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친구들이 ‘꼴찌, 뭐 하냐’며 장난 문자를 자꾸 보내서 괴로워요.(웃음)”
경상북도 풍기읍에 위치한 경륜훈련원. 땀에 흠뻑 젖은 채 훈련을 마치고 복귀하던 올림픽 사이클 국가대표 박성백(24·서울시청) 선수는 예상보다 활기찬 모습으로 ‘엄살’을 떨었다. 그는 1988년 이후 20년 만에 처음으로 사이클 도로부문에 출전한 유일한 남자선수로 올림픽 무대가 처음이었다. 메달을 따지 못하고 ‘국가대표 1호’로 귀국한 아픔은 일찌감치 떨친 듯 했다.
박 선수는 지난 9일 낮 12시 베이징 톈안먼광장을 출발, 교외 23.8km의 코스를 7바퀴 도는 총 245.4km의 사이클 도로경기에 출전했다. 도전자 143명 중 이 코스를 완주하는 데 성공한 사람은 90명이었다. 그는 88등을 했다. 완주에 걸린 시간은 7시간 3분 4초. 1위인 사무엘 산체스(30·스페인)보다 40분가량 더 걸렸다. “변변한 장비도, 스태프도 없이 완주에 성공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는 게 주위 선수와 코치의 반응이다.
그는 올림픽 출전이 결정되고 지난 6개월 동안 올림픽 준비에 전념했다. “TV, 인터넷으로나 보던 꿈의 선수들과 겨루는 건데 대충 할 수가 있어야죠.” 서울시청 팀 동료들도 힘을 보탰다. 지난 6월부터 열린 ‘투르드코리아’ 시합 후 8명 모두 휴가도 반납하고 그의 연습 파트너가 돼줬다. 일주일에 1000km 이상 달리는 강훈련이 이어지자 시합을 보름 앞두고 무릎이 상했다. 그래도 박 선수는 치료를 받으며 훈련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말처럼 “후회 없이 연습했다.”
그러나 시합이 가까워질수록 그는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보통 사이클 도로 출전 팀은 선수, 마사지, 메카닉, 코치, 감독 등 스태프 4~5명이 한 조를 이룬다. 장거리 경주인만큼 보급, 자전거 공수, 컨디션 관리 등 다양한 지원이 필수인 탓이다. 하지만 박 선수는 “혼자 출전한다”는 이유로 감독 단 한 명과 시합에 나가야 했다. “시합 직전에는 원래 ‘스타트 오일’이란 걸 발라 근육을 이완시켜야 해요. 하지만 마사지가 없어서 자전거 탄 지 12년 만에 처음으로 그냥 출발했어요.” 평소라면 준비했을 여분의 자전거도 챙길 사람이 없어서 놓고 가야 했다.
마땅한 조언자가 없어 전략을 세우지 못한 채 전날 밤을 샌 박 선수는 충혈 된 눈으로 베이징 도로를 달렸다. 50km 지점에서 타이어가 펑크 났다. 그는 스태프가 없어 평소 안면 있던 일본인 스태프의 도움으로 자전거를 고쳤다. 그 동안 경쟁자들은 계속 그의 곁을 지나쳤다. 다시 열심히 페달을 밟아 대열에 합류했다. 그런데 다른 선수들이 모두 머리에 얼음주머니를 얹고 있었다. “왜 그러나” 하는 궁금증은 10km 언덕길에서 풀렸다. 오르막을 오르기 시작하자 머리에 열이 나면서 터질 듯이 아파왔다.
스태프 부족은 보급문제로도 이어졌다. 총 7바퀴 코스. 다른 선수들은 반 바퀴마다 물을 공수 받아 마시고 물통을 바로 버리면서 무게를 덜었다. 그러나 박 선수는 2바퀴마다 물통을 두 개씩 받아 실은 채 달려야 했다.
악재가 겹치면서 체력과 순위가 급격히 떨어지자 애초 50위권을 목표로 했던 박 선수는 목표를 ‘완주’로 수정해야 했다. “4바퀴 이후로는 어떻게 달렸는지 기억도 안 나요. 차선만 보고 간 것 같아요.”
박성백 선수와 그의 악전고투를 지켜 본 것은 외국 방송이었다고 한다. “호주 사는 누나가 TV로 절 봤대요. ‘아시아 간판급 선수’ ‘출전 선수 중에 나이가 가장 어린 축에 속한다’ ‘이번 기록은 좋지 않아도 앞으로 유망할 것’ ‘유럽 경험은 없다’ ‘여자친구가 말레이시아 승마선수’ 등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해 주더래요.”
그는 “사이클이 메달 딸 가능성이 낮아서 국내 방송이 챙기지 않은 것 같다”며 “아직 한국 사이클은 여러모로 선진국에 비해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이번 경험이 자신의 사이클 인생에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태어나서 이렇게 중요한 시합에서, 이렇게 먼 거리를, 이렇게 힘들게 달려본 적이 없었다”는 그는 “이 경험을 토대로 다음 국제시합도 준비하면 한층 더 자랄 수 있을 것 같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박 선수는 귀국 사흘 후부터 경륜훈련원에서 오는 26일 열리는 인천광역시장배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부모님은 한 달 정도 쉬라고 하세요. 팀에서도 힘든 시합 했으니 이번엔 쉬어도 좋다고 했죠. 하지만 지금이 저를 성장시키기에 가장 좋은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4년 후를 생각해서라도 고삐를 늦춰선 안 되죠.”
그의 국가대표 인생은 이제 시작이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친구들이 ‘꼴찌, 뭐 하냐’며 장난 문자를 자꾸 보내서 괴로워요.(웃음)”
경상북도 풍기읍에 위치한 경륜훈련원. 땀에 흠뻑 젖은 채 훈련을 마치고 복귀하던 올림픽 사이클 국가대표 박성백(24·서울시청) 선수는 예상보다 활기찬 모습으로 ‘엄살’을 떨었다. 그는 1988년 이후 20년 만에 처음으로 사이클 도로부문에 출전한 유일한 남자선수로 올림픽 무대가 처음이었다. 메달을 따지 못하고 ‘국가대표 1호’로 귀국한 아픔은 일찌감치 떨친 듯 했다.
박 선수는 지난 9일 낮 12시 베이징 톈안먼광장을 출발, 교외 23.8km의 코스를 7바퀴 도는 총 245.4km의 사이클 도로경기에 출전했다. 도전자 143명 중 이 코스를 완주하는 데 성공한 사람은 90명이었다. 그는 88등을 했다. 완주에 걸린 시간은 7시간 3분 4초. 1위인 사무엘 산체스(30·스페인)보다 40분가량 더 걸렸다. “변변한 장비도, 스태프도 없이 완주에 성공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는 게 주위 선수와 코치의 반응이다.
그는 올림픽 출전이 결정되고 지난 6개월 동안 올림픽 준비에 전념했다. “TV, 인터넷으로나 보던 꿈의 선수들과 겨루는 건데 대충 할 수가 있어야죠.” 서울시청 팀 동료들도 힘을 보탰다. 지난 6월부터 열린 ‘투르드코리아’ 시합 후 8명 모두 휴가도 반납하고 그의 연습 파트너가 돼줬다. 일주일에 1000km 이상 달리는 강훈련이 이어지자 시합을 보름 앞두고 무릎이 상했다. 그래도 박 선수는 치료를 받으며 훈련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말처럼 “후회 없이 연습했다.”
그러나 시합이 가까워질수록 그는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보통 사이클 도로 출전 팀은 선수, 마사지, 메카닉, 코치, 감독 등 스태프 4~5명이 한 조를 이룬다. 장거리 경주인만큼 보급, 자전거 공수, 컨디션 관리 등 다양한 지원이 필수인 탓이다. 하지만 박 선수는 “혼자 출전한다”는 이유로 감독 단 한 명과 시합에 나가야 했다. “시합 직전에는 원래 ‘스타트 오일’이란 걸 발라 근육을 이완시켜야 해요. 하지만 마사지가 없어서 자전거 탄 지 12년 만에 처음으로 그냥 출발했어요.” 평소라면 준비했을 여분의 자전거도 챙길 사람이 없어서 놓고 가야 했다.
마땅한 조언자가 없어 전략을 세우지 못한 채 전날 밤을 샌 박 선수는 충혈 된 눈으로 베이징 도로를 달렸다. 50km 지점에서 타이어가 펑크 났다. 그는 스태프가 없어 평소 안면 있던 일본인 스태프의 도움으로 자전거를 고쳤다. 그 동안 경쟁자들은 계속 그의 곁을 지나쳤다. 다시 열심히 페달을 밟아 대열에 합류했다. 그런데 다른 선수들이 모두 머리에 얼음주머니를 얹고 있었다. “왜 그러나” 하는 궁금증은 10km 언덕길에서 풀렸다. 오르막을 오르기 시작하자 머리에 열이 나면서 터질 듯이 아파왔다.
스태프 부족은 보급문제로도 이어졌다. 총 7바퀴 코스. 다른 선수들은 반 바퀴마다 물을 공수 받아 마시고 물통을 바로 버리면서 무게를 덜었다. 그러나 박 선수는 2바퀴마다 물통을 두 개씩 받아 실은 채 달려야 했다.
악재가 겹치면서 체력과 순위가 급격히 떨어지자 애초 50위권을 목표로 했던 박 선수는 목표를 ‘완주’로 수정해야 했다. “4바퀴 이후로는 어떻게 달렸는지 기억도 안 나요. 차선만 보고 간 것 같아요.”
박성백 선수와 그의 악전고투를 지켜 본 것은 외국 방송이었다고 한다. “호주 사는 누나가 TV로 절 봤대요. ‘아시아 간판급 선수’ ‘출전 선수 중에 나이가 가장 어린 축에 속한다’ ‘이번 기록은 좋지 않아도 앞으로 유망할 것’ ‘유럽 경험은 없다’ ‘여자친구가 말레이시아 승마선수’ 등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해 주더래요.”
그는 “사이클이 메달 딸 가능성이 낮아서 국내 방송이 챙기지 않은 것 같다”며 “아직 한국 사이클은 여러모로 선진국에 비해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이번 경험이 자신의 사이클 인생에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태어나서 이렇게 중요한 시합에서, 이렇게 먼 거리를, 이렇게 힘들게 달려본 적이 없었다”는 그는 “이 경험을 토대로 다음 국제시합도 준비하면 한층 더 자랄 수 있을 것 같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박 선수는 귀국 사흘 후부터 경륜훈련원에서 오는 26일 열리는 인천광역시장배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부모님은 한 달 정도 쉬라고 하세요. 팀에서도 힘든 시합 했으니 이번엔 쉬어도 좋다고 했죠. 하지만 지금이 저를 성장시키기에 가장 좋은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4년 후를 생각해서라도 고삐를 늦춰선 안 되죠.”
그의 국가대표 인생은 이제 시작이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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