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성가장의 홀트 방문기<355호/내일칼럼>

김노마 고양일하는여성의집 관장

지역내일 2000-10-18

내가 몸담고 있는 일하는여성의집은 여성 직업능력을 개발하고 그에 따른 기능과 기술을 배
우는 곳이다. 이 교육은 사회 소외계층인 실직여성가장들이 기능을 가지고 사회에 취업토록
도와주는데 목적이 있다.
그런데 지난 주 간병인 훈련생들이 홀트아동복지회를 방문했다. 어려운 주머니사정에도 조
금씩 정성을 모아 성금도 마련하고 그동안 배우고 익힌 간호기술도 발휘할 생각이란다. 마
치 소풍이라도 가는 듯 들떠있는 표정이 그렇게 밝을 수가 없다. 바쁘다며 얼마간의 성금만
넣어주고 잘 다녀오라고 등을 떠밀었다.
다음날 출근하여 여성가장을 붙잡고 잘 다녀왔느냐고 묻자 대뜸 "감사, 또 감사하며 살거예
요. 제가 남편없이 자식들과 22년을 살면서 정말 안해본 일이 없어요. 그런데 나는 그래도
행복하다고 느꼈어요"라고 말했다. 사지가 뒤틀리고 목을 가누지 못해 욕창을 걱정하며 집
게로 머리를 휠체어에 묶은 중증 장애아동 얘기를 할 때는 "어제도 대성통곡 했는데 아직도
목이 메이네요"라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그런데요 관장님. 그들 눈을 보니까 천사예요. 맑
고 깨끗하고 아무런 욕심이 없는게 늘 현실의 이익에 매여 아귀다툼을 하는 우리들하고는
틀리데요."
비록 자신도 그리 잘사는 것은 아니지만 나보다 못한 이웃을 돌아볼 마음을 다졌다는 한 여
성가장의 이같은 홀트아동복지회 방문기를 들으니 가슴이 아려온다.
'나는 몇 번이나 내 주위 쓸쓸한 이웃을 돌아봤던가!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 수많은 물음
들이 바쁜 일상을 핑계삼은 내 무심함에 채찍을 휘두른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마
음이 풍요로운 사람이라고, 마음이 넉넉한 사람은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건 세상을 아름답고
빛나게 가꿀줄 안다고 되새기던 젊은날의 다짐들이 부표처럼 내 주위를 떠돈다.
문득 여성가장이 가고난 자리를 살피니 홀트아동복지회 안내지가 있길래 살펴보니 장애아동
돕기 계좌가 적혀있다. 이것이나마 나의 무심함에 속죄가 됐으면 싶다.
점점 차가운 바람이 조석으로 옷깃을 여미게 하는 계절이다. 이런 때일수록 더욱 쓸쓸한 사
람들이 있다. 열달을 줄기차게 나를 위하여 내 가족을 위하여 달려왔다면 나머지 두 달은
내 주위 불우한 이웃을 돌아보는 것이 행복한 내년을 미리 만나는 일 일 것이다.
이번 홀트아동복지회를 방문하고 정말 많은 것을 느낀 훈련생처럼 자극을 주고 동기를 부여
하는 것이 평생교육의 역할이 아닐까? "늘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자"고 다짐했다는 여
성가장의 그 한마디가 오래도록 내 가슴에 앙금으로 남는 날이다.
/김노마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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