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취업, 높고도 높은 벽”
51세 명퇴 백수
지난해 50세를 갓 넘긴 김 모 씨는 이사직함을 뒤로 하고 명퇴를 당했다. 인수합병을 하면서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회사에 모든 것을 바친 김 씨는 구조조정 대상에서 제외될 것을 내심 자신하고 있었지만 금융위기 칼날을 피해가긴 어려웠다.
그는 명문고 명문대를 나와 제조업체에서 일하기도 했다. 기획업무를 주무기로 새로운 일을 발빠르게 해내는 능력이 탁월해 CEO로부터 많은 기대와 신뢰를 받고 있었다. CEO의 측근이라고 불릴 정도로 CEO와 근접해 각종 정책과 대외업무를 지원해주는 역할을 했다.
특히 CEO가 대외적으로 이름을 얻는 데에 큰 공헌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획업무는 시간이 갈수록 그리 좋은 ‘주특기’가 아니었다. 이사직에 올라선 후 회사 방침이 달라지면서 마케팅과 고객만족 쪽에 CEO의 경영초점이 옮겨갔다. 변화를 제대로 잡지 못한 김 씨가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
김 씨는 우선 버티기로 마음먹었다. 고3인 딸이 눈에 아른 거렸다. 이사직을 맡으며 자녀 뒷바라지는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지난해 딸이 대학에 합격한 후김 씨는 명퇴대상에 포함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CEO와 임원들이 “조금만 기다려보라”며 마치 자리를 마련해 주거나 다른 자리를 알아줄 것처럼 얘기해줬지만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소식이 없다.
김 씨는 그동안 맺은 연줄로 재취업을 시도하고 있지만 참으로 애매한 나이다. 이 정도면 김 씨 뿐만 아니라 관심이 있는 회사에서도 이사급이상의 자리를 생각했지만 김 씨의 전문성이 그리 적합하지 않았다. 낙하산처럼 난데없이 자리를 꿰차고 앉기도 어색한 게 사실이다. 모든 게 엇박자다. 새롭게 시도하기도 어렵고 준비된 게 없어 새로운 분야나 영역을 찾아가기도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관련 업종으로 가기엔 이미 포화상태다. 눈높이도 높아있다.
재취업의 문은 너무나 높고도 높았다. 그는 너무 막막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보이지 않는 터널에 들어선 느낌이다. 이제 갓 대학에 들어가 목돈이 들어가기 시작하는 것도 문제지만 딸 자식 손 잡고 결혼식장에 제대로 들어갈 수 있을 지도 모를 정도로 암담하다고 김 씨는 토로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명퇴공포에 가시방석”
54세 명퇴대기자
올해 54세의 최 모씨. 최 씨는 오늘도 출근하면서 독한 마음을 되새겼다. ‘자식들 고등학교 마칠 때까지는 무슨 수모를 당해도 명퇴하지 않으리라.’
최 씨가 다니는 회사는 최근 대규모 명퇴로 신문지상에 오르내렸던 곳이다. 오래 전에는 국가기관이었고, 공기업으로 전환됐다가 민영화됐다. 최 씨가 입사했을 때에는 잘 나가는 공기업이었다. 당연히 이 곳이 평생직장이 되리라 생각했다. 평생직장에 들어간다는 생각에 입사준비도 열심히 했고 회사 들어가서도 누구보다 노력했ㄷ.
그러다 갑자기 불어온 민영화 바람. 최 씨 회사도 민영화됐고 그 다음해인 2003년 대규모 명퇴가 있었다.
이때만 해도 최 씨는 50대에 들어서기 전이었기 때문에 명퇴당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실감되지 않았다. 2009년 연말 6년만에 찾아온 또 한 번의 대규모 명예퇴직. 이번에는 50대 중반의 최 씨도 당연히 명퇴 대상에 올랐다.
회사내에서 전방위적인 사직 압력을 받았지만 끝까지 버티겠다고 결심했다. 지방 발령을 내든, 인사고과를 F를 주든, 정말 무슨 고난이 닥쳐와도 끝까지 다니겠다고 말이다. 자존심이 없어서, 수치심이 없어서 그런 마음을 먹은 것은 아니다. 어린 자식들한테 아비가 백수인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는 절박한 마음이었다. 직장 후배들은 그런 자기 모습을 보고 대한민국 가장의 현실이 눈물겹다고 했다.
억울한 마음도 있다. 회사 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직도 많은데, 뭐든 시켜만 주면 젊은 후배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더 잘 할 수 있는데 자기 마음을 몰라주는 회사가 야속했다.
젊은 시절을 모조리 바친 회사의 현 상황도 한심하기만 하다.
자기를 포함해 다들 언제 불어닥칠지 모르는 명퇴바람에 걸려들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이니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번엔 어느 조직이 개편될 가능성이 높다느니, 누가 어디로 간다느니. 구조조정은 어떻게 한다느니 위에서 들리는 소문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사람들뿐이다.
아니면 차라리 대충 일하고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것이 낫다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예전처럼 회사일이라면 몸바치는 그런 헌신적인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51세 명퇴 백수
지난해 50세를 갓 넘긴 김 모 씨는 이사직함을 뒤로 하고 명퇴를 당했다. 인수합병을 하면서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회사에 모든 것을 바친 김 씨는 구조조정 대상에서 제외될 것을 내심 자신하고 있었지만 금융위기 칼날을 피해가긴 어려웠다.
그는 명문고 명문대를 나와 제조업체에서 일하기도 했다. 기획업무를 주무기로 새로운 일을 발빠르게 해내는 능력이 탁월해 CEO로부터 많은 기대와 신뢰를 받고 있었다. CEO의 측근이라고 불릴 정도로 CEO와 근접해 각종 정책과 대외업무를 지원해주는 역할을 했다.
특히 CEO가 대외적으로 이름을 얻는 데에 큰 공헌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획업무는 시간이 갈수록 그리 좋은 ‘주특기’가 아니었다. 이사직에 올라선 후 회사 방침이 달라지면서 마케팅과 고객만족 쪽에 CEO의 경영초점이 옮겨갔다. 변화를 제대로 잡지 못한 김 씨가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
김 씨는 우선 버티기로 마음먹었다. 고3인 딸이 눈에 아른 거렸다. 이사직을 맡으며 자녀 뒷바라지는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지난해 딸이 대학에 합격한 후김 씨는 명퇴대상에 포함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CEO와 임원들이 “조금만 기다려보라”며 마치 자리를 마련해 주거나 다른 자리를 알아줄 것처럼 얘기해줬지만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소식이 없다.
김 씨는 그동안 맺은 연줄로 재취업을 시도하고 있지만 참으로 애매한 나이다. 이 정도면 김 씨 뿐만 아니라 관심이 있는 회사에서도 이사급이상의 자리를 생각했지만 김 씨의 전문성이 그리 적합하지 않았다. 낙하산처럼 난데없이 자리를 꿰차고 앉기도 어색한 게 사실이다. 모든 게 엇박자다. 새롭게 시도하기도 어렵고 준비된 게 없어 새로운 분야나 영역을 찾아가기도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관련 업종으로 가기엔 이미 포화상태다. 눈높이도 높아있다.
재취업의 문은 너무나 높고도 높았다. 그는 너무 막막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보이지 않는 터널에 들어선 느낌이다. 이제 갓 대학에 들어가 목돈이 들어가기 시작하는 것도 문제지만 딸 자식 손 잡고 결혼식장에 제대로 들어갈 수 있을 지도 모를 정도로 암담하다고 김 씨는 토로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명퇴공포에 가시방석”
54세 명퇴대기자
올해 54세의 최 모씨. 최 씨는 오늘도 출근하면서 독한 마음을 되새겼다. ‘자식들 고등학교 마칠 때까지는 무슨 수모를 당해도 명퇴하지 않으리라.’
최 씨가 다니는 회사는 최근 대규모 명퇴로 신문지상에 오르내렸던 곳이다. 오래 전에는 국가기관이었고, 공기업으로 전환됐다가 민영화됐다. 최 씨가 입사했을 때에는 잘 나가는 공기업이었다. 당연히 이 곳이 평생직장이 되리라 생각했다. 평생직장에 들어간다는 생각에 입사준비도 열심히 했고 회사 들어가서도 누구보다 노력했ㄷ.
그러다 갑자기 불어온 민영화 바람. 최 씨 회사도 민영화됐고 그 다음해인 2003년 대규모 명퇴가 있었다.
이때만 해도 최 씨는 50대에 들어서기 전이었기 때문에 명퇴당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실감되지 않았다. 2009년 연말 6년만에 찾아온 또 한 번의 대규모 명예퇴직. 이번에는 50대 중반의 최 씨도 당연히 명퇴 대상에 올랐다.
회사내에서 전방위적인 사직 압력을 받았지만 끝까지 버티겠다고 결심했다. 지방 발령을 내든, 인사고과를 F를 주든, 정말 무슨 고난이 닥쳐와도 끝까지 다니겠다고 말이다. 자존심이 없어서, 수치심이 없어서 그런 마음을 먹은 것은 아니다. 어린 자식들한테 아비가 백수인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는 절박한 마음이었다. 직장 후배들은 그런 자기 모습을 보고 대한민국 가장의 현실이 눈물겹다고 했다.
억울한 마음도 있다. 회사 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직도 많은데, 뭐든 시켜만 주면 젊은 후배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더 잘 할 수 있는데 자기 마음을 몰라주는 회사가 야속했다.
젊은 시절을 모조리 바친 회사의 현 상황도 한심하기만 하다.
자기를 포함해 다들 언제 불어닥칠지 모르는 명퇴바람에 걸려들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이니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번엔 어느 조직이 개편될 가능성이 높다느니, 누가 어디로 간다느니. 구조조정은 어떻게 한다느니 위에서 들리는 소문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사람들뿐이다.
아니면 차라리 대충 일하고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것이 낫다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예전처럼 회사일이라면 몸바치는 그런 헌신적인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