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제주공항 활주로가 번들번들 젖어 있었다. 때 이른 고사리 장마였다. 제주도 사람들은 고사리 수확철인 4월 중순 쯤 어김없이 찾아오는 반짝 장마를 고사리 장마라고 부른다. 이제 겨우 3월 초겵鈒坪琯?열흘 넘게 궂은 날이 계속되고 있었다. 택시를 잡아타고 제주여객선터미널로 가자고 했다. 택시기사가 혼잣말로 쯧쯧 혀를 찬다.
“분명 기상이변은 기상이변일세. 오라는 봄은 안 오고 청하지도 않은 ‘비님’만 이리 오시는지.”
여객선터미널은 썰렁했다. 고사리 장마로 관광객들의 발길이 뜸해진 탓일 터였다. 다행히 이날 하루 모처럼 풍랑주의보가 풀렸다. 주초부터 벼르던 추자도행 배를 금요일이나 돼서야 타게 된 것이다. 승객 중엔 다른 어떤 섬에 들어갈 때보다 낚시도구를 둘러맨 이들이 유난스럽게 많다.
하추자도 신양항에서 내렸다. 항구엔 작은 낚싯배들이 어깨를 맞대고 정박해 있다. 해안선을 따라 들어선 집들의 이마엔 온통 ‘민박?낚시’라는 간판이 걸려있다. 소문대로 추자도는 낚시의 천국인가보다.
추자초등학교 신양분교는 연노랑 칠을 한 단층짜리 건물이다. 교사 앞 화단의 소나무들이 75년 학교 역사를 뽐내기라도 하는 듯 제법 우람하다. 1999년 9월 추자초등학교 분교장으로 격하됐지만 아직까지 신양초등학교 시절의 교가를 고수하고, 운동회도 따로 여는 자존심 강한 학교다.
운동장으로 아이들이 우 몰려나오고 있다. 하교시간인 모양이다. 만나는 아이들마다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한다. 어른을 만나면 무조건 인사를 하는 아이들이 아직도 이 세상에 남아 있었던가? 사라져가는 천연기념물이라도 만난 듯 반갑다. 바로 이웃집 어른을 만나도 본척만척하는 도시의 아이들에 비하면 얼마나 예쁜 아이들인가.
“김형철 선생님 어디 계시니?”
“어, 선생님 아까 상추자로 건너 가셨는데요. 본교로 회의하러 가신 댔어요.”
선생님에게 휴대전화로 연락을 했더니 아이들 말대로 회의 중이었다. 그 동안 잠 잘 숙소를 구하기로 했다. 그러나 한 동안 다리품만 팔았을 뿐 하추자도에서는 숙소를 구할 수 없었다. 상추자도까지 나가야 한다는 게 주민들의 말이었다.
‘선생님, 학교 앞 구멍가게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선생님에게 다시 휴대전화 연락을 한 뒤 구멍가게에서 쭈그리고 앉아 맥주를 마셨다. 맥주 두병을 다 비워갈 즈음 구멍가게 앞에 트럭 한대가 나타났다. 차의 앞쪽은 6인승 봉고요, 뒤쪽엔 짐 싣는 적재함이 달려 있다. ‘와이드 봉고 더블캡’이라는 1톤짜리 트럭이다. 사람 좋아 보이는 중년의 트럭 운전기사가 차에서 내린다. 가게 안으로 들어온 그가 진한 제주도 억양으로 말을 건넨다.
“서울에서 내려온 분이시지요? 저는 김형철입니다.”
맙소사! 이분이 추자초등학교 신양분교장인 김형철(43) 선생님? 도대체 선생님이 트럭을 몰고 다니는 이유가 뭘까? 급하게 누구 차를 빌리기라도 한 걸까? 선생님이 웃는다.
“제 자가용이 조금 별나지요? 우선 차에 오르세요. 상추자도에 나가서 저녁식사를 함께 하시지요.”
차에 올랐더니 뒷좌석에 타고 있던 두 사람이 인사를 한다. 신양분교 동료 교사인 서승필 선생님과 정진봉 선생님이다. 김 선생님은 6학년 담임, 서 선생님은 1학년과 3학년 복식학급 담임, 정 선생님은 5학년 담임이라고 했다. 김 선생님이 다시 운전석에 올라 방금 왔던 상추자도 쪽으로 차를 돌리면서 자가용 트럭 자랑을 시작한다.
“섬에서는 여러 모로 쓸모가 많은 차랍니다. 이 차가 6인승인데 우리 학교 선생님들이 딱 여섯 명 이예요. 본교 출장이나 단체 회식을 위해 이동 할 때 그야말로 안성맞춤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바닷가 체험활동을 할 때 쓰기도 하고, 전근을 오고가는 선생님들 짐을 실어 나르는 데도 그만이지요.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우리 학교 전교생이 서른 한명밖에 안 되니까 제 트럭에 다 실을 수도 있을 겁니다.”
아담한 다리 하나가 나타난다. 상추자와 하추자를 연결하는 212m짜리 추자대교다. 다리를 건너 2~3분 정도 달리니 오목하게 만입한 작은 항구에 닿는다. 참조기와 멸치잡이로 유명한 추자항이다. 낙후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하추자에 비해 제법 번듯한 식당과 숙박시설들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선생님 세 분과 함께 선착장 인근의 제일식당이란 곳으로 들어섰다. 추자도에선 맛 집으로 알려진 곳이란다. 우럭 사촌 쯤 된다는 ‘솜팽이 매운탕’을 주문했다. 쫄깃한 속살과 개운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추자도 앞 바다에서 주낙으로 잡아 올린 펄떡펄떡 뛰는 활어가 만들어내는 맛이다. 혀에 감기는 짭조름한 멸치젓 맛은 또 어떻고!
얼큰한 매운탕을 안주로 순하고 시원한 한라산 소주를 마신다. 그런데 소주잔을 주고받는 세 선생님의 사이가 유난히 각별해 보인다. 직장 동료 이상으로 스스럼이 없고 끈끈한 유대감 같은 게 느껴진다고나 할까. 의문은 금방 풀렸다. 세 선생님은 모두 제주교대 선후배 사이였던 것이다. 분교장인 김 선생님은 88학번, 서 선생님과 정 선생님은 모두 90학번이란다. 제주도 관내 초등학교 어디를 가나 제주교대 출신들뿐이라고도 했다. 직장 동료들이 전부 선후배 사이면 서로 돕고 의지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물론 좋은 점이 많지요. 그렇지만 힘든 점도 있어요. 어릴 적부터 함께 자라고, 초중고와 대학까지 함께 공부를 한 사이 아닙니까? 그러다보니 서로의 부모님은 물론 사돈의 팔촌까지 다 아는 사이입니다. 조금만 잘못해도 사방팔방으로 금방 소문이 납니다. 지연과 학연, 혈연으로 얽힌 촘촘한 네트워크 속에서 살고 있는 거지요. 그러다보니 제주지역 교사들의 사명감이 남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까딱 잘못하면 손가락질을 당하니까요.”
그래도 한 동네에서 자라고, 같은 학교에서 공부를 한 선후배들이 이렇게 한 학교에서 근무를 한다는 건 얼마나 든든한 일인가. 교무회의는 곧 동문회일 것이고, 교직원 회식은 바로 동창 모임 아닌가. 마을을 써야하는 지역 공동체 속에서 생활한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복인가.
다음날 아침 일찍 신양분교를 다시 찾았다. 김 선생님이 담임을 맡고 있는 6학년 교실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섰다. 교실 뒤편 게시판에 ‘꿈이 있어 늘 행복한 아이들’이란 표어가 큼지막하게 걸려 있다. 아홉 명의 아이들이 국어 책을 반듯하게 펴놓고 있었다. ‘가마솥’이란 단원을 한 구절 씩 돌아가며 읽고 있는 중이었다. 중간 중간 선생님이 아이들의 발음과 억양, 호흡을 바로잡아 준다. 엄하면서도 자상한 선생님이다.
“이곳 부모님들이 너무 바쁘다 보니까 아이들 공부에는 신경을 쓰지 못합니다. 아버지는 유자망 배를 타고 한번 바다에 나가면 보름 내지는 한달 동안 집에 못 들어오시고, 어머니는 조기작업이나 해초류 채취 등에 하루 종일 매달립니다. 지난해 4학년 담임을 맡았었는데 아이들 학력이 너무 처져 있더라고요. 그래서 방과 후 두 시간 씩 보충수업을 했어요. 그런데도 아이들 실력이 생각만큼 오르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지난 겨울방학 때 2주 동안 섬에 남아 아이들을 지도했습니다.”
섬 어린이들이 다양한 문화 및 과학 체험을 접할 수 있도록 백방으로 뛰어다닌 사람도 선생님이었다. 지난 2월에는 어린이 보호사업을 펼치고 있는 비정부기구(NGO)인 ‘세이브 더 칠드런(Save the Children)’으로부터 책 500권과 캠코더 등 750만원 상당의 미디어교육 기자재를 지원받아 작은 도서관을 꾸몄다. 또한 정부의 ‘차세대 디지털 리더 육성프로그램’에 참여해 기초과학기술에 대한 아이들의 호기심과 흥미를 자극하기도 했다.
학교를 빠져 나와서는 전날 오후 맥주를 마셨던 구멍가게에 다시 들렀다. 가게 문 안으로 고개를 들이 밀고는 주인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렸다. 할아버지가 걱정스런 어투로 말씀하신다.
“오전 10시 30분 배로 나가는 게 좋을 게야. 그렇지 않으면 한 열흘 쯤 섬에 갇힐 지도 몰라. 당장 오늘 오후부터 풍랑주의보가 다시 떨어진대.”
사나흘이면 몰라도 열흘이나? 시계를 보니 배 시간이 10분밖에 안 남았다. 할아버지께 서둘러 인사를 드리고는 선착장으로 달린다. 들어올 때나 나갈 때나 추자도는 참 사람의 마음을 졸이게 만드는 섬이다. 추자도 전경을 굽어보는 돈대산 산행이 그렇게 좋다던데…. 그래, 여행은 항상 아쉬움과 여운을 남기는 게 좋은 거야. 다음에 또 오면 되지 뭐.
박상주 오지여행가
“가고 싶은 길 가는게 제대로 사는 거야”
[인터뷰]하추자도 ‘신양상회’ 최경희 할아버지
희한한 동네였다. 숙소를 구하기 위해 하추자도 신양항 주변의 민박집들의 문을 두드렸다. 그런데 하나같이 방을 내주기 어렵다고 했다. 단체로 오는 낚시 손님만 받고 있다는 거였다. 하나같이 상추자도로 가면 모텔들이 많다는 말만 할 뿐이었다. 하추자도(3.5㎢)는 상추자도(1.5㎢)보다 두 배 이상 넓은 곳인데 이게 무슨 소린가? 하추자도는 낚시 손님만 대접을 받는 곳이란 말인가? 아무리 그렇더라도 민박 간판을 걸어놓고 손님을 받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되나?
비는 추적추적 내리지, 잠잘 곳은 정해지지 않았지…. 갑자기 기분이 처량해 진다. 한 잔 생각이 굴뚝같다. 어찌된 동네인지 식당조차 눈에 뛰지 않는다. 터벅터벅 신양항 주변의 썰렁한 골목을 걷는다. 그 때 갑자기 따뜻한 풍경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신양상회. 담배, 아이스크림, 학용품 일체.’
타임머신을 타고 몇 십 년 전 고향마을로 되돌아온 기분이었다. 미닫이 유리문에서부터 하늘색 바탕에 둥근 원안 속 빨간 글씨의 담배 포스터까지 원조 구멍가게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었다. 게다가 가게 이름마저 고향마을 이름과 똑같은 ‘신양상회’라니….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가슴이 촉촉해진다. 어릴 적 학교 앞 구멍가게의 모습 그대로다. 나무 선반위엔 새우깡과 영양 갱, 치토스, 꽃게랑 등 과자봉지들이 진열돼 있다. 진열대 뒤편의 작은 골방 모습까지 어쩌면 이리도 똑같을 수가 있을까.
가게를 지키는 할아버지 혼자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올해 예순 아홉인 최경희 할아버지다. 안주라고는 배추 속과 된장, 김 쪼가리뿐이다. 맥주 두 병을 주문했다. 할아버지는 소주를 마시고, 나는 맥주를 마셨다. 술을 마시면서 금방 민박집에서 연거푸 퇴짜를 당한 설움을 할아버지에게 털어놓았다. 할아버지가 역정을 내신다.
“그 놈의 돈 때문에 사람들 마음이 망가진 거야. 민박집에서 한 사람만 받으면 이문이 별로 안 남고 귀찮기만 하니까 박대를 하는 거지. 섬을 황량하게 만드는 원흉은 돈이야. 예전엔 아무리 어렵게 살아도 내 집에 온 손님을 그냥 내보내는 법이 없었어. 밥 한 끼라도 따뜻하게 대접해주는 게 우리네 인심이었지. 사람들이 돈 맛을 알고부터는 인간에 대한 배려를 잃기 시작했어. 돈은 수단일 뿐인데 요즘 사람들은 돈을 주인으로 모시는 거지.”
구멍가게 할아버지의 말씀 수준이 보통을 넘는다. 아니나 다를까. 할아버지는 광주광역시 광주고등학교 앞에서 오랫동안 ‘대학당 서점’을 운영한 인텔리였다. 책 읽고, 글 쓰고, 한 잔 술에 취할 수 있는 조용한 공간을 찾아 11년 전 이곳으로 왔다고 했다.
할아버지 옆에 두툼한 노트 한권이 놓여 있었다. 슬쩍 집어 들어 넘겨보니 반듯하고 깨알 같은 글씨가 가득 담겨있다. 할아버지의 독서 노트였다.
“매일 독서를 하면서 마음에 와 닿은 구절들을 옮겨 적는다네. 금강경 등 불경을 필사하기도 하지. 이제까지 모두 스물네 권의 노트를 채웠지.”
잠깐 방안으로 들어갔던 할아버지가 씨알 굵은 참조기 두 마리를 얹은 프라이팬을 들고 나오신다. 아마도 방 뒤 쪽에 주방이 있나보다. 할아버지는 부탄가스 레인지에 프라이팬을 올려놓고는 참조기를 지글지글 굽는다. 참조기 맛 보다는 할아버지의 인심이 더 고소한 술안주다. 할아버지에게 인생의 길을 물었다. 무릎을 칠만한 명답을 내놓으신다.
“길을 모른다고 가는 길 묻지 말고,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가는 거야. 그게 제대로 사는 길이지. 남 얘기 들을 거 하나도 없어. 내가 주인이 되는 인생을 살면 그뿐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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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기상이변은 기상이변일세. 오라는 봄은 안 오고 청하지도 않은 ‘비님’만 이리 오시는지.”
여객선터미널은 썰렁했다. 고사리 장마로 관광객들의 발길이 뜸해진 탓일 터였다. 다행히 이날 하루 모처럼 풍랑주의보가 풀렸다. 주초부터 벼르던 추자도행 배를 금요일이나 돼서야 타게 된 것이다. 승객 중엔 다른 어떤 섬에 들어갈 때보다 낚시도구를 둘러맨 이들이 유난스럽게 많다.
하추자도 신양항에서 내렸다. 항구엔 작은 낚싯배들이 어깨를 맞대고 정박해 있다. 해안선을 따라 들어선 집들의 이마엔 온통 ‘민박?낚시’라는 간판이 걸려있다. 소문대로 추자도는 낚시의 천국인가보다.
추자초등학교 신양분교는 연노랑 칠을 한 단층짜리 건물이다. 교사 앞 화단의 소나무들이 75년 학교 역사를 뽐내기라도 하는 듯 제법 우람하다. 1999년 9월 추자초등학교 분교장으로 격하됐지만 아직까지 신양초등학교 시절의 교가를 고수하고, 운동회도 따로 여는 자존심 강한 학교다.
운동장으로 아이들이 우 몰려나오고 있다. 하교시간인 모양이다. 만나는 아이들마다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한다. 어른을 만나면 무조건 인사를 하는 아이들이 아직도 이 세상에 남아 있었던가? 사라져가는 천연기념물이라도 만난 듯 반갑다. 바로 이웃집 어른을 만나도 본척만척하는 도시의 아이들에 비하면 얼마나 예쁜 아이들인가.
“김형철 선생님 어디 계시니?”
“어, 선생님 아까 상추자로 건너 가셨는데요. 본교로 회의하러 가신 댔어요.”
선생님에게 휴대전화로 연락을 했더니 아이들 말대로 회의 중이었다. 그 동안 잠 잘 숙소를 구하기로 했다. 그러나 한 동안 다리품만 팔았을 뿐 하추자도에서는 숙소를 구할 수 없었다. 상추자도까지 나가야 한다는 게 주민들의 말이었다.
‘선생님, 학교 앞 구멍가게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선생님에게 다시 휴대전화 연락을 한 뒤 구멍가게에서 쭈그리고 앉아 맥주를 마셨다. 맥주 두병을 다 비워갈 즈음 구멍가게 앞에 트럭 한대가 나타났다. 차의 앞쪽은 6인승 봉고요, 뒤쪽엔 짐 싣는 적재함이 달려 있다. ‘와이드 봉고 더블캡’이라는 1톤짜리 트럭이다. 사람 좋아 보이는 중년의 트럭 운전기사가 차에서 내린다. 가게 안으로 들어온 그가 진한 제주도 억양으로 말을 건넨다.
“서울에서 내려온 분이시지요? 저는 김형철입니다.”
맙소사! 이분이 추자초등학교 신양분교장인 김형철(43) 선생님? 도대체 선생님이 트럭을 몰고 다니는 이유가 뭘까? 급하게 누구 차를 빌리기라도 한 걸까? 선생님이 웃는다.
“제 자가용이 조금 별나지요? 우선 차에 오르세요. 상추자도에 나가서 저녁식사를 함께 하시지요.”
차에 올랐더니 뒷좌석에 타고 있던 두 사람이 인사를 한다. 신양분교 동료 교사인 서승필 선생님과 정진봉 선생님이다. 김 선생님은 6학년 담임, 서 선생님은 1학년과 3학년 복식학급 담임, 정 선생님은 5학년 담임이라고 했다. 김 선생님이 다시 운전석에 올라 방금 왔던 상추자도 쪽으로 차를 돌리면서 자가용 트럭 자랑을 시작한다.
“섬에서는 여러 모로 쓸모가 많은 차랍니다. 이 차가 6인승인데 우리 학교 선생님들이 딱 여섯 명 이예요. 본교 출장이나 단체 회식을 위해 이동 할 때 그야말로 안성맞춤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바닷가 체험활동을 할 때 쓰기도 하고, 전근을 오고가는 선생님들 짐을 실어 나르는 데도 그만이지요.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우리 학교 전교생이 서른 한명밖에 안 되니까 제 트럭에 다 실을 수도 있을 겁니다.”
아담한 다리 하나가 나타난다. 상추자와 하추자를 연결하는 212m짜리 추자대교다. 다리를 건너 2~3분 정도 달리니 오목하게 만입한 작은 항구에 닿는다. 참조기와 멸치잡이로 유명한 추자항이다. 낙후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하추자에 비해 제법 번듯한 식당과 숙박시설들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선생님 세 분과 함께 선착장 인근의 제일식당이란 곳으로 들어섰다. 추자도에선 맛 집으로 알려진 곳이란다. 우럭 사촌 쯤 된다는 ‘솜팽이 매운탕’을 주문했다. 쫄깃한 속살과 개운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추자도 앞 바다에서 주낙으로 잡아 올린 펄떡펄떡 뛰는 활어가 만들어내는 맛이다. 혀에 감기는 짭조름한 멸치젓 맛은 또 어떻고!
얼큰한 매운탕을 안주로 순하고 시원한 한라산 소주를 마신다. 그런데 소주잔을 주고받는 세 선생님의 사이가 유난히 각별해 보인다. 직장 동료 이상으로 스스럼이 없고 끈끈한 유대감 같은 게 느껴진다고나 할까. 의문은 금방 풀렸다. 세 선생님은 모두 제주교대 선후배 사이였던 것이다. 분교장인 김 선생님은 88학번, 서 선생님과 정 선생님은 모두 90학번이란다. 제주도 관내 초등학교 어디를 가나 제주교대 출신들뿐이라고도 했다. 직장 동료들이 전부 선후배 사이면 서로 돕고 의지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물론 좋은 점이 많지요. 그렇지만 힘든 점도 있어요. 어릴 적부터 함께 자라고, 초중고와 대학까지 함께 공부를 한 사이 아닙니까? 그러다보니 서로의 부모님은 물론 사돈의 팔촌까지 다 아는 사이입니다. 조금만 잘못해도 사방팔방으로 금방 소문이 납니다. 지연과 학연, 혈연으로 얽힌 촘촘한 네트워크 속에서 살고 있는 거지요. 그러다보니 제주지역 교사들의 사명감이 남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까딱 잘못하면 손가락질을 당하니까요.”
그래도 한 동네에서 자라고, 같은 학교에서 공부를 한 선후배들이 이렇게 한 학교에서 근무를 한다는 건 얼마나 든든한 일인가. 교무회의는 곧 동문회일 것이고, 교직원 회식은 바로 동창 모임 아닌가. 마을을 써야하는 지역 공동체 속에서 생활한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복인가.
다음날 아침 일찍 신양분교를 다시 찾았다. 김 선생님이 담임을 맡고 있는 6학년 교실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섰다. 교실 뒤편 게시판에 ‘꿈이 있어 늘 행복한 아이들’이란 표어가 큼지막하게 걸려 있다. 아홉 명의 아이들이 국어 책을 반듯하게 펴놓고 있었다. ‘가마솥’이란 단원을 한 구절 씩 돌아가며 읽고 있는 중이었다. 중간 중간 선생님이 아이들의 발음과 억양, 호흡을 바로잡아 준다. 엄하면서도 자상한 선생님이다.
“이곳 부모님들이 너무 바쁘다 보니까 아이들 공부에는 신경을 쓰지 못합니다. 아버지는 유자망 배를 타고 한번 바다에 나가면 보름 내지는 한달 동안 집에 못 들어오시고, 어머니는 조기작업이나 해초류 채취 등에 하루 종일 매달립니다. 지난해 4학년 담임을 맡았었는데 아이들 학력이 너무 처져 있더라고요. 그래서 방과 후 두 시간 씩 보충수업을 했어요. 그런데도 아이들 실력이 생각만큼 오르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지난 겨울방학 때 2주 동안 섬에 남아 아이들을 지도했습니다.”
섬 어린이들이 다양한 문화 및 과학 체험을 접할 수 있도록 백방으로 뛰어다닌 사람도 선생님이었다. 지난 2월에는 어린이 보호사업을 펼치고 있는 비정부기구(NGO)인 ‘세이브 더 칠드런(Save the Children)’으로부터 책 500권과 캠코더 등 750만원 상당의 미디어교육 기자재를 지원받아 작은 도서관을 꾸몄다. 또한 정부의 ‘차세대 디지털 리더 육성프로그램’에 참여해 기초과학기술에 대한 아이들의 호기심과 흥미를 자극하기도 했다.
학교를 빠져 나와서는 전날 오후 맥주를 마셨던 구멍가게에 다시 들렀다. 가게 문 안으로 고개를 들이 밀고는 주인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렸다. 할아버지가 걱정스런 어투로 말씀하신다.
“오전 10시 30분 배로 나가는 게 좋을 게야. 그렇지 않으면 한 열흘 쯤 섬에 갇힐 지도 몰라. 당장 오늘 오후부터 풍랑주의보가 다시 떨어진대.”
사나흘이면 몰라도 열흘이나? 시계를 보니 배 시간이 10분밖에 안 남았다. 할아버지께 서둘러 인사를 드리고는 선착장으로 달린다. 들어올 때나 나갈 때나 추자도는 참 사람의 마음을 졸이게 만드는 섬이다. 추자도 전경을 굽어보는 돈대산 산행이 그렇게 좋다던데…. 그래, 여행은 항상 아쉬움과 여운을 남기는 게 좋은 거야. 다음에 또 오면 되지 뭐.
박상주 오지여행가
“가고 싶은 길 가는게 제대로 사는 거야”
[인터뷰]하추자도 ‘신양상회’ 최경희 할아버지
희한한 동네였다. 숙소를 구하기 위해 하추자도 신양항 주변의 민박집들의 문을 두드렸다. 그런데 하나같이 방을 내주기 어렵다고 했다. 단체로 오는 낚시 손님만 받고 있다는 거였다. 하나같이 상추자도로 가면 모텔들이 많다는 말만 할 뿐이었다. 하추자도(3.5㎢)는 상추자도(1.5㎢)보다 두 배 이상 넓은 곳인데 이게 무슨 소린가? 하추자도는 낚시 손님만 대접을 받는 곳이란 말인가? 아무리 그렇더라도 민박 간판을 걸어놓고 손님을 받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되나?
비는 추적추적 내리지, 잠잘 곳은 정해지지 않았지…. 갑자기 기분이 처량해 진다. 한 잔 생각이 굴뚝같다. 어찌된 동네인지 식당조차 눈에 뛰지 않는다. 터벅터벅 신양항 주변의 썰렁한 골목을 걷는다. 그 때 갑자기 따뜻한 풍경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신양상회. 담배, 아이스크림, 학용품 일체.’
타임머신을 타고 몇 십 년 전 고향마을로 되돌아온 기분이었다. 미닫이 유리문에서부터 하늘색 바탕에 둥근 원안 속 빨간 글씨의 담배 포스터까지 원조 구멍가게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었다. 게다가 가게 이름마저 고향마을 이름과 똑같은 ‘신양상회’라니….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가슴이 촉촉해진다. 어릴 적 학교 앞 구멍가게의 모습 그대로다. 나무 선반위엔 새우깡과 영양 갱, 치토스, 꽃게랑 등 과자봉지들이 진열돼 있다. 진열대 뒤편의 작은 골방 모습까지 어쩌면 이리도 똑같을 수가 있을까.
가게를 지키는 할아버지 혼자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올해 예순 아홉인 최경희 할아버지다. 안주라고는 배추 속과 된장, 김 쪼가리뿐이다. 맥주 두 병을 주문했다. 할아버지는 소주를 마시고, 나는 맥주를 마셨다. 술을 마시면서 금방 민박집에서 연거푸 퇴짜를 당한 설움을 할아버지에게 털어놓았다. 할아버지가 역정을 내신다.
“그 놈의 돈 때문에 사람들 마음이 망가진 거야. 민박집에서 한 사람만 받으면 이문이 별로 안 남고 귀찮기만 하니까 박대를 하는 거지. 섬을 황량하게 만드는 원흉은 돈이야. 예전엔 아무리 어렵게 살아도 내 집에 온 손님을 그냥 내보내는 법이 없었어. 밥 한 끼라도 따뜻하게 대접해주는 게 우리네 인심이었지. 사람들이 돈 맛을 알고부터는 인간에 대한 배려를 잃기 시작했어. 돈은 수단일 뿐인데 요즘 사람들은 돈을 주인으로 모시는 거지.”
구멍가게 할아버지의 말씀 수준이 보통을 넘는다. 아니나 다를까. 할아버지는 광주광역시 광주고등학교 앞에서 오랫동안 ‘대학당 서점’을 운영한 인텔리였다. 책 읽고, 글 쓰고, 한 잔 술에 취할 수 있는 조용한 공간을 찾아 11년 전 이곳으로 왔다고 했다.
할아버지 옆에 두툼한 노트 한권이 놓여 있었다. 슬쩍 집어 들어 넘겨보니 반듯하고 깨알 같은 글씨가 가득 담겨있다. 할아버지의 독서 노트였다.
“매일 독서를 하면서 마음에 와 닿은 구절들을 옮겨 적는다네. 금강경 등 불경을 필사하기도 하지. 이제까지 모두 스물네 권의 노트를 채웠지.”
잠깐 방안으로 들어갔던 할아버지가 씨알 굵은 참조기 두 마리를 얹은 프라이팬을 들고 나오신다. 아마도 방 뒤 쪽에 주방이 있나보다. 할아버지는 부탄가스 레인지에 프라이팬을 올려놓고는 참조기를 지글지글 굽는다. 참조기 맛 보다는 할아버지의 인심이 더 고소한 술안주다. 할아버지에게 인생의 길을 물었다. 무릎을 칠만한 명답을 내놓으신다.
“길을 모른다고 가는 길 묻지 말고,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가는 거야. 그게 제대로 사는 길이지. 남 얘기 들을 거 하나도 없어. 내가 주인이 되는 인생을 살면 그뿐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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