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유종필은 정당 대변인을 연상시키는 이름이다. 4년 6개월 동안 민주당의 ‘입’ 역할을 하며 헌정 사상 최장수 대변인 기록을 세울 정도로 명성을 떨친 만큼 다른 직함을 붙여 이름을 부른다는 것 자체가 어색할 지경이다.
유종필 국회도서관장 스스로도 “정치부 기자와 정당 생활을 하며 20년간 지나다녔는데 여기서 일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며 자연스럽게 ‘운명’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변신에 대해 의구심을 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래전부터 ‘도서관 DNA’가 피 속에 흐르고 있었던 것처럼 거침없다는 평가도 나온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책 읽어주는 서비스 ‘TTS(Text-To-Speech)’를 개통했고 ‘안방도서관’ 구현을 위한 준비도 착착 진행되고 있다. 도서관 개관시간을 연장도 추진 중이다.
- 도서관이 책만 빌려주는 곳쯤으로 인식돼 있다.
처음 도서관장으로 임명되고 나서 친구에게 이야기했더니 책 대출만 하는 만화방 정도로 생각하더라. 도서관은 정보와 지식을 수집·가공·보존하고 활용하며 후세에 전승하는 곳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표현을 빌자면 ‘세상을 향해 열린 창’이며 학문과 사상의 자유가 있는 상징적 공간이다.
- 미국에는 국립 중앙도서관이 없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사실이다. 미국은 의회 도서관이 전체 도서관을 관장한다. 사서 출신인 3대 제퍼슨 대통령이 도서관 체계를 잡으면서 권력의 정보 독점을 견제하려 한 결과다. 권력자는 필연적으로 정보와 지식을 독점하려는 속성이 있기 마련이어서 국민 대표기관인 의회가 관할하도록 한 것이다. 미국 워싱턴에서 지난해 개관한 ‘뉴지엄(Newseum)’에는 ‘국민에게 사실을 알게 하면 그 나라는 안전할 것이다(Let the people know the facts and the country will be safe)’라는 링컨 전 대통령의 말이 새겨져 있다.
- 2005년 오바마 당시 상원의원의 연설을 자주 인용하는데.
미국도서관협회(ALA) 연례총회 기조연설로 오바마는 열렬한 기립 박수를 받았고 월간지 ‘미국 도서관(American Libraries)’ 표지 모델로 발탁되기도 했다.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 연설이 오바마를 세상에 알렸다면 연례총회 연설은 그의 ‘지성’을 세상에 알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자신이 뉴욕 컬럼비아대를 졸업하고 맨허튼 공공도서관 일자리정보 코너에서 소개를 받아 시카고로 갈 정도로 도서관 이용도 많이 했고 도서관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다. 케니디 이후 가장 지성적인 미국 대통령이면서 또한 ‘라이브러리 프렌들리(Library Friendly·친도서관)’ 대통령이다.
- 국회도서관 사정은 어떤가.
국회도서관 건물이 88년 완공되기 전에는 국회 본관에 도서관이 있었다. 당시 선거에 따라 교섭단체가 늘면 도서관 방 하나 빼는 식으로 운영됐다고 한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와 관련 없다는 거지. 프랑스 미테랑 전 대통령은 국립도서관 건설기간 동안 재임 중이었음에도 49번 방문했다고 한다. 레이건 미국 전 대통령도 재임 당시 의회도서관 제임스 매디슨관 헌당식에 참가했다. 우리나라 도서관 행사는 영부인들의 몫이다.
- 여전히 일반 국민에게 국회도서관은 먼 존재다.
영화 ‘투모로우’에서 뉴욕 시민들이 대피한 곳이 공공도서관이다. ‘섹스앤시티’에서는 결혼식을 도서관 로비에서 한다. 그만큼 시민친화적인 공간이라는 이야기다. 반면 국회도서관을 일반 국민과 관계없는 곳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많다. 국회 경비를 경찰이 담당하고 있어 시각적인 문턱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 문턱을 낮추기 위해 어떤 정책을 추진하고 있나.
직장인들이 이용하기 불편하다고 해 오후 6시까지인 개관시간을 오후 10시까지로 확대하기로 했다. 도서관법 개정안이 통과되어야 하는데 지금 국회 운영위에 계류돼 있다. 10년 넘게 추진한 전자도서관 사업의 성과는 이미 세계적 수준이다. 국내외 1000여곳의 도서관과 정부기관, 연구소 등에 전자도서관을 제공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일반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자료는 전체의 3분의 1 정도다. 저작권 문제 때문인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해외사례 등을 연구하고 있다.
- ‘팩트북’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
‘한눈에 보기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한미FTA, 북한 장거리로켓발사 등을 주제로 4권이 나왔다. 그동안 국회도서관은 의원 요구자료를 해당 의원에게만 제공해 왔다. 이제는 관련 현안을 팩트북으로 만들어 의원과 유관기관, 정부기관, 연구소 등에 제공하고 있다. ‘비밀고액과외’를 인터넷으로 공개하는 셈이다. 정보는 공유할수록 가치가 배가되는 것 아닌가.
- 임기를 마치면 정치권으로 돌아올 텐데, 구체적인 계획은 있나.
현재 정치권에서 보면 나는 ‘창밖의 남자’다. 객관화된 눈으로 정치를 바라보고 있다는 정도로 정리해 달라.
허신열 백왕순 기자 syhe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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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필 국회도서관장 스스로도 “정치부 기자와 정당 생활을 하며 20년간 지나다녔는데 여기서 일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며 자연스럽게 ‘운명’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변신에 대해 의구심을 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래전부터 ‘도서관 DNA’가 피 속에 흐르고 있었던 것처럼 거침없다는 평가도 나온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책 읽어주는 서비스 ‘TTS(Text-To-Speech)’를 개통했고 ‘안방도서관’ 구현을 위한 준비도 착착 진행되고 있다. 도서관 개관시간을 연장도 추진 중이다.
- 도서관이 책만 빌려주는 곳쯤으로 인식돼 있다.
처음 도서관장으로 임명되고 나서 친구에게 이야기했더니 책 대출만 하는 만화방 정도로 생각하더라. 도서관은 정보와 지식을 수집·가공·보존하고 활용하며 후세에 전승하는 곳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표현을 빌자면 ‘세상을 향해 열린 창’이며 학문과 사상의 자유가 있는 상징적 공간이다.
- 미국에는 국립 중앙도서관이 없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사실이다. 미국은 의회 도서관이 전체 도서관을 관장한다. 사서 출신인 3대 제퍼슨 대통령이 도서관 체계를 잡으면서 권력의 정보 독점을 견제하려 한 결과다. 권력자는 필연적으로 정보와 지식을 독점하려는 속성이 있기 마련이어서 국민 대표기관인 의회가 관할하도록 한 것이다. 미국 워싱턴에서 지난해 개관한 ‘뉴지엄(Newseum)’에는 ‘국민에게 사실을 알게 하면 그 나라는 안전할 것이다(Let the people know the facts and the country will be safe)’라는 링컨 전 대통령의 말이 새겨져 있다.
- 2005년 오바마 당시 상원의원의 연설을 자주 인용하는데.
미국도서관협회(ALA) 연례총회 기조연설로 오바마는 열렬한 기립 박수를 받았고 월간지 ‘미국 도서관(American Libraries)’ 표지 모델로 발탁되기도 했다.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 연설이 오바마를 세상에 알렸다면 연례총회 연설은 그의 ‘지성’을 세상에 알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자신이 뉴욕 컬럼비아대를 졸업하고 맨허튼 공공도서관 일자리정보 코너에서 소개를 받아 시카고로 갈 정도로 도서관 이용도 많이 했고 도서관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다. 케니디 이후 가장 지성적인 미국 대통령이면서 또한 ‘라이브러리 프렌들리(Library Friendly·친도서관)’ 대통령이다.
- 국회도서관 사정은 어떤가.
국회도서관 건물이 88년 완공되기 전에는 국회 본관에 도서관이 있었다. 당시 선거에 따라 교섭단체가 늘면 도서관 방 하나 빼는 식으로 운영됐다고 한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와 관련 없다는 거지. 프랑스 미테랑 전 대통령은 국립도서관 건설기간 동안 재임 중이었음에도 49번 방문했다고 한다. 레이건 미국 전 대통령도 재임 당시 의회도서관 제임스 매디슨관 헌당식에 참가했다. 우리나라 도서관 행사는 영부인들의 몫이다.
- 여전히 일반 국민에게 국회도서관은 먼 존재다.
영화 ‘투모로우’에서 뉴욕 시민들이 대피한 곳이 공공도서관이다. ‘섹스앤시티’에서는 결혼식을 도서관 로비에서 한다. 그만큼 시민친화적인 공간이라는 이야기다. 반면 국회도서관을 일반 국민과 관계없는 곳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많다. 국회 경비를 경찰이 담당하고 있어 시각적인 문턱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 문턱을 낮추기 위해 어떤 정책을 추진하고 있나.
직장인들이 이용하기 불편하다고 해 오후 6시까지인 개관시간을 오후 10시까지로 확대하기로 했다. 도서관법 개정안이 통과되어야 하는데 지금 국회 운영위에 계류돼 있다. 10년 넘게 추진한 전자도서관 사업의 성과는 이미 세계적 수준이다. 국내외 1000여곳의 도서관과 정부기관, 연구소 등에 전자도서관을 제공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일반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자료는 전체의 3분의 1 정도다. 저작권 문제 때문인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해외사례 등을 연구하고 있다.
- ‘팩트북’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
‘한눈에 보기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한미FTA, 북한 장거리로켓발사 등을 주제로 4권이 나왔다. 그동안 국회도서관은 의원 요구자료를 해당 의원에게만 제공해 왔다. 이제는 관련 현안을 팩트북으로 만들어 의원과 유관기관, 정부기관, 연구소 등에 제공하고 있다. ‘비밀고액과외’를 인터넷으로 공개하는 셈이다. 정보는 공유할수록 가치가 배가되는 것 아닌가.
- 임기를 마치면 정치권으로 돌아올 텐데, 구체적인 계획은 있나.
현재 정치권에서 보면 나는 ‘창밖의 남자’다. 객관화된 눈으로 정치를 바라보고 있다는 정도로 정리해 달라.
허신열 백왕순 기자 syhe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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