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이 행복한 세상을 꿈꾸며(밥일꿈)

지역내일 2010-03-19
이현숙 부천 범박고등학교 교사

‘꺼벙이 담임쌤’이라는 별명을 갖고 시작한 교직 생활이 올해로 8년째. 그전까지 단조롭고 편안했던 나의 삶은 마치 롤러코스터에 올라탄 듯 다이나믹해졌다. ‘학교란 공부하고 배우는 공간’이라 생각하던 나의 고정관념을, 내 제자들은 과감히 깨주었다. 대신 함께 울고 웃으며 자신을 키우는 ‘생활 그 자체인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줬다. 인생에서 학업만큼이나 소중한 일들이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이들을 통해 알게 됐고, 앞으로도 나는 제자들에게 삶의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될 것 같다.

인터넷 쇼핑을 하듯 작성하는 대입원서
지난 2월 11일은 내가 두 번째 맡은 고3학급 아이들을 세상으로 내보낸 날이다. 여러 가지 힘든 일들을 함께 겪어낸 아이들이어선지, 대견함과 걱정이 교차했다. 요즘의 대학입시는 결코 만만치 않다. 원하는 무언가를 힘들게 쟁취해야 때문이 아니라, 그저 대학 간판을 하나 골라달기 위해서 전략을 짜야하기 때문이다.
수능을 보기 전 9월경부터 원서를 쓰는 ‘수시제도’는 전형일정과 입시요강이 학교마다 달라서 원서접수시기가 되면 교사와 학생들은 모두 컴퓨터 앞 붙박이가 된다. 지원할 수 있는 학교수가 제한이 없다보니 여러 학교를 선택하여 인터넷을 통해 지원하기 때문이다. 벌써 오래전부터 의미를 상실한 대학입학이라는 목표는 인터넷 몰에서 장바구니에 이것저것 마구잡이로 담듯이 학교와 학과를 선택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래서 원서 접수는 마치 인터넷 쇼핑과도 같다. 아이들이 한 번의 클릭으로 부담스런 입학전형료를 결제하고 나면 옆에서 지켜보는 나까지도 허무함이 밀려온다. 이렇게 접수한 1인당 비용도 꽤 많은 금액일 것이다. 그럼에도 한 군데보다 여러 군데 원서를 쓴 학생의 합격 가능성이 더 높다는 현실에 씁쓸하기만 하다.

내 아이를 가르치는 마음으로
새벽에 등교하여 하루 종일 수업 듣고, 보충수업을 받은 후 늦은 밤까지 야간자습을 하는 고3 수험생들. 파김치가 되어 무표정한 얼굴로 밤늦게야 귀가를 한다. 오죽하면 ‘우리집엔 사람 3명과 고3이 산다’라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을까. 대부분의 학생들이 졸고 있는 고3 수업은 교사들에게도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왜 이 아이들이 이렇게 획일적이고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걸까.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이들의 의욕을 상실시키고 꿈을 묻어버리게 만드는 것 같아 죄책감마저 들 때도 있다. 누구나 똑같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꿈을 키워주고, 각자에게 맞는 교육을 통해 의미 있는 시간이 되도록 해주는 게 아닐까. 한 달 전 결혼한 나도 언젠가는 학부모가 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자녀가 받을 학교교육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지금의 교육현실을 나 혼자만의 힘으로 바꾸긴 어렵기 때문이다. 올해도 대입전쟁은 어김없이 시작됐다. 어렵고 힘든 시간을 건너갈 아이들이 안쓰럽기만 하다. 그래도 비온 뒤 쑥쑥 자라는 초목처럼 아이들은 성장할 것이다. 그것이 아이들의 힘이다. 이 에너지가 긍정적으로 뻗어갈 수 있도록 제대로 된 백년대계가 펼쳐지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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