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여는 책] 신화와 인생

지역내일 2010-03-04 (수정 2010-03-04 오후 1:43:49)
조지프 캠벨 지음·다이앤 K 오스본 엮음
박중서 옮김
갈라파고스. 1만8천원


세계적인 신화종교학자인 조지프 캠벨은 25세이던 1929년부터 1934년까지 미국 뉴욕 우드스톡의 작은 오두막에서 책만 파고들었다. 제임스 조이스와 토마스 만과 슈펭글러를 읽고 니체를, 쇼펜하우어를, 칸트를, 괴테를 읽었다. 논문만 쓰면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었는데도 말이다. 캠벨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 ‘대학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지 않고’ 과감하게 ‘유리병’을 깨뜨리고 나온 것이다.

캠벨은 그 5년 동안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상태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게 무언지 찾으려고 애썼다. 작은 서랍장 안에 1달러짜리 지폐 한 장을 넣어 두고는 아직 빈털터리까지는 아니라고 자위하면서 자유롭고 재미있으며 완벽한 삶을 살고 있다고 확신했다고 한다. 달랑 1달러밖에 없으면서도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자신감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캠벨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누구든 자신의 길을 가고 있으면 “만사가 자연스레 찾아오게 마련”이라는 게 캠벨의 지론이다. 인생은 우리의 의지에 따라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 캠벨이 전하는 핵심은 바로 “자신의 희열을 좇으라(Follow your bliss)”는 메시지다. 뱀이 허물을 벗어버리듯 “지난날을 내팽개치고 떠나라”고 다그친다.

‘신화와 인생’은 캠벨 입문서와 같다. 그가 생전에 미국 에설런 연구소에서 한 달여 간 진행한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다이앤 K. 오스본이 그의 저서와 그가 인용한 여러 작품들의 발췌 글을 더해 엮은 캠벨 사상의 지침서인 셈이다. 아울러 신화와 종교 뿐 아니라 캠벨 자신의 인생을 얘기하며 돈, 사랑, 결혼, 죽음, 직업, 예술 등 현실에서의 삶에 대한 지혜를 풀어놓은 인생 철학서라고도 할 수 있다.

캠벨은 인간은 예측할 수 없는 운명을 안고 홀연히 태어나 각자만의 여행길에 올라 있는 존재라고 했다. 누구든 스스로 길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러기에, 희열을 좇으려면 ‘황무지’를 떠나는 ‘영웅의 여정’의 길을 가라고 말한다. 타의에 의해 자신을 가두어야 하는 세계를 벗어나 ‘삶에 있어 가장 높은 영적인 성취인 성배(聖杯)를 찾아 떠나라’는 것이다. 그래야만 우리를 기다리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면서.

일단 떠나면 오늘만 걱정하라고 캠벨은 말한다. 방랑하는 시간은 긍정적인 시간이므로 새로운 것도, 성취도 생각하지 말고 하여간 그와 비슷한 것은 절대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캠벨은 “그냥 내가 어디에 가야 기분이 좋을까, 내가 뭘 해야 행복할까 그 것만을 생각하라”고 속삭인다. 남들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생각을 치워버려야 희열이 오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영웅의 여정의 목표는 자신을 찾는 것이다. 바로 ‘성배’를 찾는 일이다. 성배는 자신이 원하는 것에 도달하는 영적 성취, 자신이 원하는 희열을 의미한다. 캠벨은 그 상태를 “지금 하는 일에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라고 했다. 자신의 의지와 의도와 소망을 경험할 수 있는 활동 공간, 그 곳이 어디든, 성소를 마련하고 성배를 찾는 여정이 인생이라는 것이다.

성배는 어떻게 찾아 나설 것인가. 삶을 바꿀 수는 없지만 삶에 대한 태도를 바꿀 수는 있다는 믿음으로 일단 “뭔가를 깨뜨리는 것”이다. 빵이란 결국 밀의 죽음으로부터 나온 것 아닌가. 황무지를 자발적으로 떠나는 게 첫걸음이다. 떠나지 않을 어떤 이유를 생각해 낸다거나 두려움을 느끼고 안전한 사회 속에 남아 있는 경우, 그것은 다른 누군가의 종이 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대신 그 모험은 그저 남을 따라가는 여행이 아닌, 자신의 내부에서 솟아난 진정한 모험이어야 한다. 깊은 영적 필요 또는 준비에 적합한 것이어야 한다. 캠벨은 그런 모험에 나서면 마법의 인도자가 홀연히 나타나 도울 것이라고 했다. 일단 그 길에 들어서기만 하면, 이전까지는 열리지 않았던, 그리고 다른 어느 누구를 위해서도 열리지 않을 문들이 열리게 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캠벨이 말하는 성배는 ‘행복이 바로 지금 여기 있음’의 경험이다. 앞에서 말했듯, 천국이 아니 현세에서 일을 하며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성배로 향하는 열쇠는 ‘공감’이다. 나와 대립하는 ‘너’도, 죽음과 악까지도 포용하면서 동일성을 인식하는 것이다. 공감은 타인에 대한, 틀린 것이 아닌 다른 것에 대한 이해다. 무슨 의미인가. ‘영웅의 귀환’과 연관이 있다.

영웅의 귀환이란 여행에서 자신이 찾은, 이 세계에 결여된 것을 가지고 돌아오는 것을 가리킨다. 그 선물을 ‘영리적인 방식’, 즉 돈을 받고 파는 게 아니라 수많은 나 아닌 ‘너’들이 최소한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에 맞추거나 아니면 삶의 은혜로 가공해 전달하라는 것이다. 모험은, 깨뜨리고 떠나 깨달음을 얻고는 다시 돌아와 그 선물을 다른 이들과 공유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이다.

캠벨이 지향하는 고귀한 인생이란 결국 삶을 알고, 사랑하고, 베푸는 것이다. 시작은 ‘깨뜨리고 나오는 것“이다. 두려운가. 어느 아메리카 인디언 소년이 입문제의를 행할 때 얻은 조언이 힘이 될 것이다.
“삶의 길을 가다 보면 커다란 구멍을 보게 될 것이다. 뛰어 넘으라.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넓진 않으리라“

어경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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