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칼럼="">영어를 공용어로 할 것인가(조동일)
조동일/서울대학교 교수 국어국문학과
영어가 세계어 노릇을 하고 있어, 어디서나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는 시대가 되었다. 왜 하필 영어인가, 불어는 어째서 밀리는가, 에스페란토의 희망은 어떻게 되었는가. 한국어의 국제적 진출은 불가능한가. 이렇게 한탄해도 소용없다. 영어의 세계지배는 문화제국주의의 잔재이거나 새로운 패권주의의 음모라는 지론을 펴고자 해도 영어를 사용해야 널리 알릴 수 있다.
영어를 잘 하려면 영어를 공용어로 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라는 주장이 대두해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이에 대해서 공허한 말로 갑론을박하지 말자. 영어의 위협에 맞서서 민족문화를 지키자고 하는 명분론으로 결론을 삼을 것도 아니다. 실상 연구가 우선 과제이다. 영어를 공용어로 하는 나라는 어떤 나라인지 살피면서,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는지, 그렇게 할 필요가 있는지 따져야 한다.
국민 대다수의 모국어가 영어인 나라에서 영어를 국어로 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가 한국어를 국어로 하는 것과 같다. 모국어를 영어로 바꾸어 영어를 공용어로 한 나라는 없다. 영어가 모국어는 아니면서 공용어인 나라는 적지 않아 그쪽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할 필요가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이고, 어떤 득실이 있는지 알아야 한다.
그 나라의 본보기를 들면 케냐, 나이지리아, 인도,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이 있다. 모두 영미의 식민지 시대에 공용어였던 영어를 모국어가 서로 다른 민족이 공존해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독립국이 되고도 버리지 못한다. 중심부에 거주하는 비교적 다수의 모국어를 국어로 육성하기 위해 대단한 노력을 해도 성과가 미흡해, 원하지 않는 바이면서 영어를 사실상의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 조건은 어느 하나도 우리와는 같지 않다.
제주도, 홍콩과 싱가포르처럼 만들기 불가능
홍콩과 싱가포르는 독자적인 역사가 없이 영국의 식민지 통치에 의해 비로소 출현한 실체가 영어를 계속 사용해야 유지된다. 주민의 다수가 중국인이지만 표준중국어와 통하지 않는 말을 사용하고 있어, 영어에 의지하지 않으면 공용어 공백이 생긴다. 싱가포르에서는 상당수를 차지하는 말레인이나 인도인이 중국어 때문에 영어를 버리려고 하지 않는다. 제주도를 홍콩이나 싱가포르처럼 만드는 것은 어떤 방법을 써도 전연 불가능하다.
영어를 공용어로 하면 세계화에 뒤떨어지지 않아 경제가 발전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과연 그런가 ?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일본 등이 위에서 든 나라들보다 앞선 이유를 영어 사용 능력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 이런 초보적인 질문마저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서 영어 공용화를 발전의 전략으로 삼자고 하는 순진한 사람들이 더러 있어도 무방하지만, 국가 정책을 좌우하면 우려할 만한 사태가 벌어진다.
일본서도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주장이 제기되는데 무슨 소리냐 하고 반문할지 모른다. 일본에서는 일본어를 없애고 영어를 국어로 하자는 말까지 한다. 그러나 일본은 쉽사리 변하지 않는 나라여서 그런 소리가 흥밋거리 노릇을 한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이든지 화끈하게 밀어붙이는 제왕의 권력이 자주 발동되어 걱정이다. 개혁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무엇이든지 해도 좋다고 우기는 풍조가 새로운 우려를 자아낸다. 만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바다를 막듯이 영어 공용화를 추진해 큰 참사가 벌어질 수 있다.
정책 결정에는 연구가 선행해야 한다. 세계화는 세계를 아는 데서 시작된다. 무식이 용기인 시대는 지났다. 공용어를 둘로 하자는 것이 무식의 극치를 이루는 발상이다. 국어가 확립되어 있으면서 외국어를 또 하나의 공용어로 삼은 나라는 이 지구상에 하나도 없다. 국어가 둘이어서 이중의 공용어를 사용하는 나라는 견디기 어려운 혼란과 고통을 겪는다.
영어를 공용어로 하면 영어를 잘 할 수는 있는 것은 아니다. 영어를 잘 하면 영어를 공용어로 할 수 있으나, 그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손해가 더 크다. 영어를 아주 잘 하는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 같은 나라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삼지 않는다. 영어를 잘 못하면서 영어를 공용어로 하려고 하면 감당하기 어려운 낭비와 혼란을 겪는다. 그런 모험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
영어는 외국어이다. 외국어를 공부하는 방법은 모국어와 다르다. 모국어는 자연적인 습득, 외국어는 인위적인 학습의 방법을 사용해 배운다. 지금까지 해온 영어 공부 방법을 매도하고 아이들을 원어민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은 잘못이다.
영어 잘하는 스웨덴 등도 공용어 삼지 않는다
모국어가 영어와 비슷한 유럽 각국 사람들이 영어를 배우는 방법은 그 나름대로의 특징이 있다. 영어를 말하지 못하면서 읽을 수 있게 공부한 것은 일본인다운 슬기를 살린 창안이다. 그 둘 가운데 하나를 택하는 해답을 바꾸면 새로운 해결책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다른 여러 사례까지 포함해 세계인의 영어 학습에 대해 광범위한 비교연구를 하면서 우리에게 맞는 최상의 방법을 찾아 실행해야 한다.
세계화에 슬기롭게 참여하려면 우리가 더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우리문화를 계승하고 재창조하는 주체적인 능력이 경쟁력이다. 창조의 성과를 영어로 옮겨 밖으로 내놓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 우리가 쓰기에 좋은 물건을 잘 만들어야 수출을 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세계인의 영어공부 비교연구도 국내용으로 소중히 기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널리 환영받을 수출품이다.
조동일/서울대학교 교수 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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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일/서울대학교 교수 국어국문학과
영어가 세계어 노릇을 하고 있어, 어디서나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는 시대가 되었다. 왜 하필 영어인가, 불어는 어째서 밀리는가, 에스페란토의 희망은 어떻게 되었는가. 한국어의 국제적 진출은 불가능한가. 이렇게 한탄해도 소용없다. 영어의 세계지배는 문화제국주의의 잔재이거나 새로운 패권주의의 음모라는 지론을 펴고자 해도 영어를 사용해야 널리 알릴 수 있다.
영어를 잘 하려면 영어를 공용어로 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라는 주장이 대두해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이에 대해서 공허한 말로 갑론을박하지 말자. 영어의 위협에 맞서서 민족문화를 지키자고 하는 명분론으로 결론을 삼을 것도 아니다. 실상 연구가 우선 과제이다. 영어를 공용어로 하는 나라는 어떤 나라인지 살피면서,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는지, 그렇게 할 필요가 있는지 따져야 한다.
국민 대다수의 모국어가 영어인 나라에서 영어를 국어로 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가 한국어를 국어로 하는 것과 같다. 모국어를 영어로 바꾸어 영어를 공용어로 한 나라는 없다. 영어가 모국어는 아니면서 공용어인 나라는 적지 않아 그쪽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할 필요가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이고, 어떤 득실이 있는지 알아야 한다.
그 나라의 본보기를 들면 케냐, 나이지리아, 인도,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이 있다. 모두 영미의 식민지 시대에 공용어였던 영어를 모국어가 서로 다른 민족이 공존해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독립국이 되고도 버리지 못한다. 중심부에 거주하는 비교적 다수의 모국어를 국어로 육성하기 위해 대단한 노력을 해도 성과가 미흡해, 원하지 않는 바이면서 영어를 사실상의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 조건은 어느 하나도 우리와는 같지 않다.
제주도, 홍콩과 싱가포르처럼 만들기 불가능
홍콩과 싱가포르는 독자적인 역사가 없이 영국의 식민지 통치에 의해 비로소 출현한 실체가 영어를 계속 사용해야 유지된다. 주민의 다수가 중국인이지만 표준중국어와 통하지 않는 말을 사용하고 있어, 영어에 의지하지 않으면 공용어 공백이 생긴다. 싱가포르에서는 상당수를 차지하는 말레인이나 인도인이 중국어 때문에 영어를 버리려고 하지 않는다. 제주도를 홍콩이나 싱가포르처럼 만드는 것은 어떤 방법을 써도 전연 불가능하다.
영어를 공용어로 하면 세계화에 뒤떨어지지 않아 경제가 발전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과연 그런가 ?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일본 등이 위에서 든 나라들보다 앞선 이유를 영어 사용 능력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 이런 초보적인 질문마저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서 영어 공용화를 발전의 전략으로 삼자고 하는 순진한 사람들이 더러 있어도 무방하지만, 국가 정책을 좌우하면 우려할 만한 사태가 벌어진다.
일본서도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주장이 제기되는데 무슨 소리냐 하고 반문할지 모른다. 일본에서는 일본어를 없애고 영어를 국어로 하자는 말까지 한다. 그러나 일본은 쉽사리 변하지 않는 나라여서 그런 소리가 흥밋거리 노릇을 한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이든지 화끈하게 밀어붙이는 제왕의 권력이 자주 발동되어 걱정이다. 개혁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무엇이든지 해도 좋다고 우기는 풍조가 새로운 우려를 자아낸다. 만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바다를 막듯이 영어 공용화를 추진해 큰 참사가 벌어질 수 있다.
정책 결정에는 연구가 선행해야 한다. 세계화는 세계를 아는 데서 시작된다. 무식이 용기인 시대는 지났다. 공용어를 둘로 하자는 것이 무식의 극치를 이루는 발상이다. 국어가 확립되어 있으면서 외국어를 또 하나의 공용어로 삼은 나라는 이 지구상에 하나도 없다. 국어가 둘이어서 이중의 공용어를 사용하는 나라는 견디기 어려운 혼란과 고통을 겪는다.
영어를 공용어로 하면 영어를 잘 할 수는 있는 것은 아니다. 영어를 잘 하면 영어를 공용어로 할 수 있으나, 그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손해가 더 크다. 영어를 아주 잘 하는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 같은 나라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삼지 않는다. 영어를 잘 못하면서 영어를 공용어로 하려고 하면 감당하기 어려운 낭비와 혼란을 겪는다. 그런 모험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
영어는 외국어이다. 외국어를 공부하는 방법은 모국어와 다르다. 모국어는 자연적인 습득, 외국어는 인위적인 학습의 방법을 사용해 배운다. 지금까지 해온 영어 공부 방법을 매도하고 아이들을 원어민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은 잘못이다.
영어 잘하는 스웨덴 등도 공용어 삼지 않는다
모국어가 영어와 비슷한 유럽 각국 사람들이 영어를 배우는 방법은 그 나름대로의 특징이 있다. 영어를 말하지 못하면서 읽을 수 있게 공부한 것은 일본인다운 슬기를 살린 창안이다. 그 둘 가운데 하나를 택하는 해답을 바꾸면 새로운 해결책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다른 여러 사례까지 포함해 세계인의 영어 학습에 대해 광범위한 비교연구를 하면서 우리에게 맞는 최상의 방법을 찾아 실행해야 한다.
세계화에 슬기롭게 참여하려면 우리가 더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우리문화를 계승하고 재창조하는 주체적인 능력이 경쟁력이다. 창조의 성과를 영어로 옮겨 밖으로 내놓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 우리가 쓰기에 좋은 물건을 잘 만들어야 수출을 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세계인의 영어공부 비교연구도 국내용으로 소중히 기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널리 환영받을 수출품이다.
조동일/서울대학교 교수 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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