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동 칼럼]4대강에 수몰된 예산심의

지역내일 2009-11-26
4대강에 수몰된 예산심의
김진동 (본지 논설고문)

“어제는 역사(history)이고 내일은 모호(mystery)다. 오늘(present)은 선물(present)이다”오늘의 중요성을 강조한 명귀다.
‘어느 결혼식에 주례를 선 저명인사가 주례사를 열변하다가 갑자기 신랑 신부에게 질문을 던졌다. “금(金) 중에서 가장 귀하고 비싼 금은 무엇이겠는가’ 신랑은 황금이라고 말했고 신부는 백금이라고 대답했다. 주례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세상에서 가장 비싸고 귀한 금은 ‘지금’이라네. 그러니 지금에 최선을 다하고 지금에 충실하기 바라네. 내일은 보장이 없다네. 내일은 미스터리야” 신랑 신부는 말할 것도 없이 결혼식장의 만장한 축하객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시계에는 오직 현재라는 두 글자뿐”이라는 셰익스피어의 명언과도 통한다.

날치기 통과 명분쌓기인가
세상은 이 명언을 다 알고 있는데 국회만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오늘의 선물을 달가와 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황금보다 더 값진 지금의 중요성을 외면하는 것인지 기다려 주지 않는 오늘을 허송하고 있다.
국회의 새해 예산심의가 장기화될 조짐이다. 4대강 사업예산을 둘러싼 여야간 대치로 상임위 심의는 단 한 곳도 마치지 못했고 예결위는 일정도 잡히지 않았다. 법정시한(12월2일)내 처리는 이미 물건너 갔으며 해를 넘겨 사상 초유의 준예산 편성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국회 예산심의의 파행은 올해만의 일은 아니다. 해마다 경험하게 되는 한국 국회 특유의 고질병이다. 제대로 심의다운 심의를 해본 적이 없다. 대치와 파행을 거듭하다가 시한을 넘겨 여당의 단독처리로 끝장이 나곤 한다. 예산안 심의만은 합의해야 한다는 관행도 깨진지 오래다.
이번 예산심의 파행의 쟁점이 4대강이라는 점이 다를뿐 대립과 부실심의는 예년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돌아가는 모양새로 보면 올해도 여야가 싸우고 또 싸우다가 숫자 몇 자 고치는 둥 마는 둥 시한을 넘겨 여당 단독으로 처리하는 수순으로 가고 있다.
정부가 제출한 4대강 예산 자료가 미흡하다는 이유로 야당이 심의를 거부하자 여당은 자료가 충분한데도 야당이 정치논리로 트집을 잡고 있다고 비난한다. 여당은 전체 예산의 1.25%에 불과한 4대강사업 때문에 전체 예산안 심의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주장이다. 반면 야당은 정부가 제대로 된 세부자료를 주지 않아 국회의 예산심의를 방해하고 있다고 다그친다. 국가재정 파탄과 환경재앙을 초래할 4대강 예산을 최대한 삭감하고 그 돈으로 일자리를 늘리고 교육 복지 중소기업예산을 늘리겠다고 주장한다.
정부의 4대강 예산자료는 처음부터 부실하다는 지적이 없지 않았다. 여당에서조차 부실을 인정할 정도다.
4대강 사업은 비용과 효과, 사전착공 시공사 선정 등 절차상의 편법 등으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1년 이상 걸려도 모자랄 환경영향 평가를 단 석달만에 뚝딱 해치우고 예산이 확정되기도 전에 착공부터 하면서 일사천리로 밀어붙이고 있다. 무엇 때문에 그 방대한 사업을 속전하려 하는지 속사정에 아리송한 눈총이 쏠리고 있다. 돈이 얼마나 들어갈지 예측하기조차 쉽지 않은 사업인데도 예산자료가 부실하다면 뭔가 꼼수가 숨겨져 있다는 의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예산심의 지연을 야당의 정략으로 몰아붙이고 덤터기를 씌우려 하는 것 또한 날치기 통과의 명분쌓기를 위한 술수로 의심 받을만 하다.
4대강 사업이 적법하고 떳떳하다면 야당이 요구하는 자료를 완벽하게 제출하여 당당히 심의를 받지 못할 이유가 없다. 국회는 국민을 대신해서 국민이 낸 세금을 제대로 쓰이도록 감시할 책무가 있다. 4대강 사업도 예외일 수는 없다. 그런데도 자료가 부실해서 심의를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은 국민의 눈을 가리는 행위나 다름없다.

수박 겉핥기에도 부족할판
그렇지 않아도 국회가 근본적인 사명을 다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제도적인 허점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 국회의 예산심의 기간은 60일쯤밖에 되지 않는다. 국정감사와 대정부 질문을 하고 남은 기간은 실질적으로 20일도 채 안된다. 국가 진로가 담긴 예산을 고작 20여일에 심사해야 한다니 말이 심의지 통과의례에 불과할 뿐이다. 영국과 독일의 120일, 미국의 240일에 비하면 수박 겉핥기에도 부족할 판이다.
일본은 민간 전문가가 참여하는 ‘예산공개심의제도’를 도입하고 인터넷으로 생중계한다. 국회가 못하면 국민이 나설 수밖에 없다. “내일은 미스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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