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게 가족 해군 조국은 무엇이었을까

지역내일 2010-04-16
부제 : 저마다의 사연 바다 속에 묻고 귀환 … 너무나 보고 싶던 사람들 가슴엔 한으로

너무나 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두고 36명의 젊은이들이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몸은 부대로 귀환했지만 기다리던 이들에게 그것은 기대하지 않던 슬픈 귀환이었다.
마지막 순간 그들은 칠흙같은 바다 속에서 누구를 떠올렸을까.

◆바다·해군·천안함을 사랑했던 그들 =
그들은 누구보다 바다를 사랑했고 해군을 사랑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천안암을 사랑했다.
정범구 상병은 군대를 가고 싶지 않았다. 일부러 105kg까지 체중을 늘리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해군에 배치돼서는 “배를 타고 나가면 바다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다”며 직업군인이 되고 싶다는 말까지 꺼냈다.
김동진 하사는 해군이 되고 싶었다. 부사관 시험을 두 번 치고 해군에 기어이 들어왔다. “우리는 전문직”이라며 해군 부사관에 강한 자긍심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김 하사의 신념은 결국 어머니에게 한이 돼버렸다.
이상민 병장(1988년생)은 전투함인 천안함보다 임무가 상대적으로 쉬운 지원정(YTL)으로 전출명령이 났지만 천안함에 남게 해달라고 함장에 요청해 전출 명령이 취소됐다. 김선호 상병 역시 함정근무 6개월이 경과해 육상부대로 전출이 가능했지만 천안함이 좋아 잔류를 결심했다가 이번 일을 당했다.

◆사랑하는 가족을 남겨 놓고 바다로 =
아마도 마지막 순간 그들이 떠올린 사람들은 가족이었을 것이다.
안동엽 상병의 어머니는 지난달 19일 받지 못했던 아들의 전화가 한이 됐다. 가족이 항상 돌아가며 받던 전화를 그날은 몸이 아파 받지 못한 것이다. 안 상병의 비보가 전해진 후 평택 제2함대사령부에서 만난 교회 신도들은 “오전에 들어왔다가 돌아가던 중 소식을 듣고 다시 돌아왔다”면서 “안 상병은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젊은이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제대 4개월을 앞둔 외아들을 잃은 강현구 병장 가족 역시 슬픔에 휩싸였다. 15일 제2함대사령부를 찾은 강 병장의 할아버지는 “얌전하고 성실한 아이였는데 어쩌다…”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서승원 하사도 외아들이었다. 끼니를 거르고 상심하던 어머니는 사고 7일만에 병원에 입원했지만 곧장 뛰쳐나왔다.
조진형 하사는 아버지와 사고당일 휴대폰으로 통화를 했다. “감이 좋지 않다”며 끊은 전화통화가 마지막이었다. 홀몸으로 아들 하나만 바라보며 살던 아버지는 사고당일부터 15일까지 아들을 구해달라며 울부짖었다.
사랑하는 아들 딸을 가슴에 묻고 숨진 장병들도 있다. 연평해전을 두 번이나 치룬 최정환 중사는 4개월 된 딸과 아내를 뒤로 했다. 1일 상사로 진급한 문규석 상사는 초등학교 2학년과 4학년인 딸들과 헤어졌다. 정종률 중사는 6살난 아들을, 김경수 중사는 아들 둘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됐다.
미루던 결혼식을 다음달 9일로 눈앞에 두고 있던 강 준 중사는 사랑하는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됐다. 이들은 오랜 기간 해군 부사관으로 고락을 함께 하며 사랑을 키워왔다.

◆고단한 삶 바다에서 극복하고 싶었는데 =
그들은 고단한 삶을 바다를 통해 이기고자 했지만 바다는 그들의 소망을 들어주지 않았다.
김종헌 중사는 고3때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한꺼번에 잃었다. 하지만 그는 인생을 이겨나갔다. 꿋꿋하게 살아 아내와 돌 지난 아들을 책임지는 가장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바다는 삶의 고통을 대물림시켰다. 어머니같은 숙모는 “내가 해녀”라며 구하러 가겠다고 울부짖었지만 바다는 그마저 거부했다.
심영빈 하사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휴학계를 내고 입대했다. 월급을 쪼개 강원도 동해에 있는 어머니에 보냈던 효자였다.
방일민 하사도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해군 부사관으로 입대했다. 방일민 하사 친구 조한수씨는 “집에 손 안 벌리겠다고 아르바이트도 많이 하고 성실하고 착한 아이였다. 전역 앞두고 1년 더 있게 된 것도 집안 사정 생각해서 그렇게 한 것”이라며 “나오면 밥집을 차리고 싶다고 그랬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문영욱 하사는 부모님이 없다. 형제자매도 없다. 보호자는 이모다. 생계와 학비를 위해 단기 부사관을 택했다. 일과 후에도 일본어와 한문을 공부하는 등 노력했지만 삶은 그에게서 꿈을 거둬갔다.

◆제대를 불과 며칠 앞두고 =
제대를 불과 15일 남겨놓고 숨진 장병이 있다. 유독 숨진 장병 중에 눈에 띄는 계급 ‘병장’. 시신이 발견된 장병 중에는 이상민 병장이 둘이 있다. 한명은 88년생, 다른 한명은 89년생이다. 이들은 각각 불과 제대를 2개월과 3개월 남겨놓고 있었다.
이상희 병장의 가족은 가슴을 쳤다. 이미 이 병장의 제대일은 지났다. 지난 10일이 그의 제대일이었다. 불과 제대 15일을 남겨놓고 천안암 사태가 터졌다. 이상희 병장은 제대 후 일본 연수를 다녀와 요리사를 꿈꾸고 있었다.
이재민 병장 역시 제대 한달을 남겨놓고 나간 작전이었다. 그의 홈페이지에 남아있던 ‘시간아 빨리 가라. 집에 좀 가자’란 문구는 홈페이지를 찾은 누리꾼들의 눈물을 쏟게 했다.
이용상 병장 가족은 사고 소식에 말을 잇지 못했다. 제대 한달에 앞서 말년휴가를 나와야 했던 아들은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왔다. 이 병장이 말년휴가를 나오지 못한 이유는 풍랑 때문에 휴가자가 타는 작은 배가 출항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사자 없이 생일을 맞은 가족들 =
지난 11일 나현민 일병은 스무번째 생일을 맞았다. 그가 없는 생일잔치에는 다른 실종자 가족들이 함께 했다. 내년에는 얼굴을 맞대고 생일잔치를 해주고 싶었던 가족의 소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신선준 중사도 지난 2일 서른번째 생일을 맞았다. 아버지는 낯선 제2함대사령부에서 아들의 생일을 홀로 축하해줘야 했다.
장철희 이병은 가장 어린 91년생이다. 나이만이 아니라 부대에서도 막내였다. 그는 지난달 18일 사고나기 일주일 전 처음 천안함에 올랐다.
평택 윤여운 기자 yuyoo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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