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정광수 산림청장

지역내일 2009-04-22
비 온 뒤의 산불 걱정

정광수 산림청장

정말 오랜만에 단비가 내렸다. 봄비에 못자리를 낸다는 ‘곡우’에 때맞춰 내린 비는 목말랐던 대지와 농심을 촉촉이 적시고 산불에 노심초사하던 산림공무원들에게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만들었다. 정말 비한방울 내리지 않는 가뭄이 한달 가까이 계속되고 곳곳에서 산불이 잇따르자 일부 지자체는 기우제까지 올릴 정도로 비를 기다렸다. 어쨌든 기대했던 단비가 내렸으니 그동안 산불로 가슴이 새까맣게 타들어갔던 산림공무원들의 기쁨이야 오죽하겠는가.

본래 4월은 연중 산불이 가장 많은 달이지만 금년은 특히 심했다. 마치 작정이라도 한 듯 청명ㆍ한식을 전후해 급증한 산불은 지난 열흘간 150건이나 발생해 여의도 면적과 비슷한 310ha의 산림을 태웠다. 가장 큰 이유는 오랫동안 계속된 가뭄으로 연소와 확산이 쉬웠다는 점이다. 가끔씩 비가 내려도 산불은 나지 않는다. 그런데 금년은 3월부터 나무들이 집단 고사할 정도로 산림이 바싹 마른데다가 때마침 농사철을 맞아 논ㆍ밭두렁, 농산폐기물 소각 등 관습적인 태우기 행사가 집중되었다. 더욱이 나들이하기에 좋은 날씨 탓에 등산객이나 성묘객이 산으로 몰려들었다. 그 결과 3만여명의 산불감시원, 공무원들이 단속활동에 진력했음에도 감시의 눈을 피해 태운 불씨와 몰래버린 담뱃불 등으로 그 많은 산불이 났던 것이다.

특히, 지난 산불을 분석해보면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겨울철 산불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온난화로 인해 겨울이 따뜻해지고 건조해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둘째는 산불이 시기에 관계없이 전국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과거 봄철 산불은 남부에서 시작해 중북부지방으로 올라가던 경향이 뚜렷했는데 금년에는 이러한 경향이 없어졌다. 셋째는 산불 피해규모가 점차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산불이 특정 시간대에 동시다발로 일어나 진화헬기가 분산되어 야간까지 진화작업이 늦춰지기 때문이다. 넷째는 고의로 산불을 내는 방화성 산불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방화성 산불은 헬기가 뜰 수 없는 심야에 일어나기 때문에 초기진화를 어렵게 하고 피해도 커진다는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다행이 비가 내린데다 나뭇잎도 피어 산불의 기세는 한풀 꺾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동해안에 부는 높새바람이 걱정이다. 푄현상이라고 해서 태백산맥을 넘어 영동지방으로 부는 고온 건조한 강풍이 동해안 소나무림에 불어 닥칠 경우 대형 산불을 야기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예년 산불통계를 보면 대형 산불의 80%가 4월에 발생했고, 절반이 강원과 경북의 동해안지역에서 일어났다. 산림청은 이 지역에 진화헬기를 추가로 이동배치하고 감시활동을 강화하는 등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다.

산불위험은 어느 정도 완화되었지만 또 하나 준비해야 할 일이 있다. 산불피해지에 산사태와 같은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응급조치를 취하는 일이다. 산불이 난 지역은 토양이 척박해지고 토양응집력도 약해져 각종 재해에 취약해진다. 빠른 시일 내에 관계전문가 참여하에 정밀조사를 실시하여 복구계획을 마련할 것이다.

금년 산불을 겪으면서 가장 마음에 쓰이는 사람들이 현장의 산림공무원들이다. 이들에게는 가슴 저리는 애환이 많다. 계속되는 야간순찰근무에 남편과 아내가 함께 고생한 경우가 많고, 산불 때문에 결혼식을 미루는가 하면 만삭의 여직원이 임신휴가를 반납한 채 잠복근무에 임한 사례도 있다. 그러다가 산불이라도 나면 완전히 꺼질 때까지 현장에서 며칠이고 잿더미 사이를 누벼야 한다. 특히, 산림청의 헬기 조종사, 정비사들은 정말 사선을 넘나들며 진화작업에 임하고 있다. 비록 산불은 많았지만 인명이나 민가피해가 없도록 연일 피로를 무릅쓰고 진화에 나서준 조종사, 정비사들께 특별한 고마움을 느낀다.

그러나 산불이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 정부도 산불을 막기 위해 합동 대책회의를 갖는 등 긴밀히 대처하고 있지만, 정부가 아무리 노력해도 국민들의 협조가 없으면 안된다. 봄철 산불이 끝나는 시기는 5월 중순인데 이는 아까시 꽃이 만개하는 시기와 일치한다. 부디 아까시 꽃이 필 때까지 온 국민이 ‘산불 없는 우리 고장’ 만들기에 다함께 나서줄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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