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원합의체 회부 … ‘혼인파탄 책임있으면 이혼청구 불가’ 판례 변경 가능
쟁점이 복잡하고 사회적으로 관심이 높은 사건은 대법원 내부에서도 치열한 법리논쟁이 벌어진다. 대법원 판결이 하급심 법원에 미치는 영향과 사회적 파괴력이 크기 때문이다. 1년에 3만건 가량의 사건을 처리하는 대법원에는 수많은 사건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대법원 사건은 공개 재판을 열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중요한 사건도 여론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내일신문에서는 여론을 환기시키기 위해 대법원 사건 중 사회적 관심이 높은 사건을 골라 집중 분석했다.
도저히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가정이 깨진 상황에서 혼인 파탄의 책임이 있는 배우자가 이혼소송을 제기할 수 있을까.
1,2심에서는 이길 수도 있지만 대법원까지 가면 패소할 수밖에 없다. 유책배우자는 혼인관계의 파탄을 이유로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는 게 대법원의 기존 판례이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혼인관계의 파탄만으로도 이혼이 가능한 ‘파탄주의’가 아니라 소위 ‘유책주의’를 택하고 있다.
하지만 대법원에서 판례 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법원이 유책 배우자의 이혼청구 사건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한 것으로 18일 확인됐다.
대법관 4명이 심리하는 ‘소부’가 아니라 대법원장을 비롯해대법관 13명이 참여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한다는 것은 기존 판례의 변경 가능성을 대법관 전원이 심도 있게 논의해보자는 의미를 갖고 있다.
대법원 고위관계자는 “전원합의체에서 논의할만한 적합한 사건을 고르고 있는 중”이라며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볼 때 공개변론을 열 가능성도 높다”고 말했다.
◆유책주의냐 파탄주의냐 = 대법원의 이 같은 변화는 최근 하급심을 중심으로 대법원 판례와 어긋나는 판결이 잇따라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의 기존 판례는 “혼인생활의 파탄의 대해 주된 책임이 있는 배우자는 원칙적으로 그 파탄을 사유로 해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고 유책주의를 명백히 하고 있다. 다만 “상대방도 그 파탄 이후 혼인을 계속할 의사가 없음이 객관적으로 명백한데도 오기나 보복적 감정에서 이혼에 응하지 않고 있을 뿐이라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가 허용된다”고 밝혔다.
지난 6월 광주고법 가사1부는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이혼결정을 내려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는데 판결문을 통해 대법원 판례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광주고법의 판결은 혼인파탄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따지는 ‘유책주의’보다는 혼인관계가 이미 회복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 이혼이 불가피하다는 ‘파탄주의’를 판결문에 분명히 명시했다.
재판부는 “상대방의 이혼의사가 객관적으로 명백한데 유책배우자라는 이유로 이혼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면 독립적인 인격 사이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해야 할 혼인 관계를 국가가 강제하는 것이 되어 개인이 지닌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침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또 “부부관계가 이미 파탄되어 회복할 수 없는 상태임에도 이혼을 할 수 없게 됨에 따라 서로 상대방에 대한 원망과 불신의 감정이 쌓이게 되고 자녀의 양육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날 뿐 아니라 상대방과의 갈등으로 부모로서의 양육책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유책주의’ 변경할 만큼 시대 바뀌었나 = 유책배우자가 제기한 이혼청구 사건은 현재 여러 건이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광주고법의 사건도 현재 대법원 3부에서 주심인 신영철 대법관이 심리 중이다.
1심 법원에서는 ‘유책주의’에 반대되는 판결이 여러 건 나왔지만 상당수가 2심에서 깨졌다. 광주고법에서 이를 받아들이면서 항소심에도 변화가 생겼고 이제 대법원의 판단만을 남겨두고 있다.
1심 재판을 맡은 판사들 중에는 ‘파탄주의’에 동조하면서도 대법원 판례 때문에 이혼을 청구한 유책배우자뿐만 아니라 상대방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유책주의’ 이혼 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지 않으면 판결을 내리지 않고 조정을 통해 결론적으로는 ‘이혼’ 결정을 하는 사례가 있다. 그만큼 법원 내부에서도 의견대립이 팽팽하다. 법학계에서도 “유책주의를 택하면 이혼소송에서 서로의 유책사유만 공격하는 현상이 벌어진다”며 파탄주의로 가야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인정하지 않은 것은 최대한 이혼을 막고 사회적 약자인 미성년자와 여성을 보호하자는데 목적이 있었다. 경제적으로 취약한 여성들이 이혼을 선택하게 되면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하고 자칫 빈곤층으로 내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여성의 지위가 갈수록 향상되고 있으며 여성이 이혼청구를 주도적으로 하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는 등 여성 보호의 의미가 과거와 달리 퇴색됐다는 주장 또한 있다.
이혼 문제는 혼인제도 전반과도 연결되는 만큼 대법원은 판단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 파장이 큰 만큼 공개변론을 통해 여론수렴절차를 밟을 가능성이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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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이 복잡하고 사회적으로 관심이 높은 사건은 대법원 내부에서도 치열한 법리논쟁이 벌어진다. 대법원 판결이 하급심 법원에 미치는 영향과 사회적 파괴력이 크기 때문이다. 1년에 3만건 가량의 사건을 처리하는 대법원에는 수많은 사건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대법원 사건은 공개 재판을 열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중요한 사건도 여론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내일신문에서는 여론을 환기시키기 위해 대법원 사건 중 사회적 관심이 높은 사건을 골라 집중 분석했다.
도저히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가정이 깨진 상황에서 혼인 파탄의 책임이 있는 배우자가 이혼소송을 제기할 수 있을까.
1,2심에서는 이길 수도 있지만 대법원까지 가면 패소할 수밖에 없다. 유책배우자는 혼인관계의 파탄을 이유로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는 게 대법원의 기존 판례이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혼인관계의 파탄만으로도 이혼이 가능한 ‘파탄주의’가 아니라 소위 ‘유책주의’를 택하고 있다.
하지만 대법원에서 판례 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법원이 유책 배우자의 이혼청구 사건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한 것으로 18일 확인됐다.
대법관 4명이 심리하는 ‘소부’가 아니라 대법원장을 비롯해대법관 13명이 참여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한다는 것은 기존 판례의 변경 가능성을 대법관 전원이 심도 있게 논의해보자는 의미를 갖고 있다.
대법원 고위관계자는 “전원합의체에서 논의할만한 적합한 사건을 고르고 있는 중”이라며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볼 때 공개변론을 열 가능성도 높다”고 말했다.
◆유책주의냐 파탄주의냐 = 대법원의 이 같은 변화는 최근 하급심을 중심으로 대법원 판례와 어긋나는 판결이 잇따라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의 기존 판례는 “혼인생활의 파탄의 대해 주된 책임이 있는 배우자는 원칙적으로 그 파탄을 사유로 해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고 유책주의를 명백히 하고 있다. 다만 “상대방도 그 파탄 이후 혼인을 계속할 의사가 없음이 객관적으로 명백한데도 오기나 보복적 감정에서 이혼에 응하지 않고 있을 뿐이라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가 허용된다”고 밝혔다.
지난 6월 광주고법 가사1부는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이혼결정을 내려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는데 판결문을 통해 대법원 판례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광주고법의 판결은 혼인파탄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따지는 ‘유책주의’보다는 혼인관계가 이미 회복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 이혼이 불가피하다는 ‘파탄주의’를 판결문에 분명히 명시했다.
재판부는 “상대방의 이혼의사가 객관적으로 명백한데 유책배우자라는 이유로 이혼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면 독립적인 인격 사이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해야 할 혼인 관계를 국가가 강제하는 것이 되어 개인이 지닌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침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또 “부부관계가 이미 파탄되어 회복할 수 없는 상태임에도 이혼을 할 수 없게 됨에 따라 서로 상대방에 대한 원망과 불신의 감정이 쌓이게 되고 자녀의 양육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날 뿐 아니라 상대방과의 갈등으로 부모로서의 양육책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유책주의’ 변경할 만큼 시대 바뀌었나 = 유책배우자가 제기한 이혼청구 사건은 현재 여러 건이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광주고법의 사건도 현재 대법원 3부에서 주심인 신영철 대법관이 심리 중이다.
1심 법원에서는 ‘유책주의’에 반대되는 판결이 여러 건 나왔지만 상당수가 2심에서 깨졌다. 광주고법에서 이를 받아들이면서 항소심에도 변화가 생겼고 이제 대법원의 판단만을 남겨두고 있다.
1심 재판을 맡은 판사들 중에는 ‘파탄주의’에 동조하면서도 대법원 판례 때문에 이혼을 청구한 유책배우자뿐만 아니라 상대방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유책주의’ 이혼 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지 않으면 판결을 내리지 않고 조정을 통해 결론적으로는 ‘이혼’ 결정을 하는 사례가 있다. 그만큼 법원 내부에서도 의견대립이 팽팽하다. 법학계에서도 “유책주의를 택하면 이혼소송에서 서로의 유책사유만 공격하는 현상이 벌어진다”며 파탄주의로 가야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인정하지 않은 것은 최대한 이혼을 막고 사회적 약자인 미성년자와 여성을 보호하자는데 목적이 있었다. 경제적으로 취약한 여성들이 이혼을 선택하게 되면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하고 자칫 빈곤층으로 내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여성의 지위가 갈수록 향상되고 있으며 여성이 이혼청구를 주도적으로 하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는 등 여성 보호의 의미가 과거와 달리 퇴색됐다는 주장 또한 있다.
이혼 문제는 혼인제도 전반과도 연결되는 만큼 대법원은 판단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 파장이 큰 만큼 공개변론을 통해 여론수렴절차를 밟을 가능성이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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