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일꿈

지역내일 2010-03-12
업무협조와 시간관리

김현필
회사원

새해 들어서 새로운 직장으로 출근하게 됐다. 7년 가까이 다닌 전 직장을 떠나게 된 이유는 급여조건과 새로운 일에 대한 갈망이었다. 출근하고 나서는 평균 퇴근시간이 밤 10시가 넘을 정도로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나는 가장이니까, 곧 있으면 둘째 아이도 태어나니까…’라는 생각으로 스스로에게 책임감을 부여하며 보람을 찾으려 하고 있다.
이달 들어 우리 팀으로 신입사원이 입사하게 됐다. 신입사원이라니… 언제부터인가 젊은 사원들도 경력직을 많이 뽑는 추세였는데 신입사원이 들어오게 됐다. 이제 우리 팀은 신입을 잘 가르쳐서 퇴근시간도 앞당기고 업무상의 발전도 이루어야 하는 책임을 지게 됐다. 우리 팀과 업무상 협조가 많은 부서에 교육요청 메일을 보내고 신입을 위한 OJT 계획을 세웠다. 고맙게도 대부분의 부서에서 신입사원 교육에 협조를 약속 받았다. 그러던 중 어느 한 부서에 갔더니 “김 차장님, 잠시 차 한잔 하시죠”라며 이야기를 시작하는 분이 있었다. 그 분 말씀의 요지는 “지금까지 신입사원이 들어왔다고 OJT를 한 사례가 없으며 이렇게 해 주는 경우 앞으로 들어올 다른 신입들도 모두 OJT를 해 줘야 하는 부담이 있다. 따라서 미안하지만 OJT를 해주기 곤란하다”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다소 황당했다. 그 분도 늦은 시간까지 야근을 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바쁜 것은 알지만 이렇게 비협조적이고 배타적일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분의 행동은 내가 이 전에 받았던 리더십과 시간관리에 대한 교육, 책 등에서 배웠던 것을 실천으로 옮기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다소 이기적으로 보이는 행동들을 하라고 권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불필요한 회의에는 참석하지 말거나 중간에 나올 것이며, 회의 시간은 분단위로 정확하게 계획하고 실천할 것이며 모든 언행에 단호(Assertive)해야 한다는 식이다. 또한 옆자리로 찾아와 길게 얘기하는 사람들 때문에 시간을 빼앗기지 않도록 빈 의자에 책 같은 것을 쌓아 놓으라고 한 글도 읽은 적이 있다. 신입사원 교육을 못해주겠다며 거절했던 그 분은 자기 업무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거나 우선순위가 낮다고 판단한 일에 대하여 단호하게(표현은 정중했지만) 거절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매일 늦게까지 야근을 하게 되면 여러 가지 단점이 있다. 우선 삶의 균형이 깨지고 균형 잡힌 인간관계와 가족생활을 영위하기 어렵게 된다. 어떤 경우에는 야근이 잦은 사람은 일을 효율적으로 못하거나 일정관리를 잘 못하는 사람이라는 억울한 비판을 받기도 한다. 올해 들어 두 달 넘게 매일 자정이 가까워서 집에 들어가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다 보니 아내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최근에는 나와의 결혼 생활에 대해 회의가 든다는 경고성 메시지까지 들어야 했다. 어차피 얼굴도 못보는데 회사 앞에서 자취를 하는 것이 낫지 않겠냐며 말이다. 하지만 새로운 직장에서 적응하며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나로서는 한동안 정시퇴근은 사실상 어렵다. 또 성격상 다른 동료들의 요청을 그렇게 쉽게 거절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제는 바꿔야 할 것 같다. 보다 단호하면서도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며 부서간 업무 협조에도 문제가 없도록 지혜로운 행동이 필요한 때다. 일에 대한 욕심, 쌓여 있는 업무와 남아서 일을 하고 있는 동료들을 뒤로 한 채 밤 9시 전에 퇴근하면 머리속이 복잡하지만 한편으로는 집에 가면 깨어서 놀고 있는 아이와 아내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발걸음이 가볍다. 앞으로 나의 행동과 업무량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 모르지만 내일은, 다음 주는, 다음 달은 나아지겠지 하는 희망은 늘 한결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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