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전 대통령의 아내탓
이경형 (언론인 전 서울신문 편집국장)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남자지만, 그 남자를 지배하는 것은 여자다. 미국 현대사에서 역대 대통령을 움직인 여인들 얘기를 쓴 작가 케이티 마튼은 퍼스트레이디를 ‘숨은 권력자’라고 했다.
대통령에게는 권력의 정점에서 고립된 자신과 현실 세계를 연결시켜줄 믿음직한 파트너가 필요하다. 이같은 생생한 여론 전달자의 역할은 바로 대통령의 부인이 할 수 있는 것이며, 한국이라고 해서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영부인은 다른 어떤 공직자보다 더 조언을 잘 할 수 있는 지위에 있으며, 대통령과 가장 소통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웬만한 일은 두 사람 간에 비밀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200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때다. 노무현 후보는 다른 후보가 부인 권양숙 여사의 친정 아버지의 좌익 전력을 들고 나와 공격하자, 이렇게 말했다. “이런 아내를 제가 버려야 합니까? 그렇게 하면 대통령 자격이 있고, 이 아내를 그대로 사랑하면 대통령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까?”
노 후보는 상대 후보의 색깔 공세에 아내를 향한 순애보를 토해냄으로써 수세 국면을 오히려 공세로 역전시켰다. 민주당 대의원들도 이를 지켜본 국민들도 아내 사랑으로 정면승부를 거는 그의 당당한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궁지 모면하려는 옹색함
며칠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은 권 여사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거액을 전달받은 사실이 드러나자 자신의 홈페이지에 “저의 집에서 부탁하고 그 돈을 받아서 사용한 것입니다”고 해명하고 사과했다. 검찰은 권 여사가 노 전 대통령의 재임 중에 돈을 받았다고 했고, 측근들은 노 전 대통령이 근래 와서 이같은 사실을 알았다고 부연했다.
권 여사가 3억원을 받았는지, 10억원을 받았는지 구체적인 돈의 액수에 대해서는 노 전 대통령이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아 알 수 없다. 다만 ‘아내 사랑’이 그렇게 지극했던 그가 사실상 ‘아내가 한 짓’이라고 겸연쩍게 머리를 긁적이는 듯한 사과문의 내용은 그 자신을 너무 초라하게 만들었다. 그 글을 읽으면 권 여사의 처연한 표정이 노 전 대통령의 모습과 오버랩되기도 한다. 뭔가 안에서 울컥 솟아오르는 말이 있다. “노무현씨, 그대는 지금도 아내를 사랑하시나요?”라고 다그쳐 묻고 싶다.
아내에 대한 사랑이 변함없다면, 설령 권 여사가 그렇게 했더라도 구구하게 설명할 필요 없이 “모든 게 결국은 내가 한 것이며, 내게 책임이 있다”고 말해야 한다. 35년 간 함께 살아온 반려자이자 고단한 정치인의 아내에서 퍼스트레이디가 된 이가 이런 저런 빚 때문에 남편 재임 중에 후원자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치자. 그렇다면 도덕성을 상표로 내세웠던 노 전 대통령으로서는 응당 자신이 한 것 이상으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부인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남편의 태도가 아닐까?
‘사과문’에서는 아내 권 여사를 ‘저의 집’이라고 표현했다. 아내라고 하면 될 것을 굳이 ‘집’이라고 표현한 것도 뭔가 모호하다. ‘집’이라는 어휘에는 여성을 비하하는 가부장적인 냄새가 날 뿐 아니라, 사리를 제대로 분간하지 못하는 무지렁이 같은 ‘집(사람)’이 일을 벌였다는 감을 국민들에게 전달하고픈 뜻이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인지 ‘사과문’에서는 진정한 참회와 반성이 묻어나지 않고, 궁지를 모면해보려는 옹색함이 느껴진다.
권 여사는 등록금이 없어 고등학교도 중퇴해야 했던 불우한 학생 시절을 보냈다. 직장생활을 하던 25살 때, 고시를 준비하던 청년 노무현에게 믿음이 꽂혀 결혼했다고 한다.
정치에 야망을 품은 남편을 둔 아내는 ‘희생하는 내조자’가 되지 않을 수 없다. 간혹 정치인 남편의 선거운동을 도우려다 옥살이를 한 아내도 있고, 남편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죄를 뒤집어쓴 아내도 있었다.
역대 대통령들이 퇴임 후 통치자금, 비자금 등으로 곤욕을 치렀지만, 전직 영부인이 검찰에 소환되어 피의자로 조사받은 적은 없다. 그렇지만 권 여사가 다음주에 그 기록을 깨게 된다.
남자로 기억되는 게 좋았다
노 전 대통령의 장기는 거침없는 솔직함과 남다른 기개였다. 그 자신이 모든 것을 했노라고 말해도, 검찰이 수사를 하다보면, 부인이 비서관을 통해 돈 받은 사실은 저절로 드러나게 된다. 그런데도 앞질러 부인이 일을 저질렀다고 말하고, 자신은 퇴임 후에 알았다고 하면 면피가 되는 것인가.
설사 실정법은 피해 갈 수 있다 해도, 일국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도덕성과 명예를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은 것이다. 구차하게 법망을 따져 보고 말고 할 필요가 과연 의미가 있는가. 주변의 율사들이 잔머리를 굴린다 해도 비굴한 모습으로 꽁무니를 뺄 수는 없다면서 주위를 물리쳐야 했다.
이제 모든 것을 다 잃었는데, 무슨 미련이 있을까 싶다. 차라리 아내를 지극히 사랑했던 한 남자로 기억될 수 있다면 좋았을 뻔 했다. 이제는 그 기회마저 놓치게 되어 참으로 안타깝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이경형 (언론인 전 서울신문 편집국장)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남자지만, 그 남자를 지배하는 것은 여자다. 미국 현대사에서 역대 대통령을 움직인 여인들 얘기를 쓴 작가 케이티 마튼은 퍼스트레이디를 ‘숨은 권력자’라고 했다.
대통령에게는 권력의 정점에서 고립된 자신과 현실 세계를 연결시켜줄 믿음직한 파트너가 필요하다. 이같은 생생한 여론 전달자의 역할은 바로 대통령의 부인이 할 수 있는 것이며, 한국이라고 해서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영부인은 다른 어떤 공직자보다 더 조언을 잘 할 수 있는 지위에 있으며, 대통령과 가장 소통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웬만한 일은 두 사람 간에 비밀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200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때다. 노무현 후보는 다른 후보가 부인 권양숙 여사의 친정 아버지의 좌익 전력을 들고 나와 공격하자, 이렇게 말했다. “이런 아내를 제가 버려야 합니까? 그렇게 하면 대통령 자격이 있고, 이 아내를 그대로 사랑하면 대통령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까?”
노 후보는 상대 후보의 색깔 공세에 아내를 향한 순애보를 토해냄으로써 수세 국면을 오히려 공세로 역전시켰다. 민주당 대의원들도 이를 지켜본 국민들도 아내 사랑으로 정면승부를 거는 그의 당당한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궁지 모면하려는 옹색함
며칠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은 권 여사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거액을 전달받은 사실이 드러나자 자신의 홈페이지에 “저의 집에서 부탁하고 그 돈을 받아서 사용한 것입니다”고 해명하고 사과했다. 검찰은 권 여사가 노 전 대통령의 재임 중에 돈을 받았다고 했고, 측근들은 노 전 대통령이 근래 와서 이같은 사실을 알았다고 부연했다.
권 여사가 3억원을 받았는지, 10억원을 받았는지 구체적인 돈의 액수에 대해서는 노 전 대통령이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아 알 수 없다. 다만 ‘아내 사랑’이 그렇게 지극했던 그가 사실상 ‘아내가 한 짓’이라고 겸연쩍게 머리를 긁적이는 듯한 사과문의 내용은 그 자신을 너무 초라하게 만들었다. 그 글을 읽으면 권 여사의 처연한 표정이 노 전 대통령의 모습과 오버랩되기도 한다. 뭔가 안에서 울컥 솟아오르는 말이 있다. “노무현씨, 그대는 지금도 아내를 사랑하시나요?”라고 다그쳐 묻고 싶다.
아내에 대한 사랑이 변함없다면, 설령 권 여사가 그렇게 했더라도 구구하게 설명할 필요 없이 “모든 게 결국은 내가 한 것이며, 내게 책임이 있다”고 말해야 한다. 35년 간 함께 살아온 반려자이자 고단한 정치인의 아내에서 퍼스트레이디가 된 이가 이런 저런 빚 때문에 남편 재임 중에 후원자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치자. 그렇다면 도덕성을 상표로 내세웠던 노 전 대통령으로서는 응당 자신이 한 것 이상으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부인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남편의 태도가 아닐까?
‘사과문’에서는 아내 권 여사를 ‘저의 집’이라고 표현했다. 아내라고 하면 될 것을 굳이 ‘집’이라고 표현한 것도 뭔가 모호하다. ‘집’이라는 어휘에는 여성을 비하하는 가부장적인 냄새가 날 뿐 아니라, 사리를 제대로 분간하지 못하는 무지렁이 같은 ‘집(사람)’이 일을 벌였다는 감을 국민들에게 전달하고픈 뜻이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인지 ‘사과문’에서는 진정한 참회와 반성이 묻어나지 않고, 궁지를 모면해보려는 옹색함이 느껴진다.
권 여사는 등록금이 없어 고등학교도 중퇴해야 했던 불우한 학생 시절을 보냈다. 직장생활을 하던 25살 때, 고시를 준비하던 청년 노무현에게 믿음이 꽂혀 결혼했다고 한다.
정치에 야망을 품은 남편을 둔 아내는 ‘희생하는 내조자’가 되지 않을 수 없다. 간혹 정치인 남편의 선거운동을 도우려다 옥살이를 한 아내도 있고, 남편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죄를 뒤집어쓴 아내도 있었다.
역대 대통령들이 퇴임 후 통치자금, 비자금 등으로 곤욕을 치렀지만, 전직 영부인이 검찰에 소환되어 피의자로 조사받은 적은 없다. 그렇지만 권 여사가 다음주에 그 기록을 깨게 된다.
남자로 기억되는 게 좋았다
노 전 대통령의 장기는 거침없는 솔직함과 남다른 기개였다. 그 자신이 모든 것을 했노라고 말해도, 검찰이 수사를 하다보면, 부인이 비서관을 통해 돈 받은 사실은 저절로 드러나게 된다. 그런데도 앞질러 부인이 일을 저질렀다고 말하고, 자신은 퇴임 후에 알았다고 하면 면피가 되는 것인가.
설사 실정법은 피해 갈 수 있다 해도, 일국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도덕성과 명예를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은 것이다. 구차하게 법망을 따져 보고 말고 할 필요가 과연 의미가 있는가. 주변의 율사들이 잔머리를 굴린다 해도 비굴한 모습으로 꽁무니를 뺄 수는 없다면서 주위를 물리쳐야 했다.
이제 모든 것을 다 잃었는데, 무슨 미련이 있을까 싶다. 차라리 아내를 지극히 사랑했던 한 남자로 기억될 수 있다면 좋았을 뻔 했다. 이제는 그 기회마저 놓치게 되어 참으로 안타깝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