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미례 언론인. 번역가
한국의 가난
김수현. 이현주 . 손병돈 지음
한울 . 15000원
“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는 오랜 속담이 있다. 표면상으론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게 쉽지 않다는 뜻이지만, 실은 가난의 책임을 슬쩍 전가하는 듯한 말이다. “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의 대척점에 놓여있다. 빈곤 해결은 국가적으로 밑바닥 빠진 독에 물붓기요, 가난한 자들 스스로에게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 가난하다는 뉴앙스도 풍긴다. 물론 부자들과 지배자의 견해다. 빈곤층을 돕고 사회균형발전을 도모하는 복지정책을 ‘포퓰리즘’으로 보는 사람들의 정서이기도 하다. 과연 그럴까.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라면서 국민의 15%이상이 가난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철거민 노숙자 문제 연구가인 김수현(세종대 도시부동산대학원 ) , 차상위 빈곤층 연구와 빈곤에 관한 기존 논의를 정리했던 이현주(한국보건사회연구원 ), 대학에서 빈곤문제를 가르치며 ‘빈곤과 사회복지 정책’을 펴냈던 손병돈(평택’대 사회복지학과 ) 세명의 저자가 의기투합해서 가난에 관한 책을 냈다. 다른 개발도상국이나 선진국의 빈곤 문제를 다룬 책은 더러 출간된 적 있지만 이 책은 한국인의 관점에서 한국의 빈곤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특별하다. 전문가들의 일부 토론을 제외하고는 가난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교재도, 대중적인 빈곤관련 독서물도 없는 판에 이 문제에 관한 우리 사회의 고민거리를 전부 한 책에 담아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엮었다.
가난이란 수천년 전부터 인류와 함께 해온 난제다. 바나나 세 개를 가진 원숭이에 비해 바나나 한 개 가진 원숭이가 더 가난하다 하여 연구과제로 삼진 않는다. 그러니 가난이란 인류고유의 경제적, 문화적 , 심리적인 요인이 한 사회내에서 혼재하며 더욱 더 복잡하게, 질기게 명맥을 이어 온 것이 분명하다. 지금은 경제적인 것 뿐 아니라 삶의 질이나 향유하는 문화의 정도, 개개인의 빈곤의식이나 상대적 박탈감 도 계산에 넣는다. 돈 하나로 칼을 삼아 가난한 자와 부자를 두부 자르듯 하기도 어려워져 간다. 참 복잡해졌다. 한 가지 분명한건 빈곤문제가 글로벌한 골칫거리이며 선진국마저 이 문제로 부심하는 동안 아시아 아프리카등 가난한 나라들의 가난은 더 심해졌다는 사실이다. 이런 나라들은 국민의 반 이상이 빈곤 상황에 놓여있으며 선진국들의 독식과 자원수탈 구조 때문에 생산성 향상으로 자원의 양이 늘어나도 가난에서 벗어나기 힘든게 현실이다.
한때 ‘잘살아보세’를 구호로 개발연대의 빈곤탈피를 구가하는 듯 하던 한국도 IMF이후 다시 급격한 빈곤층의 증가를 보게 된다. 어느 정도 경제회복이 된 후 2008년 미국발 경기침체를 계기로 빈곤층이 다시 늘어 이제는 15%, 6~7명중 한명 꼴로 빈곤층이다. 굶는 사람은 줄었지만 일을 열심히 해도 가난한 근로빈곤층은 점점 늘었다. 일을 할 수 있는데도 못하거나 안하고 있는 사람도 늘어난다. 외환위기를 겪는 동안 떠오른 ‘양극화’란 용어 뿐 아니라 이제는 ‘ 일하는 빈곤층 (워킹 푸어)’ 또는 ‘신 빈곤층’의 문제가 심각하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리 현실을 바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무엇을 빈곤이라고 하는지, 가난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또 왜 가난해지며 어떻게 하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를 연구해야한다.
그래서 저자들은 이 책을 빈곤이란 무엇인가 , 가난의 모습, 왜 가난해 지는가, 빈곤 넘어서기의 4부로 나누어 한국사회의 맥락에서 이 문제를 다루었다. 특히 ‘가난의 모습’ 부분에서는 전체 노인의 3분지 1을 차지하고 있는 가난한 노인들, 누적된 가난과 소외의 상징인 거리의 노숙인들, 결혼이주 여성과 탈북자등 늘어나는 신종 빈곤층 문제등을 조명한다.
단순한 학문적 고찰 만이 아니라 저자들의 시각은 우리 대부분이 늘 보면서도 간과하고 있는 분명한 현상을 흥미롭게 포착하고 있어서 매우 창의적이다. 이를테면 ‘가난은 모인다’라는 장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한 동네에 산다, 돌볼 사람이 떠난 농촌의 가난과 노인들만의 고립, 가난한 동네 이해하기, 가정문제를 넘어서는 ‘동네’로의 접근등 신선한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 가난을 개인과 가구단위 수치로만 보지 않고 지역단위로, 이를테면 ‘가난의 지리학’을 생각해보자는 취지다. 최근 여론 조사가 발달한 우리 나라에서 과거에 비하면 빈곤층에 대한 조사도 많이 진행되고 있으나 빈곤층의 소득, 인구구조, 가족상황, 근로활동, 질병, 장애, 주거상황들을 세세히 정리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수입이 최저 생계비에도 못미치는 절대빈곤층 외에도 중위소득의 40~60%이하로 정의되는 상대빈곤층의 개략적인 모습까지 정리한 점은 주목할만 하다. 거리의 노숙인만해도 가족도 집도 없이 떠도는 빈곤층의 극단적인 모습을 취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쪽방, 고시원, 심야 사우나 등에서 생활하는 사람들같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인구층이 있기 때문에 이 문제는 그리 간단히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저자들은 보고 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는 자수성가의 신화는 문제를 올바로 보는 것을 더욱 어렵게 한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가난은 당사자의 책임으로 전가되며 그들이 보호받을 권리는 창피한 것으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중산층의 붕괴와 함께 가난한 사람들은 더 늘어나는 한국사회 최대의 우려는 가난의 세습이다. 부모가 가난하면 자식도 가난속에서 희망 없는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한 선진국의 제도는 재산정도와 관계없이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사회적 차별을 당하지 않게 하는 것이지만, 한국에선 어려서부터 가난에 따른 차별과 불이익을 피할 길이 없다. 베이비 붐 세대의 대량 은퇴와 청년 취업난을 겪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저자들이 염원하는 ‘ 보다 인간적인 사회정책’은 점점 더 절실해지고 있다. 상위 이익집단끼리 혜택을 베푸는 신 포퓰리즘설까지 나오고 있는 시점에 이만한 비상업적인 ‘ 가난종합연구서’가 나와준 것만해도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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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가난
김수현. 이현주 . 손병돈 지음
한울 . 15000원
“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는 오랜 속담이 있다. 표면상으론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게 쉽지 않다는 뜻이지만, 실은 가난의 책임을 슬쩍 전가하는 듯한 말이다. “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의 대척점에 놓여있다. 빈곤 해결은 국가적으로 밑바닥 빠진 독에 물붓기요, 가난한 자들 스스로에게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 가난하다는 뉴앙스도 풍긴다. 물론 부자들과 지배자의 견해다. 빈곤층을 돕고 사회균형발전을 도모하는 복지정책을 ‘포퓰리즘’으로 보는 사람들의 정서이기도 하다. 과연 그럴까.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라면서 국민의 15%이상이 가난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철거민 노숙자 문제 연구가인 김수현(세종대 도시부동산대학원 ) , 차상위 빈곤층 연구와 빈곤에 관한 기존 논의를 정리했던 이현주(한국보건사회연구원 ), 대학에서 빈곤문제를 가르치며 ‘빈곤과 사회복지 정책’을 펴냈던 손병돈(평택’대 사회복지학과 ) 세명의 저자가 의기투합해서 가난에 관한 책을 냈다. 다른 개발도상국이나 선진국의 빈곤 문제를 다룬 책은 더러 출간된 적 있지만 이 책은 한국인의 관점에서 한국의 빈곤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특별하다. 전문가들의 일부 토론을 제외하고는 가난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교재도, 대중적인 빈곤관련 독서물도 없는 판에 이 문제에 관한 우리 사회의 고민거리를 전부 한 책에 담아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엮었다.
가난이란 수천년 전부터 인류와 함께 해온 난제다. 바나나 세 개를 가진 원숭이에 비해 바나나 한 개 가진 원숭이가 더 가난하다 하여 연구과제로 삼진 않는다. 그러니 가난이란 인류고유의 경제적, 문화적 , 심리적인 요인이 한 사회내에서 혼재하며 더욱 더 복잡하게, 질기게 명맥을 이어 온 것이 분명하다. 지금은 경제적인 것 뿐 아니라 삶의 질이나 향유하는 문화의 정도, 개개인의 빈곤의식이나 상대적 박탈감 도 계산에 넣는다. 돈 하나로 칼을 삼아 가난한 자와 부자를 두부 자르듯 하기도 어려워져 간다. 참 복잡해졌다. 한 가지 분명한건 빈곤문제가 글로벌한 골칫거리이며 선진국마저 이 문제로 부심하는 동안 아시아 아프리카등 가난한 나라들의 가난은 더 심해졌다는 사실이다. 이런 나라들은 국민의 반 이상이 빈곤 상황에 놓여있으며 선진국들의 독식과 자원수탈 구조 때문에 생산성 향상으로 자원의 양이 늘어나도 가난에서 벗어나기 힘든게 현실이다.
한때 ‘잘살아보세’를 구호로 개발연대의 빈곤탈피를 구가하는 듯 하던 한국도 IMF이후 다시 급격한 빈곤층의 증가를 보게 된다. 어느 정도 경제회복이 된 후 2008년 미국발 경기침체를 계기로 빈곤층이 다시 늘어 이제는 15%, 6~7명중 한명 꼴로 빈곤층이다. 굶는 사람은 줄었지만 일을 열심히 해도 가난한 근로빈곤층은 점점 늘었다. 일을 할 수 있는데도 못하거나 안하고 있는 사람도 늘어난다. 외환위기를 겪는 동안 떠오른 ‘양극화’란 용어 뿐 아니라 이제는 ‘ 일하는 빈곤층 (워킹 푸어)’ 또는 ‘신 빈곤층’의 문제가 심각하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리 현실을 바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무엇을 빈곤이라고 하는지, 가난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또 왜 가난해지며 어떻게 하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를 연구해야한다.
그래서 저자들은 이 책을 빈곤이란 무엇인가 , 가난의 모습, 왜 가난해 지는가, 빈곤 넘어서기의 4부로 나누어 한국사회의 맥락에서 이 문제를 다루었다. 특히 ‘가난의 모습’ 부분에서는 전체 노인의 3분지 1을 차지하고 있는 가난한 노인들, 누적된 가난과 소외의 상징인 거리의 노숙인들, 결혼이주 여성과 탈북자등 늘어나는 신종 빈곤층 문제등을 조명한다.
단순한 학문적 고찰 만이 아니라 저자들의 시각은 우리 대부분이 늘 보면서도 간과하고 있는 분명한 현상을 흥미롭게 포착하고 있어서 매우 창의적이다. 이를테면 ‘가난은 모인다’라는 장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한 동네에 산다, 돌볼 사람이 떠난 농촌의 가난과 노인들만의 고립, 가난한 동네 이해하기, 가정문제를 넘어서는 ‘동네’로의 접근등 신선한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 가난을 개인과 가구단위 수치로만 보지 않고 지역단위로, 이를테면 ‘가난의 지리학’을 생각해보자는 취지다. 최근 여론 조사가 발달한 우리 나라에서 과거에 비하면 빈곤층에 대한 조사도 많이 진행되고 있으나 빈곤층의 소득, 인구구조, 가족상황, 근로활동, 질병, 장애, 주거상황들을 세세히 정리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수입이 최저 생계비에도 못미치는 절대빈곤층 외에도 중위소득의 40~60%이하로 정의되는 상대빈곤층의 개략적인 모습까지 정리한 점은 주목할만 하다. 거리의 노숙인만해도 가족도 집도 없이 떠도는 빈곤층의 극단적인 모습을 취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쪽방, 고시원, 심야 사우나 등에서 생활하는 사람들같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인구층이 있기 때문에 이 문제는 그리 간단히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저자들은 보고 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는 자수성가의 신화는 문제를 올바로 보는 것을 더욱 어렵게 한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가난은 당사자의 책임으로 전가되며 그들이 보호받을 권리는 창피한 것으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중산층의 붕괴와 함께 가난한 사람들은 더 늘어나는 한국사회 최대의 우려는 가난의 세습이다. 부모가 가난하면 자식도 가난속에서 희망 없는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한 선진국의 제도는 재산정도와 관계없이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사회적 차별을 당하지 않게 하는 것이지만, 한국에선 어려서부터 가난에 따른 차별과 불이익을 피할 길이 없다. 베이비 붐 세대의 대량 은퇴와 청년 취업난을 겪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저자들이 염원하는 ‘ 보다 인간적인 사회정책’은 점점 더 절실해지고 있다. 상위 이익집단끼리 혜택을 베푸는 신 포퓰리즘설까지 나오고 있는 시점에 이만한 비상업적인 ‘ 가난종합연구서’가 나와준 것만해도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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