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부터 학교가 부산스럽다. ‘수업 공개 주간’ 등과 연계하여 ‘학부모 상담’ 등이 진행되면서 학부모들이 드나드는 일이 잦아졌기 때문. 학부모 입장에서는 학교의 문턱이 좀 낮아진 것 같아 반갑지만 교육 공동체 간 의사소통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정책들이 빠르게 진행됨에 따라 일부에서는 오해와 불신을 낳는 모습이 종종 목격되기도 한다. 수업 공개와 학부모 상담을 둘러싼 백태를 들여다봤다.
생색내기 식 학부모 상담보다
아이들과 진솔한 상담 필요
위선적이라는 얘기를 들어도 수업다운 수업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중학교 교사 김아무개(45·서울 관악구 신림동)씨. 그동안 꾸준히 진행되어온 학력 향상 바람이 올 들어 전면화되면서, 늘어난 업무 때문에 숨조차 쉴 수 없을 정도로 피곤하다고. “방과 후 수업도 해야 하고, 형식적으로 갖춰야 할 양식이 많아져 수업 공개나 학부모 상담에 대해서는 생각지도 못하고 있다”며 한숨을 내쉰다. 학교가 성적 위주의 분위기로 돌아가면서 수업의 내실화를 꾀할 수 없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라는 것. 수업 연구 시간조차 내기 어려운데 수업 공개를 위한 준비를 따로 한다는 생각은 해보지도 못한다고. 김 교사는 “학부모들에게 잘 보이는 것보다 아이들을 위해 수업을 연구해야 하는데, 그런 시간을 전혀 내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한다.
방과 후 수업까지 마치고 나면 오후 8~9시라는 교사들. 교원 평가를 의식한 생색내기 식 학부모 상담보다 아이들과 눈 맞추고 상담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 큰 문제라고 호소한다. 한 일선 교사는 학부모 상담 주간에 오후 9시 30분까지 꼬박 상담을 마치고 일주일 동안 앓아누워 출근도 못 했다고.
학생, 학부모 중심 아닌
학사 일정 따른 진행 아쉬워
며칠 전 뭔가 불편한 마음으로 학부모 상담에 임했다는 이아무개(42·서울 강남구 도곡동)씨는 “선생님, 죄송해요. 눈치 없이 상담 신청해서”라며 첫인사를 나누었다고.
‘학부모 상담 주간 안내’에 대한 가정통신문을 받고 신청서를 제출했는데, 연락이 오지 않아 그냥 체크한 날에 찾아간 것. 나중에 알고 보니 아이 편에 상담하러 오지 말라고 전했거나, 상담에 소극적으로 임한 교사들이 있었다. “교사들의 의견은 들어보지도 않고 학교장이 일방적으로 학부모들에게 가정통신문을 발송해서 상담에 응하기가 썩 내키지 않은 것이 사실이죠”라며 미소로 반겨주시긴 했지만, 내내 찜찜했다고 얘기한다. 사실 담임교사가 학생 면담도 앞 번호에서 몇 명만 진행한 상태고, 중간고사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상담하다 보니 아이에 관한 정보가 너무 빈약해 상담이 겉돌 수밖에 없었다고. 이씨는 ‘이렇게 형식적으로 할 것 같으면 처음부터 가정통신문을 발송하지 말았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학교에 우롱 당한 기분이었다. 상담 신청을 하지 않았다는 한 학부모는 “시기상으로 아이들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때인데 학부모 상담을 신청하라고 하는 건 학교가 아직도 학생이나 학부모 중심이기보다는 학사 일정에 따라 마음대로 하는 것 아니겠냐”며 답답함을 전한다.
공식적인 채널 마련에 일단 만족
하지만 평소에 선생님이 너무 어려워서 학교에 잘 찾아가지 못한 이호경(45·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씨는 학교가 공식적으로 만든 학부모 상담 주간에 흡족함을 표한다. 얼마 전 6학년 딸의 학교에 다녀온 후 ‘진짜 학부모와 교사의 관계가 된 것 같다’는 것.
오후 9시까지 선택이 가능하도록 30분 간격으로 칸칸이 그려진 틀에 상담을 원하는 시간대를 체크해서 보내달라는 가정통신문부터 신뢰가 갔다. 상담 내용은 ‘아이가 좋아하는 것’ ‘아빠가 주말에 아이랑 무얼 하며 놀아주냐’ 등 평이했지만, 담임교사가 친절하고 아이에 대해 잘 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나중에 아이를 통해 해당 학년 학부모 상담률이 97.96퍼센트라고 적힌 상담 결과까지 보내오자 새삼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생겨났다고 전한다.
“교실 청소 등 일손이 필요할 때나 엄마들을 청하던 학교가 아이에 대해 상담을 하겠다며 방문해달라고 하니 정말 반가웠다”는 강아무개(38·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씨도 “공식적으로 학교를 방문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아주 만족한다”고 속내를 드러내기도.
오래전부터 담임을 맡으면 개인적으로 가정통신문을 발송하고 공식적으로 학부모 상담을 신청 받아 진행해온 부천서초등학교의 박경은 교사는 “공식 채널을 통한 학부모 상담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상담을 통해 아이의 이해되지 않던 부분들이 부모의 얘기 속에서 해소되고, 교사가 보는 아이의 모습도 부모와 다르기에 서로 아이를 어떤 방향으로 양육할지 고민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 가정통신문에 음료수도 사 오지 말라고 명시했기에 학부모들이 부담 없이 상담에 응했고, 상담 후 만족도가 높았단다.
구성원 간 민주적 의사소통이 먼저
그러나 일부 학교에서는 교육 공동체 간의 소통이나 사전 홍보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가운데 수업 공개와 학부모 상담이 진행돼 시행 초기부터 잡음이 일기도 했다.
이에 대해 박인옥 연구사는 “수업 공개와 학부모 상담을 연계하라는 의미는 수업 공개를 구실로 학부모들이 학교에 드나듦에 따라 상담 요청 등의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며 “학교 여건에 따라 단위 학교장 재량으로 다양하게 운영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교육정책을 상명하달 식으로 전달하는 데 익숙한 학교가 교육 공동체 간의 의사를 제대로 수렴하지 않은 채 통과의례처럼 진행하는 것이 문제. 이에 따라 정책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전달 받지 못한 교사나 학부모들은 버거워하는 면이 있었다. 학부모에 대한 정보 제공 차원에서 진행하는 수업 공개와 학부모 상담이 학생과 학부모의 학교교육에 대한 만족도로 이어지려면 수요자 중심의 학교 운영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홍혜경 리포터 hkhong11@naver.com
도움말 박인옥 연구사(교육과학기술부)·
박경은 교사(경기 부천서초등학교)
일러스트 홍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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