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역사상 최초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된 버락 오바마. 인도네시아에서 재혼한 딸을 대신해 외할머니 던햄은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오바마의 교육을 위해 최선을 다했으며 오바마 역시 외할머니를 ‘바위와 같이 든든한 존재’라고 말하며 깊이 의지했다. 여성 최초로 노벨상을 수상한 퀴리부인은 노벨상 수상 후 “내가 연구와 가정이라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가족의 유대가 뒷받침 되었다”고 회고하며 노벨상의 영광을 부모님께 돌렸다.
맞벌이 부부가 대세를 이루는 요즘, 손자 손녀를 돌보는 할머니 모습은 우리 주변 어디에서든 찾아볼 수 있는 풍경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 할머니들이 두 팔을 걷어붙였다. 기왕에 시작한 손자 손녀 양육, 할 거면 제대로 하자고!
맞벌이 부부의 지상 최대 난제, 자녀양육
오늘도 어김없이 8시50분이 되면 배민자(64)할머니는 손녀를 유치원에 보내기 위해 집을 나선다. 유치원차가 오는 시계탑 아래에 가면 손자들과 함께 차를 기다리는 윤 할머니와 하루도 빠짐없이 만난다. 그 할머니 역시 직장에 다니는 딸 대신 외손자 둘을 키우고 있는 중. 연년생 손자 둘을 돌보는 윤 할머니는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젓는다. 오는 11월에 있을 교대부속초등학교 추첨 이야기에서부터 환절기 일교차가 심해져 건강관리에 더욱 신경이 쓰인다는 얘기까지, 짧게 오 분에서 길게는 삼십분 이상 이야기가 오간다. 내년이면 학교에 들어가는 손자 손녀들에 대한 교육정보와 환절기 아이들 건강관리가 할머니들의 주요 관심사다.
“자식들 낳고 곱이곱이 넘어 결혼까지 시켜도 툴툴 털어버리기엔 아직 먼 것 같다”는 배 할머니처럼 아파트 놀이터, 문화센터나 학원 앞에서 손자?손녀들과 함께 하는 할머니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안산에서 치과를 운영 중인 은미랑(37)씨는 “언젠가 엄마에게 언제까지 손녀를 봐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네 형편이랑 내 건강이 될 때까지 봐주겠다는 대답을 듣고 가슴이 울컥했다”고 했다. 학창시절 공부 잘하는 딸을 둔 덕에 항상 뒷바라지만 하던 친정어머니에게 자식까지 맡겨 미안하고 고마울 뿐이라고.
우리사회의 신풍속도, 배우는 할머니의 등장
손자 손녀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할머니들이 늘어나면서 기왕에 할 거면 제대로 하기위해 배우고자 하는 열기도 뜨거워졌다. 예비할머니들은 보건소나 기업 교육 강좌를 통해 30~40년 전 기억을 되살리며 아기 목욕시키기 등 보육에 관한 정보를 얻고 있으며, 예닐곱 살의 손자 손녀를 둔 할머니들은 취미특기강좌나 영어교육을 위해 발품을 팔기도 한다. 여기에 아이들의 정서함양과 대인관계까지 챙기다 보면 할머니들의 발걸음은 오늘도 바쁘기만 하다.
서초보건소는 오는 11월 18일부터 25일까지 일주일간 하루 두 시간씩 예비할머니 교육을 진행할 예정인데 벌써부터 문의전화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6월 성황리에 끝낸 예비할머니 교육이 할머니들 사이에 큰 호응을 얻은 후, 구로구를 비롯한 다른 기관에서도 예비할머니교실을 적극 추진 중에 있다.
서초구 보건소 모자보건팀의 양정애씨는 “모자보건사업을 오랫동안 하다 보니 무엇보다도 할머니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보건 교육실이 좁아서 접수하신 분들에게 모두 기회를 드리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고 말했다. 11월 진행될 서초구 예비할머니 교실은 오는 10월 14일부터 교육신청을 받는다.
초등학교 2학년인 손녀를 일주일에 두 번 영어학원에 데리고 다니고 있는 김 모 할머니는 “손녀 영어회화 실력도 키우고 주재관으로 미국에 있는 큰 딸네 소식도 들을 겸 매주 한두 번 씩 미국에 있는 큰 손녀에게 화상 전화를 건다.”며 “영어회화도 회화지만 둘 다 외동아라서 성격이 소심한 면이 있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해서 시작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지리적으로 떨어져 지내는 손녀들이 지금처럼 지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며 “험한 세상에 서로 의지하고 친자매처럼 지내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뿌듯하다”고 맘을 털어놨다.
이처럼 전문가들은 손자 손녀들에게 양질의 교육은 물론 정서적인 부분까지 섬세하게 챙겨주는 이른바 할머니 멘토가 되기까지는 할머니들의 많은 노력과 수고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자녀양육의 해법, 격대교육에서 찾는다.
젊은 엄마들 못지않게 교육에 열정을 갖고 경제적인 여유까지 갖춘 할머니들의 등장은 자녀교육에 허덕이는 맞벌이부부들에게는 최고의 해법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격대교육(격대교육이란 할아버지가 손자, 할머니가 손녀를 맡아 잠자리를 함께 하면서 교육하는 것을 말한다)은 한세대를 건너기 때문에 자녀교육에 있어 욕심이 직접 드러나지 않고 기다려준다는데 교육 효과가 높다고 한다.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의 최효찬 소장은 “부모의 교육은 욕심이 앞서다보니 아이들에게 보다 많은 것을 기대하게 되나, 할아버지 할머니는 오랜 경험과 연륜으로 조급하게 기대하기 보다는 참아주는 교육을 하게 된다”며 “이렇듯 격대교육은 아이의 정서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고 밝혔다.
박수진리포터 icoco19@paran.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