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남편 흉을 보는 까닭은?
신아연
주부·호주 거주
엊그제, 60대 초반 연령의 대여섯쌍의 부부가 함께 저녁을 먹는 자리에 우연한 계기로 합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모임 이름은 ‘AB’라고 하는데 그렇게 지은 사연이 재밌습니다.
멤버들이 만난 지 얼마되지 않아 부부 동반으로 여행을 가서는 밤에 남편들을 ‘재워놓고’ 아내들끼리 모여 남편 흉을 보기 시작했더랍니다. 모두들 입담이 여간 아니었던지라 야심한 시각까지 ‘성토’가 이어지면서 남정네들이 한결같이 그렇게 성미가 고약하고 까다로운 것이 혹시 혈액형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며 급기야는 과학적 분석에 들어갔답니다.
결과는 공교롭게도 남녀 할 것 없이 회원 전체가 A형 아니면 AB형으로 나왔다는 거 아닙니까. 순간 박장대소하며 망설임없이 그 자리에서 만장일치로 모임 이름을 ‘AB’로 지은 후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면서 또한번 왁자하게 웃는 것으로 보아 40대 초반에 결성되어 일점 퇴색함없이 20년을 줄창 이어온 저력을 오늘에 되살려 가일층 매진할 기세였습니다.
하기야 남편 흉 보기로 치면 20년 세월이 무색할 뿐 아니라 어디 ‘AB’ 모임 뿐이겠습니까. 남편이란 존재가 어디 혈액형 골라가며 미운 짓을 하는가 말입니다. 특정 혈액형 구분없이 AO모임, ABO모임, BO모임, AA모임, BB모임인들 생겨 마땅하지 않으리란 법이 없을 겁니다.
저한테 모임을 소개하는 것을 빌미 삼아 또 한 번 남편들을 도마에 올리고 있건만 정작 듣는 남편들은 무심하다 못해 초연하게 한 무리로 모여 앉아 식사에만 전념하는 모습이 더 재미있었습니다.
‘남편이란 존재는 이래저래 애물 덩어리- 집에 두고 오면 근심 덩어리, 같이 나오면 짐 덩어리, 혼자 내 보내면 걱정 덩어리, 마주 앉아 있으면 웬수 덩어리’ 라고 하더니, 아마도 그 자리가 바로 ‘짐 덩어리’ 자리라는 자각 탓에 누구하나 가타부타 말씀이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부모임이라지만 솔직히 제 눈에도 아내들 모임에 남편들이 따라온 것처럼 보였으니까요. 아내가 곰국을 끓이면 남편은 긴장하기 시작한다는데 그나마 집에서 혼자 곰국을 데워먹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황감스럽다는 듯 말이지요.
제 대학 선배는 남편이 뉴질랜드 사람인데도 출타할 땐 곰국을 끓여놓고 나올 정도라니 한국 아내들의 위력은 가히 국제적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왜 여자들은 모이기만 하면 앞다투어 남편 흉을 보는지 분통을 터뜨리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제 경험으로 그것은 그 자리에 모인 여인들의 결속력이자, 단결력, 소속감, 친근감의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서적으로 술에 취한 느낌이랄지, 분위기가 무르익어갈수록 과장되고 왜곡된 표현도 서슴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재미로 그런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식이 곧 실제’라는 믿음은 적어도 남편 흉보기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마치 사진사가 렌즈를 바꿔가며 실체를 변형하는 행위에 대해 스스로 자각하고 있듯이, 남편을 흉보는 그 순간 스스로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객관적 실체와 무관한 순전히 주관적인 인식작용이라는 뜻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목사는 초년 목회시절, 여신도 모임을 인도할 때 그이들의 남편은 죄다 머리에 뿔이 서너 개쯤 달린 도깨비려니 했답니다. 모일 때마다 하도 가열차게 남편 흉들을 보길래 흉측해도 이만저만이 아니겠거니 했는데 웬걸, 막상 만나보니 모두들 그렇게 점잖고 멀쩡할 수가 없더랍니다. 그 때부터 ‘아, 여자들은 남편들 좋다는 소리를 거꾸로 하는구나, 설혹 탐탁치 않다 해도 저렇게 드러내 놓고 남편을 흉볼 수 있는 한 그 부부관계는 건강하다는 증거구나’라는 큰 깨달음이 오더랍니다.
제대로 잘 깨달으신 겁니다. 아내들이 남편을 헐뜯는 내용은 사실과는 많이 다릅니다. 더구나 남들 앞에서 드러내놓고 하는 험담은 그저 여자들끼리 친해지자는 말의 향연일 따름입니다.
AB 모임 회원들의 결혼 연수는 각자 최소 30년이며, 아내들이 남편 흉을 보아온 경력도 얼추 20년에 가깝습니다. 모일 때마다 아내들의 결속력과 친분이 그 정도라니 행복한 모임 아닙니까. 바로 옆에 앉아서 번갈아 가며 도마에 오르면서도 눈 하나 꿈쩍 않는 남편분들의 20년 내공은 또 얼마나 멋집니까.
영원하리, AB 모임!
AB모임의 영원 무궁을 기원하는 것으로 그 날의 밥값을 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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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주부·호주 거주
엊그제, 60대 초반 연령의 대여섯쌍의 부부가 함께 저녁을 먹는 자리에 우연한 계기로 합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모임 이름은 ‘AB’라고 하는데 그렇게 지은 사연이 재밌습니다.
멤버들이 만난 지 얼마되지 않아 부부 동반으로 여행을 가서는 밤에 남편들을 ‘재워놓고’ 아내들끼리 모여 남편 흉을 보기 시작했더랍니다. 모두들 입담이 여간 아니었던지라 야심한 시각까지 ‘성토’가 이어지면서 남정네들이 한결같이 그렇게 성미가 고약하고 까다로운 것이 혹시 혈액형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며 급기야는 과학적 분석에 들어갔답니다.
결과는 공교롭게도 남녀 할 것 없이 회원 전체가 A형 아니면 AB형으로 나왔다는 거 아닙니까. 순간 박장대소하며 망설임없이 그 자리에서 만장일치로 모임 이름을 ‘AB’로 지은 후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면서 또한번 왁자하게 웃는 것으로 보아 40대 초반에 결성되어 일점 퇴색함없이 20년을 줄창 이어온 저력을 오늘에 되살려 가일층 매진할 기세였습니다.
하기야 남편 흉 보기로 치면 20년 세월이 무색할 뿐 아니라 어디 ‘AB’ 모임 뿐이겠습니까. 남편이란 존재가 어디 혈액형 골라가며 미운 짓을 하는가 말입니다. 특정 혈액형 구분없이 AO모임, ABO모임, BO모임, AA모임, BB모임인들 생겨 마땅하지 않으리란 법이 없을 겁니다.
저한테 모임을 소개하는 것을 빌미 삼아 또 한 번 남편들을 도마에 올리고 있건만 정작 듣는 남편들은 무심하다 못해 초연하게 한 무리로 모여 앉아 식사에만 전념하는 모습이 더 재미있었습니다.
‘남편이란 존재는 이래저래 애물 덩어리- 집에 두고 오면 근심 덩어리, 같이 나오면 짐 덩어리, 혼자 내 보내면 걱정 덩어리, 마주 앉아 있으면 웬수 덩어리’ 라고 하더니, 아마도 그 자리가 바로 ‘짐 덩어리’ 자리라는 자각 탓에 누구하나 가타부타 말씀이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부모임이라지만 솔직히 제 눈에도 아내들 모임에 남편들이 따라온 것처럼 보였으니까요. 아내가 곰국을 끓이면 남편은 긴장하기 시작한다는데 그나마 집에서 혼자 곰국을 데워먹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황감스럽다는 듯 말이지요.
제 대학 선배는 남편이 뉴질랜드 사람인데도 출타할 땐 곰국을 끓여놓고 나올 정도라니 한국 아내들의 위력은 가히 국제적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왜 여자들은 모이기만 하면 앞다투어 남편 흉을 보는지 분통을 터뜨리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제 경험으로 그것은 그 자리에 모인 여인들의 결속력이자, 단결력, 소속감, 친근감의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서적으로 술에 취한 느낌이랄지, 분위기가 무르익어갈수록 과장되고 왜곡된 표현도 서슴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재미로 그런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식이 곧 실제’라는 믿음은 적어도 남편 흉보기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마치 사진사가 렌즈를 바꿔가며 실체를 변형하는 행위에 대해 스스로 자각하고 있듯이, 남편을 흉보는 그 순간 스스로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객관적 실체와 무관한 순전히 주관적인 인식작용이라는 뜻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목사는 초년 목회시절, 여신도 모임을 인도할 때 그이들의 남편은 죄다 머리에 뿔이 서너 개쯤 달린 도깨비려니 했답니다. 모일 때마다 하도 가열차게 남편 흉들을 보길래 흉측해도 이만저만이 아니겠거니 했는데 웬걸, 막상 만나보니 모두들 그렇게 점잖고 멀쩡할 수가 없더랍니다. 그 때부터 ‘아, 여자들은 남편들 좋다는 소리를 거꾸로 하는구나, 설혹 탐탁치 않다 해도 저렇게 드러내 놓고 남편을 흉볼 수 있는 한 그 부부관계는 건강하다는 증거구나’라는 큰 깨달음이 오더랍니다.
제대로 잘 깨달으신 겁니다. 아내들이 남편을 헐뜯는 내용은 사실과는 많이 다릅니다. 더구나 남들 앞에서 드러내놓고 하는 험담은 그저 여자들끼리 친해지자는 말의 향연일 따름입니다.
AB 모임 회원들의 결혼 연수는 각자 최소 30년이며, 아내들이 남편 흉을 보아온 경력도 얼추 20년에 가깝습니다. 모일 때마다 아내들의 결속력과 친분이 그 정도라니 행복한 모임 아닙니까. 바로 옆에 앉아서 번갈아 가며 도마에 오르면서도 눈 하나 꿈쩍 않는 남편분들의 20년 내공은 또 얼마나 멋집니까.
영원하리, AB 모임!
AB모임의 영원 무궁을 기원하는 것으로 그 날의 밥값을 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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