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 진학 전문 교사들의 리얼 리포트 교·단·일·기

대한민국 교육 정책이 글로벌하지 못한 이유

지역내일 2009-07-29 (수정 2009-07-29 오후 4:11:27)


교육 현장이 어느 때보다 격변하는 요즘, 공교육 교사들의 고민도 깊어집니다. 논란이 분분하지만 제자들을 책임져야 하는 교사들의 하루는 여전히 24시간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고교 선택제 도입, 입학 사정관제 확대 등을 앞둔 혼란스러운 시점에서 학부모들은 자녀의 학교생활을 보다 정확히 파악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해서 〈내일신문〉은 내로라하는 일선 학교 진학 지도 전문 교사 30명과 함께 ‘공교육 진학 전문 교사들의 리얼 리포트 교·단·일·기’를 연재합니다. 풍부한 현장 경험에서 우러나온 속 시원한 지침서가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편집자주〉
수능시험을 치른 후 가채점 결과 기대와 달리 성적이 낮을 것으로 예상되자, 저녁 늦게까지 귀가하지 못한 학생이 있었다. 밤 11시가 다 되어 들어온 학생이 “죄송합니다. 재수를 해서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겠습니다” 하며 부모님 앞에 무릎을 끊고 눈물을 흘리자, 부모님은 아들을 가슴에 안고 함께 울었다.

공부의 주체가 되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주소
이 안쓰러운 장면을 뒤집어보면 안타까운 우리 아이들의 현주소가 보인다. 스스로 공부의 주체가 되어 재미있게, 희열을 느끼며 공부하기보다는 부모의 기대나 강요라는 천근만근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짊어지고, 절박한 심리 상태에서 공부하는 것이다.
우리 학생들이 공부하는 과정은 모르는 게 있으면 스스로 찾아 문제를 해결하고 깨닫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문제 풀이 비법과 요령만 전수하는 데 익숙해져 공부의 성취감을 쉽게 느끼지 못한다. 학원에 다녀도 원하는 만큼 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더 좋은 학원이 없나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학원 순례의 악순환이 반복된다. 나중에는 학원에 중독된 나머지 혼자서는 도저히 공부할 수 없는 특이체질로 변한다. 이런 상황에서 경쟁력 있는 인재가 나오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21세기형 인재는 지식과 지식을 연결하고 응용해 새로운 지식을 창출할 수 있는 ‘디지털 학습인’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가. 최강의 인터넷 강국이라 불리지만 실제 학습 현장에서는 스스로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고, 다양한 정보를 분류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는 인재를 만들지 못한다. 미국에서 로봇 박사 과정을 마치고 온 제자의 “한국에서는 떠 먹여주는 공부를 하지만, 미국에서는 스스로 모든 걸 만들어가야 합니다”라는 일침은 이 차이를 극명하게 설명한다.
시끌벅적한 입시 제도, 교육 정책 변화 이면은
최근 공교육 정상화와 경쟁력 강화를 위해 도입된 사교육 대책을 들여다보면 ‘사교육 없는 학교’ ‘방과 후 수업 강화’ 등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이 같은 일련의 대책에도 학부모들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공교육의 경쟁력을 제대로 점검하지 못하고, 적절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니 논란만 불러일으키는 것 아닙니까?” “진단이 잘못됐는데, 처방이 제대로 나올 수 있습니까?”
현장에서 들리는 학부모들의 목소리에서도 보이듯, 우왕좌왕 구호만 외치며 작전 수행하듯 밀어붙이는 각종 정책들과 수시로 바뀌는 입시 제도에 학부모들의 불안은 여전하다.
얼마 전 발표를 통해 첫걸음을 뗀 자율형 사립고도 창의적이고 다양한 인재를 키우는 데 취지가 있다지만, 결국 성적 경쟁으로 치달을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대한민국의 입시 현실에서 명문 대학에 많이 보내야 학부모들의 박수 갈채를 받을 수 있다는 걸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혹자는 일반고의 질적 향상으로 이어질 거라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하지만, 우수한 학생들이 빠져나간 상황에서 다른 일반고들이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릴 것은 명약관화다.치열한 경쟁 속에서 일반고들이 살아남기 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 이래저래 성적과 입시 위주 경쟁 속에서 일반고 교사들의 자괴감은 더욱 깊어간다.
학생의 소질과 잠재력을 우선하겠다며 도입된 입학 사정관제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다. 그러나 교과 성적 경쟁력이 서류 평가에서 비중 있게 반영되고, 특목고 학생들에게 유리한 전형 요강이 속속 발표되면서 소질과 적성을 파악하기보다 계량화된 수치를 선발의 잣대로 삼는 대학의 이기주의에 학생과 학부모들은 신뢰를 잃고 있다.

“각종 경시대회에서 수상해야 절대적으로 유리한데, 사교육의 바다에 몸을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스펙보다는 개개인의 열정이나 잠재력을 중시하겠다는 논리는 온데간데없고, 편리에 따라 잣대가 마음대로 변합니다.” 이러한 우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입시 위주 경쟁, 인위적 스펙에 대한 성찰이 필요할 때
오늘날의 사회는 다양한 인종과 국경을 초월해 소통하는 글로벌 사회로 변모하고 있다.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교육의 무한 경쟁 체제로 돌입하고 있으며, 교육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스스로 혁신을 단행하고 있다. 글로벌 마인드로 무장한 최상위 학생을 선점하기 위한 각국 학교들의 인재 경쟁 역시 치열하다.
떠 먹여주는 지식 습득의 과정을 통해, 입시 위주의 점수 경쟁을 통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스펙을 통해 만들어진 인재는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인재들은 국제적인 스탠더드에 미치지 못해 국제 인력시장에서도 찬밥 신세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남과 다르게 생각하는 훈련으로 자신의 개성을 발휘하고, 독창적으로 사고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난 인재를 키워야 한다. 다양한 분야의 교양과 더불어 자신만의 깊이 있는 전문 지식을 갖춘 인재들이 바로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토대가 아니겠는가. 글로벌 시대에 환영받을 수 있는 인재를 키우지 못하면 국가 경쟁력은 물론 생존조차 어렵다. 교육 주체들의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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