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살아남은 자들이 해야 할 일

지역내일 2010-04-28
오늘은 대한민국 해군이 가장 자랑스러워해야 할 날이다. 바로 성웅 이순신장군의 465번째 탄신일이다. 충무공이 임진왜란으로 백척간두에 선 조선을 구하면서 세운 24전 24승의 전승기록은 이미 그 자체가 신화가 되었지만 하나하나의 전투도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을 대 사건이다. 위대한 장군의 후예인 대한민국 해군이 축하하고 기뻐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해군은 지금 큰 슬픔에 젖어있다. 차가운 백령도 바다 속에서 전사한 46명의 천안함 장병들의 영결식이 해군장으로 엄수되고 있다. 정부는 이 기간을 국가애도기간으로 선포하였다.
참으로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그들 모두의 삶과 사연을 다 꿸 수는 없지만 언론매체를 통해 소개되는 내용을 읽다보면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 없다. 그들의 삶은 어렵고 고단하였지만 사랑과 연민과 자기희생으로 극복해가던 당당한 젊은이들 이었던 것 같다. 그들 중 상당수가 해군에 입대한 동기가 집안의 어려운 형편을 돕거나 형제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부모님의 수술비에 보태기 위해 지원한 친구도 있고 혼인신고만 마치고 미쳐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대원이 있는가 하면 제대 후 대학에 들어갈 꿈을 키우던 어린 대원들도 있다. 그들 하나하나의 삶을 면면히 살펴보면 더욱 아들 같고 형제 같으며 절친한 친구 같아 더욱 안타깝다.
이 아름다운 청년들의 숭고한 주검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기 위하여 보여준 정부의 노력은 참으로 잘한 일이다. 일계급 특진과 전사자에 상당하는 보상, 훈장추서, 국립묘지 안장 등은 물론 남은 가족들이 계속 해군아파트에 머물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 특히 그렇다. 이러한 노력들은 나라를 지키다 순국한 영령들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라는 점에서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아울러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천안함이 침몰된 것인지 아니면 좌초된 것인지에 대해 명백하게 입증하고 그 원인을 밝혀내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정부의 위기관리시스템에 대한 것이다.
우선 전자는 많은 국민들이 궁금하겠지만 전문가로 구성된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를 진행 중이므로 정부를 믿고 공식결과가 나올 때까지 차분히 기다리면 될 것이다. 조사단에 참여하고 있든 아니든 간에 전문가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다양한 의견을 표명하고 있다. 어떤 것은 납득이 가고 어떤 것은 듣기 민망한 것도 있다. 개인의 의견을 이야기 하는 것은 자유지만 한번 표명되면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신중히 해줄 것을 당부한다. 일련의 사건들이 정리된 후 그것을 검증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 같지 않으며, 그에 대해 최소한 도덕적 윤리적 책임을 묻는 사회적 풍토가 형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말로 집중해야 할 문제는 정부의 위기관리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고 적절하였는가 하는 점이다. 사건발생 직후부터 함수인양까지 약 한 달여 동안 국민의 눈에 비친 정부와 국방부의 위기관리능력은 실망스러움을 넘어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가장 기본적인 상황보고의 난맥상은 물론이고 작전에서 시간이 생명인 군에서 사고시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러서는 국민들로 하여금 할 말을 잊게 했다. 국민들은 정부의 발표에 대해 극도의 불신감을 갖고 있고 이 모든 책임은 정부에 있다.
이명박 정부는 취임하자마자 2008년 2월 29일에 국가안전보장회의(NSC)법을 고쳐 청와대 NSC의 양대 축인 상임위원회와 사무처를 없앴고 위기관리센터는 대폭 축소해 대통령실장 직속 위기상황팀으로 대체하였다. 문제는 그 후 금강산에서 발생한 관광객 피격사건에 정부가 대응하는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위기상황팀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그 이유는 과거 NSC가 갖고 있던 부처조율이나 정보총괄기능과 같은 핵심적 기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현대사회의 안보환경은 전쟁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최근에 조류독감과 같은 질병도 국가를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과거와 같이 전쟁만을 안보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보는 단선적 시각으로는 21세기의 복합적 위기요인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 우리는 일찍이 포괄적 안보개념을 가지고 국가위기관리에 상황적응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통합적 위기관리시스템의 필요성을 갖추어 운영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정부가 이제라도 그 필요성을 절감하고 위기관리시스템의 전면적 개편에 착수하였다니 다행스럽다.
이순신장군은 12척의 전선과 사기가 땅에 떨어진 채 흩어져있던 병사들과 의병을 끌어 모아 군을 정비하였다. 신뢰와 죽을 각오로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통해 부하들의 분투를 이끌어 냈고, 명량해전 하루 전에는 부하들에게 “반드시 죽기를 각오하면 살고, 반드시 살려고 하면 죽는다(必死卽生 必生卽死)”라는 말로 비장한 각오를 피력하였다. 드디어 세계해전사에 길이남을 대승을 거두게 된다.
이명박 정부가 국가위기관리시스템을 정비하여 안보를 튼튼한 반석위에 올려놓아 바로선 대한민국을 세우고자 한다면 명량해전을 앞둔 이순신장군의 결연한 각오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이 일은 46위의 천안함 전사자들에 대한 산자들의 숙제이기에 한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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