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류>“폭우로 인한 ‘천재’가 아니라 무대책으로 인한 ‘인재’다”

강남·서초구민들 정부·구청 강한 불신 … ‘강력 대응으로 나서겠다’

지역내일 2001-07-17 (수정 2001-07-17 오후 7:16:21)
길소연 리포터 buddlip@hanmail.net

“37년만의 집중호우였다는 핑계는 또 한번의 국민 기만이다”
14·15일 전국을 강타한 ‘게릴라성 폭우’로 전국에서 45명이 사망, 9명이 실종하는 등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168억원)가 잇달아 발생하자 대다수 국민들 사이에서 정부와 책임 당국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강도높게 나오고 있다. 특히 서울지역에서 28명이 사망·실종한 가운데 강남·서초구민들의 구청과 서울시에 대한 원성이 높아지고 있다.
17일 현재 서초구는 6명이 사망, 2명이 실종됐고 강남구민 1명이 반지하 집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자들은 대개 15일 새벽 3∼4시경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한 즈음에 사고를 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서초구의 경우 당일 새벽 3시경 동사무소의 비상 소집에 응해 출근한 서초2동사무소 직원 김영달(55)씨가 맨홀에 빠져 순직했고 반지하에 살던 김교환(61)·김순자(57) 부부는 하수구 등에서 역류하는 물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익사했다. 또 친구들과 귀가하던 중 사망한 홍순후(19) 학생의 경우 함께 있던 친구들이 “가슴까지 갑자기 차오른 물에서 찌릿찌릿하게 전기가 흐르는 것을 느꼈다”고 증언해 감전사의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상황들을 지켜본 구민들 사이에서는 “폭우가 쏟아진 것은 천재지변이지만 이런 결과를 낳은 것은 수해 위험을 방치하다시피 한 구청의 탓”이라는 주장이 자연스럽게 나오고 있다.
펌프 시설과 누전 차단 시설조차 제대로 운영되지 않아 이같이 피해가 커졌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듯 이번 폭우 피해의 가장 큰 사망 원인으로 감전사(19명), 주택침수(10명) 등이 꼽혔고 폭우가 쏟아진 15일 새벽 2∼3시경 서울 시내 일부 펌프(공릉·중화·제기1빗물 펌프장 등)가 고장·정지됐던 사실이 밝혀져 구민들의 주장은 더욱 설득력을 갖게 됐다.
한편 강남구와 서초구는 “집중호우 등 예상할 수 없는 천재지변까지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겠냐”는 입장을 내비쳐 왔다. 강남구청 한 관계자는 “강남구는 수해 대비 유지관리 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4월초 빗물받이 준설 작업과 양수기 설치 등을 실시했을 뿐 특별한 대책은 없다”고 지난달 22일 밝혀 집중호우에 대한 구청차원의 특별한 대비책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서초구도 “특별한 대책을 강구하지 않고 유지관리 차원으로 이번 수해를 맞이했다”고 밝힌 바 있어 수해가 막상 닥쳤을 때 강남·서초구가 내세울 수 있는 방패가 임시방편책 뿐이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사후 피해 구제 대책도 미비한 상황이다.
서초구청의 경우 김영달 직원이 사망하자 ‘서초구청에서는 모든 장례절차를 지원해 평소 성실하게 근무해 온 고인의 넋을 위로해 줄 예정이다’는 문구를 포함한 보도자료를 각 언론사에 뿌리고 집행부들에게는 “구청장이 죽은 것처럼 생각하라”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영달 직원의 유족측은 겉치레 위로를 거부하며 현재 발인 날짜도 안 잡고 있는 상황이다. 김씨의 고모부 김연경씨는 “행정관리국장이 ‘가족장으로 치루자’고 한 것도 모자라 구청장 비서실장이 찾아와 ‘구청장이 연장자니 유족측에서 구청을 방문하는 게 예의가 아니냐’고 말하더라”며 보상 문제 때문에 지레 몸을 사리는 구청측에 대해 “공무 수행 중 순직한 직원에 대한 예의가 이런 거냐”고 울분을 터뜨렸다. 현재 김영달 직원의 유족들은 ‘서초구청장’을 요구하고 있다.
장마철이 다가옴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대응책 하나 마련하지 않아 폭우 피해를 방치했다는 여론으로 봤을 때 강남구청과 서초구청은 이번 폭우 피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구청측이 피해 구민들에 대한 사후 대응과 본격적으로 이어질 장마 대비에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책임감 있게 나설 것인지 지켜보는 구민들의 눈길이 구청을 향해 쏠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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