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들이여! 참지 말고 싸워라

적절한 감정표출이 건강과 수명에 도움, 싸우는 부부가 건강해

지역내일 2010-02-11 (수정 2010-02-11 오후 5:11:40)

미국 보스턴 소재 이커 연구소가 지난 10년간 주민 37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참고 사는 아내가 남편과 싸우면서 사는 아내보다 심장병 등 각종 질병에 걸려 사망할 확률이 4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캘리포니아 대학의 한 심리학자는 분노나 적개심 같은 감정을 제때에 표출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자기감정을 억제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암 발병률이 훨씬 높다고 지적했다. 즉 결혼생활에서 참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며 시기적절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건강과 수명에 도움이 된다는 결론이다.

여자는 무조건 참아야 한다?
옛말에 ‘여자는 일단 시집가면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이라고 했고 ‘죽어도 그 집 귀신이 되어야 한다’고도 했다. 지금은 여성들의 목소리가 커져 이런 구시대적 사고를 가진 젊은이들은 거의 없겠지만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시대가 있었다. 아직도 50~60대 부부들에게는 가부장적인 문화가 남아있어 부부싸움을 하면 여자가 참아야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우면동의 윤경희(53) 주부는 1년 전 위암판정을 받고 투병중이다. 타고난 성품이 조용한데다 친정 식구들도 모두 같은 분위기여서 ‘결혼만은 터프하고 남자다운 사람과 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남편은 도가 지나쳐 다혈질인데다 성격이 급하고 권위적인 사람이었다. 부부간의 대화는 고사하고 사소한 일에도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심장병에 걸릴 지경이었다.

이웃집에서 들을세라 또는 아이들이 알까봐 쉬쉬하면서 보낸 세월이 25년. 남편만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뛴다는 그는 “암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저 눈물만 흐를 뿐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고 울먹였다. 포이동에 사는 김미선(51) 주부는 가슴이 답답하고 뭔지 모를 울분으로 가득 차있다. 평소 과묵하고 말이 없는 남편은 그런대로 성실한 남편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무심함이 상대를 질리게 했다. 작정을 하고 대화라도 나누려하면 묵묵부답에 사람을 무시하는 듯한 말투로 “내가 잘못했어. 그럼 됐지?”라면서 얘기를 끊어버리기 일쑤다. 이런 남편의 취미 역시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며 영화를 보거나 컴퓨터에 빠져 소일하는 것이다. “자신만의 세계에 심취해있어 가족이 오히려 귀찮다는 식의 남편을 어디까지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황혼이혼도 불사, 수동적인 아내는 가라!
최근 통계청은 지난해 이혼건수가 재작년 대비 7500건 감소해 11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지만, 50대 이상의 황혼이혼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만큼 폭증했다고 발표했다. 55세 이상의 여성이 남성보다 결혼생활에 대한 불만이 많으며 그것이 황혼이혼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권위적인 남편상과 수동적인 아내상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회적인 현상이다.

결혼한 지 20년 이상 된 부부의 이혼이 전체 이혼건수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3.1%로 10년 전(12.4%)보다 두 배 정도 증가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박소현 상담위원은 "성격 차이와 가정 폭력, 배우자의 부정 등으로 괴로워하다가 자녀가 결혼하거나 대학에 진학한 후 이혼을 결행하는 50~60대 여성들이 많아지고 있다"면서 “또 수명 연장과 조기 은퇴로 인해 부부가 함께 생활하는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노년기 부부 갈등이 심화되면서 황혼이혼도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싸우는 부부가 건강하다
이 세상에 갈등 없이 사는 부부는 없다. 결혼생활 역시 갈등의 연속이고 건강한 부부는 갈등을 통해 더욱 성숙한 하나가 되기도 한다. 반면 아예 파경으로 치닫는 부부도 있는데 문제는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능력이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는 ‘싸움은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 여기고 무작정 참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에 대해 가정문화원 김영숙 원장은 “ 이런 부부는 가슴속에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시한폭탄은 결국 황혼이혼이나 몹쓸 질병으로 폭발할 소지가 많다”면서 “정말 심각한 것은 오히려 싸움이 없는 부부, 싸우고 싶지 않은 부부, 싸울 수 없는 부부들이다. 눈에 보이는 외상은 치료할 수 있지만 마음의 상처는 쉽게 드러나지 않고 그 결과 몸과 마음의 질병으로 나타난다”고 강조했다.

결혼하고 27년이 지나도록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는 부부가 있다. 남편의 위압적인 태도와 말투에 기가 질려 말대꾸를 하거나 맞설만한 용기가 없어 엄두를 내지 못하니 부부싸움이 될 리가 없다. 그러나 밖으로 표현되지 않는 감정은 지하수처럼 안으로 스며들어 고이고 썩기 마련이다.

강남베스트클리닉 이승남 원장은 “압력밥솥을 사용할 때 적당한 시점에서 김을 빼줘야 하듯이 부부관계에 있어서도 서로 소통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참다보면 결국엔 불상사가 일어난다”며 “무조건 참다보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졸의 수치가 높아지고 면역력은 억제되기 때문에 만성 소화불량과 편두통에 시달리고 신경과민에 우울증까지 올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이 원장은 “실제로 내원하는 환자의 경우에도 착하고 순종적인 성품의 여성이 암이나 불치병에 걸리는 예가 많으며 자주 싸우는 부부는 그만큼 건강하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김선미 리포터 srakim20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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