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삼중고'' 대한민국 엄마는 괴롭다

지역내일 2009-03-11
일자리 잃은 남편 취업못한 아들 결혼안한 딸
''불황 삼중고'' 대한민국 엄마들은 괴롭다

혼자 속끓이다 주부우울증 등 시달려 ... "비슷한 처지 많다" 위안 삼아야

#정 모(여 38)씨는 요즘 진통제를 달고 산다. 세달 전쯤 중소 건설회사에 다니던 남편이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여파로 편두통이 생겼기 때문이다. 매달 고정적으로 들어오던 수입이 사라지자 어쩔 수 없이 애들이 다니던 학원을 잠깐 동안 쉬기로 했다. 정씨는 “다른 집 자녀들은 학원을 2~3개씩 다니면서 한창 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내 아이들에게 조금 더 나은 교육은 못 시킬망정 다니던 학원도 끊고 있으니 혹시나 내 아이가 뒤처질까봐 조바심이 난다”며 하소연했다. 게다가 남편은 빨리 새 일자리를 얻을 생각은 않고 실업급여를 받는 동안이라도 쉬고 싶다고 말하는 통에 정씨의 스트레스는 더 심해지고 있다.

#김 모(여 55)씨는 서울에 있는 대학을 나온 딸이 졸업을 한 지 2년이 되도록 취업을 못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하다. 가끔씩 자식 자랑을 늘어놓는 친구들을 만나면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고 싶어진다. 김씨는 “부모된 입장에서 자식 뒷바라지하는 건 당연하지만 기왕이면 빨리 직장도 잡고 결혼도 해서 자립하는 모습을 봐야 마음이 놓일 것 같다”고 말했다. 요즘엔 맞벌이를 하기 위해 직장이 있는 아내를 원하는 남자들이 많아 취업을 못하니 덩달아 결혼도 힘들어지고 있다. 이 회사 저 회사에 이력서를 제출하고 합격 소식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딸의 모습을 보면서 김씨도 같이 속을 끓인다.

경기 침체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가운데 실직한 남편이나 취업을 못한 자녀를 지켜보는 주부들이 이중 삼중의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여성의 경우 남성에 비해 정신적으로 더 예민할 뿐만 아니라 호르몬 분비의 영향으로 주부우울증, 갱년기우울증을 동반할 수 있어 더 큰 고통을 겪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지적됐다.
얼마 전 의정부에서 자식 남매를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하려고 했던 이 모(여 34)씨도 생활고로 인한 우울증이 주된 범행 동기였다. 불황으로 아내, 엄마들이 더 큰 정신적 위험에 노출되고 있는 상황이다.
건국대 신경정신과 하지현 교수는 “사회 경제적 변화에 따라 그런 환자들이 늘고 있다”며 “한 환자의 경우 남편의 실직으로 최소한의 생활비도 벌어오지 못하게 되자 불안, 초조, 불면 증세를 호소하며 상담을 받으러 오는 경우가 늘고있다”고 밝혔다. 성격적으로나 환경적으로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상황을 넘어버리면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망상 증세까지 보이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박두흠 교수는 “요즘 주부들은 미래가 불확실한 것에 대해 불안을 많이 느낀다"면서 "경제적인 문제로 스트레스 요인이 한 가지 더 증가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남편이 돈벌이가 안정적일 때는 우울증이 약했다가 돈벌이가 들쭉날쭉해지면 우울증이 심해지는 환자도 있다”며 “남편 수입은 줄고 자녀들의 진로는 생각대로 되지 않는 등 이중의 고통을 토로하는 환자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스트레스를 많이 느끼는 주부들이 정신적인 위로나 도움을 얻기 위해서 혼자서만 괴로워하거나 앓지 말고 자신의 상태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많은 다른 사람이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아는 것도 위로가 된다고 설명했다.

박소원 기자 hope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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