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낳고 싶은 세상
아이를 안 낳는다고 야단입니다. 이러다 나라가 망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그 통에 가임기를 지난 제게도 의술의 발달을 운운하며 수태를 권하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처음엔 웃어넘겼지만 집요하게 설득하는 데에는 겁이 날 지경입니다. 이런 식이면 조만간 출산이 국민의 5대 의무로 제정된 데도 놀랄 게 없을 것 같습니다. 아니, 이미 그런 조짐이 보입니다.
얼마 전 잡지에서, 인공낙태를 한 여성에게 2년 징역형을 구상 중이라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지난 9일에는 한 여대에서 학생들에게 낙태 방지와 출산을 약속하는 ‘출산서약서’를 쓰게 해 논란이 일기도 했지요. 한국 여성들이 동정녀 마리아도 아니고, 임신을 여성 혼자 하는 게 아닌데 어떻게 이런 발상들이 나오는지 이해하기 힘듭니다.
보건복지가족부가 발표한 ‘2009년도 결혼 및 출산 동향 조사’를 보면, 출산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자녀 교육비 부담과 소득·고용의 불안정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돈이 없어 아이를 못 낳는다는 거지요. 예전에야 제 먹을 것은 제가 갖고 나온다고 믿었지만, 요즘처럼 어릴 적엔 공부에 시달리고 자라서는 취업에 목을 매다가 중년에 이르면 은퇴를 걱정해야 하는 세상에서 그런 말을 믿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 한국 사회에서 아이를 가장 많이 낳는 계층이 월 평균소득 426만 원 이상의 고소득층이라는 조사는 너무나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런데도 낙태한 여성을 감옥에 보낼 궁리나 하고 여대생들에게 서약서 따위를 받는 것은, 아이 낳기 힘든 사회를 만드는 데 한몫한 기득권층이 자신의 죄를 힘없는 여성에게 덮어씌우는 치사한 짓입니다.
최근 정부는 저출산을 극복하겠다며 여러 방안을 내놓았습니다. 그중에는 남성의 육아휴직을 장려하고 싱글맘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겠다는 반가운 소식도 있지만, 실익(實益)이 의심스러운 애매한 방안도 적지 않습니다. 취학연령을 만 5세로 낮춰 양육부담을 덜겠다, 이중국적을 허용해 한국인을 늘리겠다, 대학 입학 전형과 취업 시 셋째를 우대하겠다는 것들이 그런 예이지요.
입학 연령 낮추기의 경우, 유치원은 종일반이 있어서 일하는 엄마들이 도움을 받았지만 오후 1시면 끝나는 학교에선 결국 또 학원을 보내야 하는 결과가 우려됩니다. 더구나 안 그래도 조기교육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일찌감치 학교에 보낸다면 어린 나이부터 성적 스트레스에 시달릴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이중국적이나 셋째 우대 또한 이 사회에서 아이를 가장 적게 낳는 중산층을 배려한 정책이기보다는, 셋째 낳을 능력도 있고 원정출산도 할 수 있는 고소득층을 위한 정책이기 쉽습니다.
사실 인구 감소가 걱정이라면, 해외입양으로 돈벌이하는 일부터 당장 그만두도록 제도를 만들고 지원해야 할 것입니다. 기껏 태어난 아이들도 우리 품에 보듬지 못하면서 아이를 낳으라고 닦달하는 건 우스운 일이니까요. 해외입양을 줄이자 하면 당장 국내입양을 늘리자고 하는데, 사실은 경제적·사회적 이유로 아이를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가난하든 미혼모든 마음 편히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전체 보육시설의 5.5%에 불과한 국공립 시설을 늘리고 학교에서 무상급식을 하는 것과 같은, 작지만 실속 있는 정책들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내년 예산에서 공보육시설 신축 예산은 올해보다 오히려 74%가 줄었고, 무상급식을 하겠다는 교육감은 반대당의 거부로 정책이 무산되는 것은 물론 검찰 고발까지 당했습니다.
그리스 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뤼시스트라테>라는 희극을 보면, 오랜 전쟁을 끝내기 위해 여성들이 ‘잠자리 파업’을 벌이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요즘처럼 여성에게 출산과 육아의 책임을 떠맡기고도 미안해하기는커녕 아이를 안 낳는다며 비난이나 하는 사회에서는, 아리스토파네스식의 ‘출산 파업’이 일어난대도 놀랄 게 없을 듯합니다.
세상이 살만하면 아이는 낳지 말래도 낳을 것입니다. 그러니 공연히 출산 광고에 세금 쓰지 말고, 배곯는 아이, 한숨짓는 어미가 없도록 세금 한 푼이라도 제대로 썼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새해엔 아이 낳고 싶은 세상이 왔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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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시스트라테>
아이를 안 낳는다고 야단입니다. 이러다 나라가 망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그 통에 가임기를 지난 제게도 의술의 발달을 운운하며 수태를 권하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처음엔 웃어넘겼지만 집요하게 설득하는 데에는 겁이 날 지경입니다. 이런 식이면 조만간 출산이 국민의 5대 의무로 제정된 데도 놀랄 게 없을 것 같습니다. 아니, 이미 그런 조짐이 보입니다.
얼마 전 잡지에서, 인공낙태를 한 여성에게 2년 징역형을 구상 중이라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지난 9일에는 한 여대에서 학생들에게 낙태 방지와 출산을 약속하는 ‘출산서약서’를 쓰게 해 논란이 일기도 했지요. 한국 여성들이 동정녀 마리아도 아니고, 임신을 여성 혼자 하는 게 아닌데 어떻게 이런 발상들이 나오는지 이해하기 힘듭니다.
보건복지가족부가 발표한 ‘2009년도 결혼 및 출산 동향 조사’를 보면, 출산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자녀 교육비 부담과 소득·고용의 불안정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돈이 없어 아이를 못 낳는다는 거지요. 예전에야 제 먹을 것은 제가 갖고 나온다고 믿었지만, 요즘처럼 어릴 적엔 공부에 시달리고 자라서는 취업에 목을 매다가 중년에 이르면 은퇴를 걱정해야 하는 세상에서 그런 말을 믿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 한국 사회에서 아이를 가장 많이 낳는 계층이 월 평균소득 426만 원 이상의 고소득층이라는 조사는 너무나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런데도 낙태한 여성을 감옥에 보낼 궁리나 하고 여대생들에게 서약서 따위를 받는 것은, 아이 낳기 힘든 사회를 만드는 데 한몫한 기득권층이 자신의 죄를 힘없는 여성에게 덮어씌우는 치사한 짓입니다.
최근 정부는 저출산을 극복하겠다며 여러 방안을 내놓았습니다. 그중에는 남성의 육아휴직을 장려하고 싱글맘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겠다는 반가운 소식도 있지만, 실익(實益)이 의심스러운 애매한 방안도 적지 않습니다. 취학연령을 만 5세로 낮춰 양육부담을 덜겠다, 이중국적을 허용해 한국인을 늘리겠다, 대학 입학 전형과 취업 시 셋째를 우대하겠다는 것들이 그런 예이지요.
입학 연령 낮추기의 경우, 유치원은 종일반이 있어서 일하는 엄마들이 도움을 받았지만 오후 1시면 끝나는 학교에선 결국 또 학원을 보내야 하는 결과가 우려됩니다. 더구나 안 그래도 조기교육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일찌감치 학교에 보낸다면 어린 나이부터 성적 스트레스에 시달릴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이중국적이나 셋째 우대 또한 이 사회에서 아이를 가장 적게 낳는 중산층을 배려한 정책이기보다는, 셋째 낳을 능력도 있고 원정출산도 할 수 있는 고소득층을 위한 정책이기 쉽습니다.
사실 인구 감소가 걱정이라면, 해외입양으로 돈벌이하는 일부터 당장 그만두도록 제도를 만들고 지원해야 할 것입니다. 기껏 태어난 아이들도 우리 품에 보듬지 못하면서 아이를 낳으라고 닦달하는 건 우스운 일이니까요. 해외입양을 줄이자 하면 당장 국내입양을 늘리자고 하는데, 사실은 경제적·사회적 이유로 아이를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가난하든 미혼모든 마음 편히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전체 보육시설의 5.5%에 불과한 국공립 시설을 늘리고 학교에서 무상급식을 하는 것과 같은, 작지만 실속 있는 정책들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내년 예산에서 공보육시설 신축 예산은 올해보다 오히려 74%가 줄었고, 무상급식을 하겠다는 교육감은 반대당의 거부로 정책이 무산되는 것은 물론 검찰 고발까지 당했습니다.
그리스 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뤼시스트라테>라는 희극을 보면, 오랜 전쟁을 끝내기 위해 여성들이 ‘잠자리 파업’을 벌이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요즘처럼 여성에게 출산과 육아의 책임을 떠맡기고도 미안해하기는커녕 아이를 안 낳는다며 비난이나 하는 사회에서는, 아리스토파네스식의 ‘출산 파업’이 일어난대도 놀랄 게 없을 듯합니다.
세상이 살만하면 아이는 낳지 말래도 낳을 것입니다. 그러니 공연히 출산 광고에 세금 쓰지 말고, 배곯는 아이, 한숨짓는 어미가 없도록 세금 한 푼이라도 제대로 썼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새해엔 아이 낳고 싶은 세상이 왔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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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시스트라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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