명을 선발해 교내 공부방에서 담당 교사가 집중적으로 맞춤형 지도에 들어가고, 비평준화 시절 우수 학생을 위해 건립한 기숙사에서 학년당 성적순으로 선발된 25명이 생활하죠. 수시 전형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각종 교육청 주관 대회에 학생들을 적극적으로 내보냅니다.”
이런 노력으로 타 학교에선 평균 2~3장인 생활기록부가 이곳에선 15장 이상이라고. 지난해 서울대 특기자 전형에 합격한 이 학교 김광우(20)군은 영어 인증이나 경시대회 수상 실적 없이도 쟁쟁한 특목고 출신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성적이 한 번도 하락한 적 없는 근면성’을 무기로 내세워 당당히 합격했다. 이 전략을 권한 것도 광우군의 담임교사. 입시 흐름의 변화를 정확히 분석하고 대비한다면 지방 학생들에게 오히려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는 셈이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대입콜센터 파견 교사인 서울 영등포여고 최병기 교사는 “서울에 정보가 편중된다고 말하지만, 직접 움직이지 않으면 교사나 학부모나 정보에서 소외되는 건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대교협 차원에서 학생들의 입시 상담을 받는 대입콜센터를 운영하고, 검색 기능을 잘 활용하면 홈페이지를 통해 입시 관련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제대로 활용하지 못할 뿐 아니라 아예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런 노력 없이는 교사들은 신뢰 받지 못하고, 사교육 의존도만 높아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지적. 휘문고 신동원 교사 역시 같은 의견이다. “어떤 입시 설명회에서도 내 자녀에게 딱 맞는 정보는 한 시간 중 5분이 채 안되는 게 엄연한 현실. 입시가 워낙 복잡해져 학교도 개별 학생을 위한 맞춤형 정보를 찾아주기 쉽지 않다”며 “입시 설명회나 교육 강좌, 입시 상담 프로그램 등 부모가 발 벗고 나서 자녀를 위한 맞춤식 프로파일을 지속적으로 관리해나가는 것이 교육 정보에서 소외되지 않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조언은 새겨둘만하다.
김영희·김정옥·이경희·허희정·홍혜경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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