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은 연중기획 ‘사람이 희망이다’를 연재하며 ‘사람’에게 희망을 찾으려 합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노력하는 우리 이웃과 동료를 만나 그들이 일구어가는 희망을 함께 나누려 합니다. 지면 만들기에 독자 여러분도 동참하실 수 있습니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이야기, 희망을 가꾸는 이웃과 동료를 소개해주세요. (문의:내일신문 자치행정팀 02-2287-2266)
이정순, 60세에 ‘날개’단 농촌 부녀회장
지역 어린이 위한 미술·목공교실이 꿈
“힘든 삶일 수 있는데 긍정적으로 표현했어요. 살아가는 모습을 자연과 어우러지게 담았어요.”(송경숙·38)
“가끔 그림을 보는데 어려워요. 이 그림은 뭘 얘기하는지 알 것 같아요.”(박주리·41)
19일 저녁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 아이들을 데리고 여성플라자를 찾은 인근 주민들이 전시실 ‘스페이스봄’에서 감탄을 연발한다. 20일 시작되는 ‘오래된 미래를 꿈꾸는’ 전시회를 앞두고 전시실에 걸린 작품들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할머니 작가 ‘날개’ 달다
“변신 시리즈에 관심이 많아요. 새가 나무가 되고 사람이 꽃이 되고…. 사람과 자연은 따로가 아니라 하나예요.”
이정순(60) 작가는 “그 교감을 그린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는 ‘이야기’가 있다. 올 봄에는 마당에 핀 목련을 보면서는 자신과 남편을 연상했다. 밤에 꽃망울을 터뜨리는 목련은 밤에 활동하는 올빼미로, 오랜 세월을 살면서 세상을 보는 눈을 갖게 된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로 되살아났다.<그림>
마당에 핀 동백을 보면서는 할머니, 작가 자신의 손을 떠올렸다. 손 끝에서 피어나는 꽃, 동백은 그의 작품인 셈이다.
이전에도 물론 자연을 그렸다. 이정순 작가는 “눈으로 보고 그리기만 하는 자연, 풍경화로서의 자연”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그 스스로가 자연과 동화된다. 1년여 전 우연한 기회에 미국의 ‘국민화가’ 모지스 할머니에 대해 알게 되면서 그 변화가 시작됐다.
“모지스 할머니는 76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101세에 사망할 때까지 무려 1600여점을 그렸어요. 그림도 정식으로 배운 게 아니에요. 자수를 좋아했는데 나이 들어 퇴행성관절염 때문에 수를 놓을 수 없게 되자 그림을 시작한 거래요.”
미국 농촌을 화폭에 담은, 천진난만한 어린이가 그린 듯한 따뜻한 작품은 어찌보면 꼭 이정순 작가의 그림인 듯싶다. 이 작가는 “남은 인생을 그림에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후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앞으로는 해마다 새로운 작품으로 개인전을 열겠다고. 목표는 일단 10년이다. 이번 전시회에도 지난해부터 그린 스물여덟 점을 들고 왔다.
“이전까지 그림은 취미생활이었어요. 나를 송두리째 담지 않았어요.”
작가의 자신감에 ‘날개’를 달아준 건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재단은 이 작가를 올해의 ‘여성작가날개달기프로젝트’ 대상자로 선정, 전시 공간을 내주고 전시 준비 홍보까지 대행한다.
이장으로 부녀회장으로
그의 인생길은 순탄치 않았다. 대학입시에 실패했고 첫 결혼에 실패했다. 도시내기가 전라도 땅끝 인근까지 들어와 살며 눈에 보이지 않게 배타적인 이웃에 치이기도 했다. 그러나 작가는 “돌이켜보니 그 삶이 상상력의 바탕이 됐다”고 말했다.
“대학입시에 실패하고 우연찮게 조폐공사에 취업했는데 몇 년간은 돈쓰는 재미에 살았어요. 그러다 어느날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뭘까’ 고민했죠. 그림이었어요.”
당장 아마추어 작가의 길을 택했다. 27살에는 추계예술학교에 입학, 정식으로 서양화를 배웠다.
전남 해남군 화원면 매월리는 17년 전 목포대학교에 재직 중이던 원동연 교수를 만나 새롭게 삶을 꾸리면서 선택한 곳이다. 농가주택을 구입해 생활하고 채마밭을 일구며 동화처럼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친구들도 미덥지 않아 했어요. ‘3개월만에 돌아올 거야’라고 장담을 했다. 10년간은 정말 애를 먹었다. 문화적 차이가 가장 컸다. 주변에 대화할 사람도 없었다. 옥수수며 고추며 채마밭 일구기에도 금세 시들해졌다.
“1000원이면 둘이서 먹을 만치 상추를 살 수 있는데 왜 이 고생을 하며 농사를 지어야 하나 싶었죠. 나이 들어 시골구석까지 들어와서 살아야 하는가 원망이 생기기도 했구요. 그림도 돌파구에 불과했어요.”
‘동네 사람’이 되기 위해 이장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몇 년에 걸쳐 이장을 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이웃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20여명 남짓 사는 조그만 동네가 두 패로 갈리는 듯했다.
“동네분들이 참 완강했어요. 무작정 싫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더 하고 싶어지는 거 있죠. 2년 전에 20년 이상 하신 이장이 병으로 쓰러지고 더이상 할 사람이 없게 되자 시켜줬어요.”
마을의 첫 여성 이장이다.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1년 뒤 이사온 40대 초반 새내기 주민에게 이장직을 넘겨주고 그는 부녀회장으로 물러났다.
인생의 석양을 바라보며
작가는 모지스 할머니처럼 “나이들어 다시 태어나는 기쁨”을 노래한다. 그는 “작은 행복과 바람을 안고 화폭 앞에 선다”.
11년을 앞서 사는 남편이 동지다. 남편은 그가 그림 그리는 걸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노부부는 작지만 큰 꿈을 품고 산다. 그 중 하나는 올 가을 ‘화원예술제’를 여는 것. 3년 전부터 지역 작가들과 힘을 합쳐 동네 폐교에서 개인창작실을 운영하고 있는데 지난해 주민들과 함께 첫 예술제를 열었다. 교실을 미술관으로 만들어 지역 작가들 그림을 전시하고 노래와 춤이 있는 주민잔치도 열었다.
“올해는 동네 아이들 그림과 유명 작가 작품을 함께 걸고 난타공연도 엮고 싶어요.”
폐교를 창작실로 계속 유지하는 일은 좀 더 어렵고 큰 바람이다. 예술가들이 주머니를 털어 연간 600만원 가량 되는 운영비를 대왔는데 무명인 지역 작가들로서는 한계에 부닥쳤다. 외부 지원이 절실한 참이다.
“폐교를 살려 지역 작가나 농촌의 자연을 담고 싶은 도시 작가를 위한 창작공간을 마련하고 싶어요. 지역 작가들 그림을 상설 전시하고 작가들이 힘을 합쳐 미술 소외계층인 동네 아이들을 위한 미술학교와 목공학교를 열 계획도 있어요.”
이정순 작가는 “전시회를 마치면 전남도청과 해남군청을 찾아가 지원을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자체로서는 예술가 지원에 어린이 예술교육, 나아가 관광자원까지 마련하는 셈이다.
“남편이 오래도록 꿈꿔온 일인데 힘들 것 같아서 반대해왔어요. 그러나 이렇게 ‘날개를 다니’ 용기가 생겼어요. 그림을 그리고 발표하는 것을 넘어서 사람들과 공유하는 일이죠.”
백발이 성성한 화가는 “그 생각을 하면 가슴이 설렌다”며 소녀처럼 웃는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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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순, 60세에 ‘날개’단 농촌 부녀회장
지역 어린이 위한 미술·목공교실이 꿈
“힘든 삶일 수 있는데 긍정적으로 표현했어요. 살아가는 모습을 자연과 어우러지게 담았어요.”(송경숙·38)
“가끔 그림을 보는데 어려워요. 이 그림은 뭘 얘기하는지 알 것 같아요.”(박주리·41)
19일 저녁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 아이들을 데리고 여성플라자를 찾은 인근 주민들이 전시실 ‘스페이스봄’에서 감탄을 연발한다. 20일 시작되는 ‘오래된 미래를 꿈꾸는’ 전시회를 앞두고 전시실에 걸린 작품들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할머니 작가 ‘날개’ 달다
“변신 시리즈에 관심이 많아요. 새가 나무가 되고 사람이 꽃이 되고…. 사람과 자연은 따로가 아니라 하나예요.”
이정순(60) 작가는 “그 교감을 그린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는 ‘이야기’가 있다. 올 봄에는 마당에 핀 목련을 보면서는 자신과 남편을 연상했다. 밤에 꽃망울을 터뜨리는 목련은 밤에 활동하는 올빼미로, 오랜 세월을 살면서 세상을 보는 눈을 갖게 된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로 되살아났다.<그림>
마당에 핀 동백을 보면서는 할머니, 작가 자신의 손을 떠올렸다. 손 끝에서 피어나는 꽃, 동백은 그의 작품인 셈이다.
이전에도 물론 자연을 그렸다. 이정순 작가는 “눈으로 보고 그리기만 하는 자연, 풍경화로서의 자연”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그 스스로가 자연과 동화된다. 1년여 전 우연한 기회에 미국의 ‘국민화가’ 모지스 할머니에 대해 알게 되면서 그 변화가 시작됐다.
“모지스 할머니는 76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101세에 사망할 때까지 무려 1600여점을 그렸어요. 그림도 정식으로 배운 게 아니에요. 자수를 좋아했는데 나이 들어 퇴행성관절염 때문에 수를 놓을 수 없게 되자 그림을 시작한 거래요.”
미국 농촌을 화폭에 담은, 천진난만한 어린이가 그린 듯한 따뜻한 작품은 어찌보면 꼭 이정순 작가의 그림인 듯싶다. 이 작가는 “남은 인생을 그림에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후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앞으로는 해마다 새로운 작품으로 개인전을 열겠다고. 목표는 일단 10년이다. 이번 전시회에도 지난해부터 그린 스물여덟 점을 들고 왔다.
“이전까지 그림은 취미생활이었어요. 나를 송두리째 담지 않았어요.”
작가의 자신감에 ‘날개’를 달아준 건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재단은 이 작가를 올해의 ‘여성작가날개달기프로젝트’ 대상자로 선정, 전시 공간을 내주고 전시 준비 홍보까지 대행한다.
이장으로 부녀회장으로
그의 인생길은 순탄치 않았다. 대학입시에 실패했고 첫 결혼에 실패했다. 도시내기가 전라도 땅끝 인근까지 들어와 살며 눈에 보이지 않게 배타적인 이웃에 치이기도 했다. 그러나 작가는 “돌이켜보니 그 삶이 상상력의 바탕이 됐다”고 말했다.
“대학입시에 실패하고 우연찮게 조폐공사에 취업했는데 몇 년간은 돈쓰는 재미에 살았어요. 그러다 어느날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뭘까’ 고민했죠. 그림이었어요.”
당장 아마추어 작가의 길을 택했다. 27살에는 추계예술학교에 입학, 정식으로 서양화를 배웠다.
전남 해남군 화원면 매월리는 17년 전 목포대학교에 재직 중이던 원동연 교수를 만나 새롭게 삶을 꾸리면서 선택한 곳이다. 농가주택을 구입해 생활하고 채마밭을 일구며 동화처럼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친구들도 미덥지 않아 했어요. ‘3개월만에 돌아올 거야’라고 장담을 했다. 10년간은 정말 애를 먹었다. 문화적 차이가 가장 컸다. 주변에 대화할 사람도 없었다. 옥수수며 고추며 채마밭 일구기에도 금세 시들해졌다.
“1000원이면 둘이서 먹을 만치 상추를 살 수 있는데 왜 이 고생을 하며 농사를 지어야 하나 싶었죠. 나이 들어 시골구석까지 들어와서 살아야 하는가 원망이 생기기도 했구요. 그림도 돌파구에 불과했어요.”
‘동네 사람’이 되기 위해 이장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몇 년에 걸쳐 이장을 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이웃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20여명 남짓 사는 조그만 동네가 두 패로 갈리는 듯했다.
“동네분들이 참 완강했어요. 무작정 싫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더 하고 싶어지는 거 있죠. 2년 전에 20년 이상 하신 이장이 병으로 쓰러지고 더이상 할 사람이 없게 되자 시켜줬어요.”
마을의 첫 여성 이장이다.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1년 뒤 이사온 40대 초반 새내기 주민에게 이장직을 넘겨주고 그는 부녀회장으로 물러났다.
인생의 석양을 바라보며
작가는 모지스 할머니처럼 “나이들어 다시 태어나는 기쁨”을 노래한다. 그는 “작은 행복과 바람을 안고 화폭 앞에 선다”.
11년을 앞서 사는 남편이 동지다. 남편은 그가 그림 그리는 걸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노부부는 작지만 큰 꿈을 품고 산다. 그 중 하나는 올 가을 ‘화원예술제’를 여는 것. 3년 전부터 지역 작가들과 힘을 합쳐 동네 폐교에서 개인창작실을 운영하고 있는데 지난해 주민들과 함께 첫 예술제를 열었다. 교실을 미술관으로 만들어 지역 작가들 그림을 전시하고 노래와 춤이 있는 주민잔치도 열었다.
“올해는 동네 아이들 그림과 유명 작가 작품을 함께 걸고 난타공연도 엮고 싶어요.”
폐교를 창작실로 계속 유지하는 일은 좀 더 어렵고 큰 바람이다. 예술가들이 주머니를 털어 연간 600만원 가량 되는 운영비를 대왔는데 무명인 지역 작가들로서는 한계에 부닥쳤다. 외부 지원이 절실한 참이다.
“폐교를 살려 지역 작가나 농촌의 자연을 담고 싶은 도시 작가를 위한 창작공간을 마련하고 싶어요. 지역 작가들 그림을 상설 전시하고 작가들이 힘을 합쳐 미술 소외계층인 동네 아이들을 위한 미술학교와 목공학교를 열 계획도 있어요.”
이정순 작가는 “전시회를 마치면 전남도청과 해남군청을 찾아가 지원을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자체로서는 예술가 지원에 어린이 예술교육, 나아가 관광자원까지 마련하는 셈이다.
“남편이 오래도록 꿈꿔온 일인데 힘들 것 같아서 반대해왔어요. 그러나 이렇게 ‘날개를 다니’ 용기가 생겼어요. 그림을 그리고 발표하는 것을 넘어서 사람들과 공유하는 일이죠.”
백발이 성성한 화가는 “그 생각을 하면 가슴이 설렌다”며 소녀처럼 웃는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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