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있는 사람이 일 할 수 있다”
스스로 일자리 찾아나서야 … 결혼이주자 한국에 정착하는데 도움 되길
“일을 놓으면 그 곳이 무덤이라 생각합니다.”
최갑규(66) 할아버지는 일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나타냈다.
최 할아버지는 다문화가정지원사업인 ‘러빙월드’에 참여해 우리나라에 온 결혼이주자를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그가 한번에 2시간씩 일주일에 두 번 한국이 낯선 결혼이주여성을 만나는 곳은 서울 마포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이다. 월요일과 화요일 오후 1시30분~3시30분까지 지하1층에 마련된 강의실에 한국말이 서툰 학생 3~4명과 머리를 맞댄다. 다른 한국어 교사 할아버지 할머니 2분과 함께 거의 1대1 수업을 하고 있다.
그가 맡은 학급은 그런대로 우리말을 알아듣는 3단계 학생들. 베트남 중국 등에서 온 결혼이주여성들이다. 모두 한국인 남자와 결혼해 아이를 키우고 있다. 임신중인 학생도 있다.
이는 서울시립마포노인종합복지관이 한국노인인력개발원 도움을 받아 벌이는 노인일자리사업이다.
최 할아버지는 “일주일에 4시간이지만 수업중에 무엇을 얘기할지 고민하고 교재를 검토하면서 주말을 보낸다”며 “한글을 익히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옷에 대는 배지도 교재로 사용한다”고 말했다.
하루 2시간이 짧다. 수업이 끝난 뒤 아쉬움을 떨쳐버릴 수 없다.
그는 영어교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실제 1960년대에 경남 김해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이 있다. 그는 미국 텍사스에 있는 방공학교에서 연수교육을 받은 공병장교출신이기도 하다.
“일은 만들어서 하면 된다는 생각입니다. 좋은 자리 마련해놓고 어서오십쇼하지는 않죠.”
그는 “열정 있는 사람이 일을 할 수 있다”며 “스스로 일자리를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할아버지가 결혼이주자 한국어교사로 나선 데는 남다른 이유가 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그는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이 믿음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때 기자가 꿈이었던 시절 소외된 계층, 어려운 사람에 대해 고민을 하기도 했다.
“한국인과 결혼한 결혼이주 여성들이 어떻게 하면 이곳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생각합니다. 이제는 한국사람으로서 자리잡기를 바라며 부부사이는 좋은지 자식은 잘 키우는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들을 가르치면서 가장 어려운 것은 존댓말이다. 시어머니에게 ‘너 밥 먹었니’라고 했다가 혼난 학생이 있었다. 이 곳에서 배워 ‘시어머니 진지 잡수셨어요’라고 고쳐 말했다고 한다.
그는 “결혼이주여성에게 우리말·글을 가르치다보면 이들은 한목소리로 ‘한글은 아주 쉽다’고 말한다. 과학적으로 만들어진 한글이 글이 없는 세계 소수민족에게 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그런데 한국말은 배우기 어렵다고 한다”고 말했다.
한국어 수업이 끝나면 몇몇 학생에게 영어특강을 한다. 일상생활에서 영어가 워낙 많이 쓰이다보니 영어를 배우겠다는 요구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한 결혼이주여성과 멘토링 관계를 맺었다. 평소에도 어려운 점이 있으면 언제라도 통화할 수 있을 만큼 친해졌다. 남편과 같이 세 명이서 삼겹살을 먹었다.
베트남에서 온 전민옌씨는 “친구가 소개해서 오게 됐다”며 “열심히 잘 가르쳐주셔서 한국말이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마포노인종합복지관 박은혜 사회복지사는 “교육형 일자리로 시간당 1만원의 보수를 받는다”며 “최 할아버지는 한달에 20시간 가르치고 20만원을 받는다”고 말했다.
마포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 관계자는 “마포구에 결혼이주여성이 1000명 정도 된다”며 “이곳에서 한글교육을 받았거나 받은 여성이 100명 내외”라고 말했다.
범현주 기자 hjbeo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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