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과학수사]혈흔-인천 택시회사 상무 피살사건

손씻다 출입문 모서리에 묻은 ‘피’ 한점

지역내일 2010-06-11
강력사건 현장에서의 혈흔 유무는 수사방향을 잡는데 매우 중요하다. 혈흔채취를 통한 DNA확보는 범인에 대한 증거를 잡는데 절대적이다. 시약을 통해 검출한 혈흔에서 백혈구 내의 핵을 통한 DNA분석이나 혈액에 함유돼 있는 헤모글로빈의 구성 성분인 색소부분(heme) 성분의 특성을 이용한 DNA검출 등 다양한 방법이 사용되고 있다. 음식물이나 화학물질 때문에, 혹은 혈액이 오래 돼 부패한 경우, 미생물에 의해 변형된 경우 등에서도 여러 시약을 통해 DNA를 추출할 정도로 우리의 과학수사 기술이 향상됐다.

2007년 9월 17일. 피가 낭자한 채 화장실에 한 남자가 쓰러져있다는 신고를 받고 송 경사가 현장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1시 30분쯤 이었다. 오전 화재현장에 출동했던 인천경찰청 과학수사계 1팀 5명도 전원현장으로 집결했다.
사건현장은 인천 계양구 효성동에 위치한 400여평 넓이의 모 택시회사 제2차고지였다. 차고지는 철망으로 울타리가 쳐져 있었으며 철망으로 만들어진 정문에서 차고지 안이 훤하게 들여다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오른쪽 입구 쪽에 컨테이너로 만든 사무실이 있고 마당을 가로질러 건너편에 화장실이 있었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차고지에 주차된 차량이 없어 마당이 꽤 넓어 보였다.
과수팀은 화장실에 도착해 현장 감식을 위한 복장으로 바꿨다. 신발과 머리에 캡을 쓰고, 장갑을 끼고 마스크도 썼다. 화장실 문을 열고는 우선 현장 촬영부터 했다. 화장실 전체 크기는 3평정도 돼 보였다. 둘로 나눠져 있었는데 하나는 입구에 입식 남자용 변기와 수도가 있고, 그 안에 또 하나의 대변용 화장실이 있었다. 입구 문은 새시로 만들었는데 위쪽은 불투명 유리문이고 아래 부분은 세로로 알미늄 새시 철봉을 댔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른쪽에 수도꼭지가 2개 있었다. 그리고 바닥에 목욕용 플라스틱 의자와 쓰다버린 페인트 통 변기청소도구가 있고 구석에 남자용 입식 변기가 있었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 프로판 가스통이 세워져 있었다.

칼로 난자, 망치로 머리 내리 쳐
대변용 화장실문은 약간 열려져 있었고 피해자가 대변용 화장실에 쓰러져 있었다. 신고자가 놀라서 문을 열어놓은 채 되돌아 나온 것 같았다.
피해자는 변기를 가로질러 누운 채 쓰러져 있었는데 주변에 피가 흥건했다. 피해자는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60대쯤 돼 보이는 남자 피해자의 바지는 내린 채였으며 머리와 목 부분에 피가 흘러 눌러 붙어 있었다. 사고를 당한지 두어 시간이 지난 것 같았다. 사체를 촬영하고 천천히 훑듯이 감식했다. 목 부분에 칼로 찔린 자국이 6곳, 턱 부분 자상이 5곳, 배 부분에 칼자국이 1곳 나있었다. 그리고 정수리 부분에 망치로 맞은 상처가 5곳 정도인데 세게 내리쳤는지 두개골이 파열돼 골수가 일부 빠져나와 있었다. 무자비하게 찌르고 내리친 흔적으로 보아 치정이나 원한에 의한 살인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송 경사 머리를 스쳤다. 피해자가 죽은 후에도 칼을 휘두른 것 같았다. 면식범일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상처로 미루어 보아 상습범이거나 전문가는 아니었다.
강력계 형사들이 피해자 신원이 차고지 택시회사 상무라는 것을 알려왔다. 그는 기사들이 밤에 사납금을 사무실에 놓인 금고 위 뚫린 틈으로 입금시키면 아침에 출근해 금고를 열고 돈을 1차고지로 가지고 가 입금시키는 것이 주 업무였다. 송 경사는 돈이냐 원한이냐는 생각에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화장실 승용차 8시간 감식
피해자 머리에는 가발을 쓴 흔적이 남아있었으나 가발은 보이지 않았다. 왼손 엄지와 시지에 칼에 벤 자국이 굵게 나있었다. 아마 범인이 찌른 칼을 왼손으로 막은 듯 했다. 팀은 우선 현장 바닥부터 훑으며 머리카락 등 증거물을 수집했다. 바닥에는 머리칼이 제법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넓이 3mm정도 작은 크기의 테이프 조각 너댓개가 흩어져 있었다. 변기 옆 휴지통속 휴지에 핏자국이 있었다. 송 경사는 휴지통을 수거했다. 그리고 면봉으로 곳곳의 피를 채취했다. 피해자의 옷과 손 머리 목 턱 등 핏기가 있는 곳은 전부 면봉으로 채취했다. 피해자에 대한 현장 감식이 끝나자 시신을 국과수로 보냈다.
대변 화장실 바닥을 훑은 후 지문 감식에 들어갔다. 별다른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바닥과 벽면 전체를 샅샅이 훑었다. 흑연가루를 미세하게 묻히며 테이프로 뜨고, 사진을 찍어나갔으나 지문은 없었다. 화장실 문에 찍힌 지문이 있었으나 후에 피해자의 것과 신고자의 것으로 밝혀졌다. 이어서 입식 변기 주변을 감식하고 바닥과 벽면 전체를 감식했다. 수도꼭지와 바닥 벽면에 시약을 사용해 혈흔 반응 검사를 했다. 바닥과 벽면에는 핏자국이 없었다. 그런데 플라스틱 목욕용 의자에서 약한 혈흔 반응이 나왔다. 그리고 출입문을 감식하던 송 경사는 문틀 모서리에서 제법 선명한 혈흔을 찾았다. 팀은 쾌재를 불렀다. 이는 범인의 것일 확률이 높았다. 문틀 모서리에서 혈흔을 채취하고 사진을 찍었다. 아마도 범인은 살인을 한 후 묻었을 지도 모르는 피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 수도를 틀어놓고 손을 씻었을 것이며 손을 씻은 후 손에 묻은 물을 뿌리는 과정에서 피가 일부 튄 것 같았다. 화장실 감식에 6시간이 걸렸다.
화장실 감식을 마치고 나오니 강력계에서 범인이 몰고 가다 버린 것으로 추정되는 아반떼 승용차에 대한 감식을 의뢰했다. 현장에 출동했던 강력계 형사들이 피해자가 근무하는 택시회사 직원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승용차가 사라진 것을 알고는 차량을 수배했고 파출소 직원이 찾아 신고해 왔던 것이다.
범인은 피해자를 살해하고 차고지에 놓여 있던 피해자의 차량을 몰고 사라진 것이었다. 승용차는 살해현장에서 3Km쯤 떨어진 자동차 운전학원 옆 터에서 키가 꽂힌 채 발견됐다. 과수팀은 차량 트렁크와 문손잡이 운전대 콘솔박스 의자 등을 집중적으로 감식해 나갔다. 증거물이 될 만한 것은 모두 수거하고 지문 감식에 들어갔다. 그러나 문손잡이나 운전대에서는 지문 흔적이 나오지 않았고, 장갑 흔적이 나왔다. 아마 장갑으로 문손잡이를 닦은 것 같았다. 2시간이나 걸려 감식했지만 뚜렷한 것을 찾아내지 못했다. 차량을 경찰청으로 옮겼다.

혈흔에서 DNA가 나오다
저녁 8시쯤 경찰청으로 돌아온 과수팀은 혈흔 키트를 국과수로 보내 긴급감정을 의뢰했다. 수거해온 테이프 휴지통 등 물건들에서 지문을 일일이 감식했으나 지문은 없었다.
강력계 형사들은 최근 몇 년 동안 피해자 회사에 근무한 사람들을 용의선상에 놓고 일일이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했다. 동시에 피해자 주변에 대한 탐문 조사도 벌였다. 별다른 특이 사항을 발견하지 못한 경찰은 초조했다. 그런데 3일째 되는 날 국과수로부터 혈흔에서 나온 DNA중 피해자 것과 다른 것이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범인의 범위가 좁혀졌다. 서광이 비친 것이다. 우선 용의선상에 두었던 전·현직 직원들에 대해 DNA채취 동의를 받아 DNA채취에 들어갔다.
사건이 있은 지 4일이 지난 2007년 9월 21일 임연택(당시 46세)은 오전 근무를 마치고 점심 때 택시에 LPG충전을 하고 있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데 옆에서 충전을 하던 동료가 택시회사 간부 살인범의 DNA가 확보됐다며 경찰이 와 자신의 DNA를 채취해 갔다고 말을 건넸다. 그는 머리가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숨을 몰아쉰 그는 충전을 하던 도중 차를 버려둔 채 도망을 갔다. 행선지를 정하지 않고 버스를 타고는 서울로 향했다. 하지만 마땅히 도망갈 곳이 없었다.
그는 늦게 결혼했지만 택시 기사로 번 돈 대부분을 유흥비로 탕진했다. 급기야 부인과는 이혼을 했고, 이혼 후 거처가 없어 택시회사 기숙사에서 고단한 생활을 하면서도 그는 흥청망청하는 생활 습관을 고치지 못했다. 언제나 빚 때문에 숨이 막혔다. 신용카드 대금은 연체되고 저축은행 대출도 갚을 길이 막막했다. 결국 그는 사채로 일수를 빌렸는데 대금을 갚지 못하자 사채업자에게 위협을 받는 신세가 됐다.

계획적인 살인
그는 2004년 5월부터 2005년 5월까지 피해자가 근무하는 택시회사에서 일했다. 그 후 이직을 해 현재의 회사에서 택시를 몬 지가 2년 4개월이 됐다. 그는 전 회사에서 저녁에 들어온 사납금을 상무가 아침에 들러 2차고지에서 수금해 1차고지로 이동한다는 것을 기억했다. 사납금을 강취하기로 마음먹은 그는 며칠간 회사를 맴돌며 동정을 살폈다. 그리고 피해자가 매일 아침 9시쯤 2차고지에 출근해서 사무실 금고에서 돈을 챙겨 1차고지로 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 시간에는 근무자들이 거의 없다는 것도 알았다. 이 틈을 노리기로 하고 범행도구를 마련했다. 철물점에서 도구를 구입하면 들킬 것 같아서 꾀를 냈다. 동전을 넣고 장난감 등을 집어 올리는 게임기에서 접이칼이 달린 망치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칼 달린 망치를 준비한 그는 입과 손을 묶을 테이프와 면장갑 2켤레를 준비했다. 비번 날인 이날 아침 8시40분쯤 회사 울타리 옆에서 숨어 기다리던 범인은 9시쯤 피해자가 출근해 승용차를 차고지에 주차하고 사무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는 철망으로 만들어진 정문으로 다가갔다. 그 때 사무실에서 나온 피해자가 아반떼 승용차 조수석에 돈 가방을 던지듯 넣고는 승용차 문을 잠그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2분쯤 뒤 그는 뒤따라 들어갔다. 대변을 보기 위해 바지를 내린 채 앉아있는 피해자에게 다가가 목에 칼을 겨누고 조용히 하라고 협박했다. 피해자는 왼손으로 칼 끝 부분을 잡고 저항했다. 범인은 피해자의 손에서 칼을 비틀어 빼고 배를 찔렀다. 피해자의 손가락과 배에서 피가 흘렀다. 순간 눈이 뒤집힌 범인은 칼로 목을 정신없이 난자했다. 이어서 범인은 피해자의 양손을 테이프로 묶고 입을 테이프로 막은 후 다시 망치로 머리를 수차례 내리쳤다. 피해자가 뒤로 넘어지면서 의식을 잃었다. 피해자가 쓰고 있던 가발이 벗겨졌고 안경도 벗겨져 바닥에 떨어졌다. 머리는 두개골이 파열돼 뇌수가 보였다. 피가 온 벽면으로 튀었고 목 부위에서 피가 물처럼 흘렀다. 정신을 차린 범인은 손과 입에 있는 테이프를 떼 내고 바닥에 떨어진 가발과 안경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피해자의 바지를 뒤져 승용차 열쇠를 꺼내 자신의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들고 있던 가발과 테이프 안경도 호주머니에 넣었다. 대변용 화장실을 나와 세면대로 가서 끼고 있던 장갑을 벗어 호주머니에 넣고 손을 씻었다. 장갑을 벗으니 자신도 모르는 새 오른손 네 번째 손가락이 칼에 베여 피가 배어나왔다. 장갑을 호주머니에 넣고는 수돗물을 틀어 손을 씻었다. 그리고 젖은 손을 털어 물기를 없애고는 새 장갑을 꼈다. 그러나 범인은 손을 터는 순간에 오른손에서 흐른 피가 약간 튀었다는 것을 몰랐다.

정상 일과 후 애인과 탕진
범인은 사건현장에서 3Km쯤 떨어진 운전연습장 담장 옆에 자동차를 버리고 조수석에 놓여있던 돈을 챙겼다. 돈을 넣었던 종이봉투에는 범행도구와 가발 안경 칼에 벤 장갑을 넣었다. 종이가방은 차에서 20여m 떨어진 곳에 주차해있던 화물차 화물칸에 던져 버렸다. 숙소에 도착해 돈은 세어보니 450만원 이었다. 숙소에서 잠을 잔 그는 저녁 무렵 일어나 주점에서 사귄 애인을 불러 저녁을 먹고는 술을 마셨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평상시처럼 회사로 나갔고 그날 형사들이 찾아와 아침에 어디에 있었는지 등 몇 가지를 묻고는 갔다. 다음 날 오전 10시쯤 일어난 범인은 애인을 불러 바닷가로 나가 회를 먹었다. DNA를 확보한 인천경찰청 과수팀은 그동안 용의선상에 올렸던 전 현직 직원들의 DNA 채취에 들어갔다. 그런데 용의자였던 임씨가 택시 충전 중 사라졌다는 신고를 받았다. 임씨는 피해자 회사를 그만둔 지 2년이 넘었기 때문에 주요 용의자는 아니었다. 경찰은 즉시 임씨를 수배했다. 사진으로 몽타주를 만들어 숨어있을 만한 곳에 붙이고 주변부터 훑어나갔다. 그리고 전국 경찰청 생활안전국에 연락해 직원들의 협조를 부탁했다.
2007년 10월 14일 새벽 4시 서울 모 찜질방 주인의 신고로 임연택은 체포됐다. DNA가 채취됐으며 그것은 화장실 출입문 모서리에서 발견된 혈흔 한 점에서 채취한 DNA와 일치했다.
그는 교통관련 벌금 3회 외에 전과는 없었다. 원한관계에 의한 살인을 의심할 정도로 칼로 목을 난자하고 머리를 망치로 수차례 내려쳐 피해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동기가 유흥비에서 생긴 빚을 갚기 위한 것이었다니 경찰은 어처구니없었다. 트럭 화물칸에 버렸다는 범행도구는 결국 못 찾았다.
임연택은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
문진헌 기자 jhmun@naeil.com

우리의 과학수사는 어느 수준일까.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생긴지 50년이 됐고 각 경찰청에는 과학수사요원으로 활동한지 15년이 넘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예산 노부부살인 사건처럼 그동안 대조식별이 어려웠던 지문대조가 이제 컴퓨터 시스템을 통해 순식간에 처리되는 수준으로 올랐다. 혈흔 DNA 지문 검시 족윤적 감식 등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시신주변 물체, 매장토양을 통한 사건발생 시간 확인, 프로파일링을 통한 범인행동양식 파악 등도 수준급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럼에도 개별 사건에서 과학수사가 그늘에 가려진 것도 사실이다. 이에 우리나라의 과학수사를 각 사건을 통해 연재해 독자들로 하여금 수사의 이해를 돕고, 동시에 치안에 대한 불안을 줄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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