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도서관 생긴 후 우리 애가 달라졌어요”
언제 어디서나 책 빌려 … “한 해 40~50권 읽는 책세대 양성”
지난 5일 경남 김해시 외동 뜨란채 아파트 관리동 2층 ‘뜨란채작은도서관’에 들어서자 30평 남짓한 공간에서 10여명의 아이들이 자유롭게 책을 읽고 있었다.
몇몇 아이들은 바닥에 드러누워 만화책을 보고 있고 어떤 학생은 소설을 읽고 있었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 온 경우도 있었다.
김상미(김해 외동초등 6학년)양은 최근 즐겁게 읽은 책으로 아동만화인 ‘내일은 실험왕’과 일제시대 얘기인 ‘압록강은 흐른다’를 꼽았다. 김 양은 “마을도서관이 생긴 후에 책을 자주보게 된다”면서 일주일에 다섯권 정도를 읽는다고 자랑했다.
같은 학교 박민욱(6학년)군은 “일주일에 한 권 정도 읽다가 가까이 도서관이 생겨 자주 찾게 된다”면서 ‘마법의 시간여행’을 최근 읽었다고 한다.
뜨란채작은도서관은 아파트 관리동 일부를 개조해 지난 7월10일 문을 열었다. 넓이 90㎡에 보관된 책은 2400여권이다. 개관비용은 김해시가 5000만원, 주민들이 2000만원을 냈다. 시는 매달 200만원의 운영비를 지원하고 주민들이 운영위원회를 구성해 자율적으로 운영한다. 도서관은 방학을 맞아 ‘신문활용교육(NIE)’ ‘만들기’ ‘영화상영’ 등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자원봉사하러 왔다가 명예도서관장을 맡게 됐다는 신양자씨는 “처음에는 놀이방 분위기였으나 점차 아이들도 조용해 지고 도서관 분위기가 정착됐다”면서 “9시 문을 열 때면 아이들이 줄을 서 있다”고 말했다.
◆김해 도서관 천국 =
김해시에는 마을단위 작은도서관 24개가 있다. 올해까지 27개로 늘이고 2015년 100개 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시는 1만㎡ 이상의 신축 대형건축물은 작은도서관을 설계에 반영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김해시 장유에 있는 롯데아울렛 내 작은도서관이 그 첫 사례다.
경찰유치장, 공공청사 사무실, 보건소, 공원화장실 등 27군데에 설치된 미니도서관과 버스승강장에 설치된 30권짜리 ‘참작은도서관’도 눈길을 끈다.
외국인근로자를 위해 10개국 도서를 비치한 다문화도서관도 10월 개관한다. 관내 5600여개에 달하는 중소기업을 위한 기업지원도서관도 계획 중이다. 내년에는 어린이 전문 ‘기적의 도서관’이 전국에서 열한 번째로 개관될 예정이다.
김해시는 기존 대형도서관인 시립도서관 3개소와 마을도서관을 통합한 통합도서관리시스템을 구축했다. 통합도서관홈페이지(lib.gimhae.go.kr)에서 책을 검색하고 신청하면 멀리 떨어져 있는 도서관에 있는 책이라도 신청자가 원하는 마을단위 도서관으로 책을 보내주고 반납도 어디서나 가능하다. 현재 44만권의 책을 활용할 수 있고 교육청 및 대학도서관까지 통합하면 160만권의 책을 검색할 수 있게 된다.
◆출생신고하면 책 선물 =
김해시는 시민들이 동사무소에 출생신고를 하러 오면 ‘책꾸러미’를 선물한다. 그림책 2권, 독서지도를 위한 북가이드, 손수건이 들어있다. 어릴 때부터 책을 가까이하도록 하자는 취지의 ‘북스타트 운동’이다. 도서관은 후속프로그램으로 부모와 아동들이 같이 그림책을 놓고 춤추고 노래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시는 2007년 이후 매년 ‘김해의 책’을 선정해 시민들에게 나눠줘 같이 읽는다. 첫 해에는 ‘제4의 제국’(최인호), 지난 해에는 ‘완득이’(김려령)가 선정됐다. ‘완득이’는 작가와의 만남 행사를 갖고 김해여고 등 10개교 4500여명의 학생이 참가해 독서릴레이를 펼쳤다. 올해는 ‘엄마를 부탁해’(신경숙)가 선정됐고 연말까지 8000여명이 독서릴레이에 참가한다.
10월30일부터 11월1일까지 열리는 ‘제1회 청소년 인문학읽기 전국대회’와 ‘김해 북 페스티벌’도 관심을 끌고 있다. 댄스페스티벌은 흔하지만 재미없는 철학이나 역사를 주제로 하는 독서축제는 흔치 않다.
대회의 주제는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고 전국 32개학교(37개팀)이 참가해 상호토론과 저자와의 대화 등을 통해 결론을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김해 북 페스티벌은 한강이남 최대의 독서문화축제를 표방하고 있다.
김해시는 도서관인프라를 폭넓게 구축하고 시민독서문화를 정착시킨 후 2012년 경 유네스코 ‘세계 책의 수도’ 지정을 추진할 예정이다.
김해시 조강숙 도서관정책팀장은 “30~40년 뒤 김해에서 자란 세대가 연간 40~50권의 책을 읽는 ‘책세대’가 등장할 것”이라며 “더디지만 확실한 투자인 독서문화 확산을 통해 미래 인재를 키우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김해 차염진 기자 yjcha@naeil.com
‘책읽는 도시 김해’ 어떻게 만들어졌나
밑으로부터 의견수렴 2007년 10월 선포
2006년 시립도서관 사서들이 모여 도서관 발전을 위한 스터디 그룹을 결성했다. 이들의 조사결과 마을에 산재한 작은도서관은 도서관리프로그램이나 전담인력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이들은 시에 도서관 정책 담당부서의 필요성을 제기했고 김종간 김해시장은 이를 흔쾌히 수용, ‘책읽는 도시 김해만들기 TF’가 구성됐다. 이 팀은 ‘책읽는사회문화재단’과 협약을 맺고 10대 공동시책을 추진키로 했다. 이 과정에서 김해시는 고졸출신인 노무현 전 대통령, 김종간 시장, 국회의원 등을 배출한 특별한 도시로 비학벌사회의 모범이 될 수 있다는 공감대도 작용했다.
여러차례 토론과 시민공청회 등을 거쳐 2007년 10월6일 ‘책읽는 도시 김해’를 선포하고 본격적인 독서문화 확산운동에 들어갔다. 2010년까지 1단계로 도서관 등 기초인프라 구축과 독서진흥에 중점을 두고 있다. 2단계 2011년부터 2015년까지는 세계화 추진을 위해 시대적 가치와 의미있는 독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그 후에는 세계화를 통한 관광활성화를 기대하고 있다.
인터뷰 김종간 김해시장
“부모님 다음으로 책을 좋아했다”
독서진흥이 최우선 시정목표 … “아이들 책읽는 모습 가장 아름다워”
김해시가 미래비전 3대 정책 가운데 ‘책읽는 도시 김해’를 제1비전으로 삼은 데는 김종간 시장의 남다른 ‘책 사랑’이 숨어있다.
향토사학자 출신인 김 시장은 평소 책을 가까이 해 왔다. 그는 “부모님 다음으로 책을 좋아했지만 가난 때문에 읽고 싶은 책을 구입할 엄두도 못냈다”며 “어렵게 구한 책을 읽는 것은 무한한 즐거움이었다”고 회고했다. 인터넷 등 미디어 홍수시대지만 독서가 제공하는 폭넓은 정보와 생활에 스며있는 향기는 어떤 매체도 미치지 못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김 시장은 ‘책읽는 도시’를 시정 최우선 정책으로 내세운 이유에 대해 “김해시는 지난 10년간 급속도로 공업화되고 인구가 증가하는 등 양적 성장을 해온 만큼 이제 질적 성장이 필요한 때”라며 “미래 사회의 경쟁력인 지식정보는 도서관과 책읽는 문화에서 만들어 진다”고 강조했다.
그는 책읽는 도시를 선포한 지 2년만에 큰 성과를 이뤘다고 자부한다. 공공도서관 5개소 운영, 작은 도서관 24개소를 개관했다. 미니도서관, 참작은도서관 등 생활권 곳곳에 책을 접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특히 시민들이 하나의 회원증으로 44만권을 집 가까운 도서관까지 택배로 대출반납가능한 서비스를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무엇보다 주민들이 직접 준비하고 땀흘려 도서관을 개관해 아이들이 엄마 아빠 손 잡고 작은도서관을 이용하는 모습은 세상에서 제일 보기 좋은 모습”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공공도서관을 인구 5만명당 1개소 건립, 작은도서관을 2015년까지 100개소를 조성하고 김해를 유네스코 ‘세계 책의 수도’로 지정받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그는 “아이들에게 ‘공부하라’는 말보다 ‘책봐라’고 말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최근 감명깊게 읽은 책이 뭐냐’는 질문에 김 시장은 숲을 소재로 한 ‘나무의 죽음’과 그림책 ‘돼지책’을 꼽았다.
차염진 기자
사진 1
김해시 장유면 우리 작은도서관에서 아이들과 책을 읽고 있는 엄마들.
사진 2
김해시 장유면 책고래 작은도서관에서 수남초등학교 조의래 교사가 부모를 대상으로 독서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사진 3
김해시 장유면 책고래 작은도서관에서 어린이와 책 이야기를 나누는 김종간 김해시장.
사진4
김해시 입구 도로변에 서 있는 광고판. 영화배우 안성기씨가 무료로 모델이 돼 주었다.
김종간 시장 사진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