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엔 다들 한가닥씩 했습니다”

지역내일 2008-12-12
이색경력 공무원들 눈길
뮤지컬 배우부터 소방관까지

서울 양천구청 감사실에서 일하는 차미정(33)씨는 뮤지컬 배우였다. 1999년 자신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백범 김구 추모공연 ‘못다한 사랑’으로 예술의전당 무대에도 섰다. 2000년에는 서울시 뮤지컬 연수단원으로 활동했다.
홍수진(31·구로구청 감사담당관)씨는 7개월 전까지만 해도 서울 은평소방서 녹번119안전센터에 근무하던 소방관이었다. ‘큰 세계에서 많이 배우라’는 선배들 조언을 따라 행정직으로 진로를 바꿨다.

◆보다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 = 공무원이 최고 인기 직종 중 하나가 되면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공직에 입문한 이들이 늘고 있다. 특히 보수적인 공직사회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이색 경력 대신 공무원이 된 젊은이들은 ‘신규’ 공무원 평균연령을 높이는 주역이기도 하다.
공무원의 가장 큰 매력은 안정성. 공경언(34·용산구 한남동)씨는 ‘별’을 꿈꾸던 직업 군인이었다. 그가 5급 대위에서 9급 행정직으로 ‘전락(?)’할 수 있었던 데는 계약직이 아니라는 이유가 컸다. 서초구청 정정령(27·건축과)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니아층에서 꽤 이름을 얻은 만화작가였다. 경영난에 시달리던 잡지사가 문을 닫으면서 2년 6개월여에 걸친 만화작가로서의 삶을 마감했다.
자기계발이나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점도 큰 매력이다. 남석윤(29·중구청 총무과)씨는 보수가 30% 이상 줄어드는 손해를 감수하면서 말을 갈아탔다. 출판사에서 기획부터 편집까지 총괄하는 업무를 2년간 해오며 또래보다 많은 보수를 받았지만 ‘앞날’이 보이지 않아서다. “육아 중인 선배들이 잘해야 한달에 1~2번 아이를 만나더라구요. 미래를 생각할 때 좀 더 내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직장을 찾아야겠다 싶었어요.”
구로구청 홍수진씨도 “2교대로 일하는 근무형태가 자기계발에 한계가 많다는 생각”에 과감히 전직을 결심했다. 영화 ‘분노의 역류’를 보며 화재진압 현장에 뛰어들 날을 꿈꿨지만 다시 새로운 꿈을 찾고 있다.

◆행정서비스에 전문성 더한다 = 젊은 공무원들의 이색 경력은 새로운 직장에서 톡톡히 제 역할을 해낸다. 홍수진씨는 소방감사반에서 암행감찰하던 경력을 감사담당관에서 활용하고 있다. 시민불편살피미도 그의 업무 분야 중 하나인데 특히 소방분야는 전부 떠맡고 있다. 홍씨는 “선배들이 지금까지는 거의 포기하다시피 한 업무였다며 맡을 사람이 생겼다고 좋아했다”고 말했다.
양천구 차미정씨는 사내 진행자로 벌써부터 이름을 날리고(?) 있다. 지난 5월 개청 20주년 기념행사인 한마음대축제에서 외부 아나운서와 함께 공동 진행을 맡기도 했다. 차씨는 “서울문화재단이나 문화관광부, 문화 관련 부서에서 경력과 행정을 접목하고 싶다”고 말했다. 취미활동을 할 수 있는 동아리를 꾸려 지역사회 봉사활동을 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시중은행 콜센터에서 3년간 일했던 김민경(31·중구 신당5동)씨는 “전화와 대면상담이라는 점은 다르지만 민원업무라는 점에서는 같다”며 “경험이 있어 상대적으로 마음의 여유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회가 된다면 다산콜센터나 구청 내 민원콜센터 등 경력을 살려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서초구청 정정령씨는 “사업 입안하고 확정 집행 평가하는 행정업무가 기획하고 색 입히고 독자들 반응 살피는 만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어린이놀이터나 경로당 자전거보관소 등에 만화적 상상력을 불어넣어 ‘이야기가 살아 숨쉬는’ 곳으로 조성하고 싶단다. 구청생활을 담은 만화도 머릿속에서는 벌써 그리는 중이다.
서울 한 자치구 관계자는 “국내외 유명대학 졸업자가 있는가 하면 대기업이나 중앙부처 대신 구청 말단 공무원을 택하는 후배들을 종종 볼 수 있다”며 “공무원 위상이 높아졌음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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