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물의 경제와 돈의 경제
국제 규모의 튤립 축제가 네덜란드와 터키, 미국과 캐나다 등에 걸쳐 이달부터 연이어 열린다. 튤립은 ‘시장가격 거품’을 일컫는 대명사로도 사용되곤 한다. 그것은 17세기 초 네덜란드에서 벌어진 튤립 매니아(tulip mania)에서 연유한다.
사람들은 몇 덩어리의 튤립 구근(산 뿌리)을 갖기 위해 땅이나 집 문서, 심지어 가축까지 내놓았다. 당시 근로자 연간 평균소득이 150플로린 정도였는데 튤립 한뿌리가 1000~2000플로린에 거래되었기 때문이다. 돈 계산에 밝다는 화란인들 사이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불가사의하기만 하다.
1636년에는 튤립이 네덜란드 증권거래소에 상장되기에 이르렀고 바로 다음해 몇몇 상인들이 튤립을 처분하기 시작하자 십수년에 걸쳤던 거품은 이내 꺼졌다. 이미 인도되지 않은 모든 계약은 집행불능 상태가 되었고 많은 개인들이 큰 피해를 입은 것은 물론 그 후 수년 간에 걸친 불황의 원인이 되었다.
비관적 세계경제전망
금세기 최고의 투기꾼이라는 77세의 조지 소로스는 최근 ‘금융시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는 책에서 이번 미국의 주택 및 금융위기 상황을 재귀성(再歸性 ; reflexivity)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조명한다.
집을 사려는 사람이 많으면 집값이 오르고 이 집을 담보로 제공하면 더 많은 융자를 받을 수 있다. 융자가 쉬워지면 더 많은 사람이 집을 사려고 한다. 주택가격 상승과 은행대출의 증가라는 두 변수가 이러한 상호작용을 반복하게 되면 시장은 일정한 균형을 상실한 채 한 방향으로 치우친 발전을 한다.
이것이 재귀성 이론의 줄거리다. 나아가 그는 미국의 금융당국이 이러한 재귀성을 간과함으로써 시장을 지나치게 신뢰하는 시장근본주의(market fundamentalism)에 빠졌고 그 때문에 오늘날의 파국이 생겼다고 비난한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 주요국의 관심이 지난 십년 간 온통 인플레이션에 쏠려 있었고 일단 인플레이션의 징후가 미미하다는 판단 아래 저금리 기조를 오래 끌어왔던 것은 사실이다. 또 이 기간 중에 주택가격과 금융시장의 쌍둥이 거품이 발생한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이 쌍둥이 거품이 언제 해소되느냐인데 둘 다 만만치 않다는 것으로 여러 전문가들의 견해가 모아지고 있다.
IMF는 지난 9일 세계경제전망 보고서를 내놓으면서 불과 3개월 전의 예상을 더 비관적으로 수정했다. 금년에는 경기가 계속 위축되어 4분기에는 작년 4분기 대비 0.7%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종합적으로는 금년 0.5%, 내년 0.6%의 GDP성장을 전망했지만 이는 잠재 성장률을 밑도는 것으로 미국 경제가 적어도 2009년 말까지는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미국의 10대 수도권 주택가격도 이미 2년 전에 비해 평균 12% 하락했지만 앞으로 1년 후 14%에서 22%까지 더 하락할 것이며 금융기관들의 부실자산도 아직 절반 정도밖에 손실처리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을 제시한 연구기관도 있다.
금년 11월 최종 선거를 거쳐 내년 1월에 취임할 미국의 새 대통령은 이처럼 가장 침체된 경제를 숙제로 떠안게 된다. 어느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새 행정부는 국제정치보다는 국내경제로 내향적 치중을 할 것이고 다분히 포퓰리즘과 보호무역 방향으로의 선회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움직임이 세계경제에 드리우는 그림자는 이제 피하기보다는 대비해야 할 상황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불황기에는 실물경제적 시각이 필요해
불황은 자기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80년대 이후 선진국 경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금융산업의 번창이라고 한다. 월 스트리트의 금융회사 시가총액이 8%에서 20%로 늘어난 것이 이를 입증한다.
지난 10년 간 영국과 미국의 집값이 각각 214% 및 135% 증가한 배후에는 실물경제의 영역을 벗어난 ‘돈의 경제’가 있었을 것이다. 빚을 내어 새 집을 장만하는 것은 실물경제지만 집을 사고팔아 가치증식 수단으로 삼았다면 이는 다른 재테크와 마찬가지로 돈의 경제가 된다.
산업생산, 고용, 실질소득 등은 실물경제의 지표로서 모두 국민소득과 직결된다. 그런데 새 책을 사는 데 지출된 돈은 국민소득으로 계산되지만 헌 책을 산 돈은 국민소득으로 계상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새 집 마련에 지출된 돈은 그 나라의 GDP를 증가시키지만 전매된 집은 그렇지 않다. 전자는 실물의 경제요 후자는 돈의 경제다.
주식시장에서 오고 간 돈도 그 자체로는 GDP와 무관하다. 주식거래에서 얻은 이익은 그 것으로 다른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사용될 때 비로서 국민소득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불황기일수록 돈의 경제보다 실물의 경제를 중요시해야 한다고 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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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규모의 튤립 축제가 네덜란드와 터키, 미국과 캐나다 등에 걸쳐 이달부터 연이어 열린다. 튤립은 ‘시장가격 거품’을 일컫는 대명사로도 사용되곤 한다. 그것은 17세기 초 네덜란드에서 벌어진 튤립 매니아(tulip mania)에서 연유한다.
사람들은 몇 덩어리의 튤립 구근(산 뿌리)을 갖기 위해 땅이나 집 문서, 심지어 가축까지 내놓았다. 당시 근로자 연간 평균소득이 150플로린 정도였는데 튤립 한뿌리가 1000~2000플로린에 거래되었기 때문이다. 돈 계산에 밝다는 화란인들 사이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불가사의하기만 하다.
1636년에는 튤립이 네덜란드 증권거래소에 상장되기에 이르렀고 바로 다음해 몇몇 상인들이 튤립을 처분하기 시작하자 십수년에 걸쳤던 거품은 이내 꺼졌다. 이미 인도되지 않은 모든 계약은 집행불능 상태가 되었고 많은 개인들이 큰 피해를 입은 것은 물론 그 후 수년 간에 걸친 불황의 원인이 되었다.
비관적 세계경제전망
금세기 최고의 투기꾼이라는 77세의 조지 소로스는 최근 ‘금융시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는 책에서 이번 미국의 주택 및 금융위기 상황을 재귀성(再歸性 ; reflexivity)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조명한다.
집을 사려는 사람이 많으면 집값이 오르고 이 집을 담보로 제공하면 더 많은 융자를 받을 수 있다. 융자가 쉬워지면 더 많은 사람이 집을 사려고 한다. 주택가격 상승과 은행대출의 증가라는 두 변수가 이러한 상호작용을 반복하게 되면 시장은 일정한 균형을 상실한 채 한 방향으로 치우친 발전을 한다.
이것이 재귀성 이론의 줄거리다. 나아가 그는 미국의 금융당국이 이러한 재귀성을 간과함으로써 시장을 지나치게 신뢰하는 시장근본주의(market fundamentalism)에 빠졌고 그 때문에 오늘날의 파국이 생겼다고 비난한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 주요국의 관심이 지난 십년 간 온통 인플레이션에 쏠려 있었고 일단 인플레이션의 징후가 미미하다는 판단 아래 저금리 기조를 오래 끌어왔던 것은 사실이다. 또 이 기간 중에 주택가격과 금융시장의 쌍둥이 거품이 발생한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이 쌍둥이 거품이 언제 해소되느냐인데 둘 다 만만치 않다는 것으로 여러 전문가들의 견해가 모아지고 있다.
IMF는 지난 9일 세계경제전망 보고서를 내놓으면서 불과 3개월 전의 예상을 더 비관적으로 수정했다. 금년에는 경기가 계속 위축되어 4분기에는 작년 4분기 대비 0.7%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종합적으로는 금년 0.5%, 내년 0.6%의 GDP성장을 전망했지만 이는 잠재 성장률을 밑도는 것으로 미국 경제가 적어도 2009년 말까지는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미국의 10대 수도권 주택가격도 이미 2년 전에 비해 평균 12% 하락했지만 앞으로 1년 후 14%에서 22%까지 더 하락할 것이며 금융기관들의 부실자산도 아직 절반 정도밖에 손실처리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을 제시한 연구기관도 있다.
금년 11월 최종 선거를 거쳐 내년 1월에 취임할 미국의 새 대통령은 이처럼 가장 침체된 경제를 숙제로 떠안게 된다. 어느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새 행정부는 국제정치보다는 국내경제로 내향적 치중을 할 것이고 다분히 포퓰리즘과 보호무역 방향으로의 선회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움직임이 세계경제에 드리우는 그림자는 이제 피하기보다는 대비해야 할 상황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불황기에는 실물경제적 시각이 필요해
불황은 자기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80년대 이후 선진국 경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금융산업의 번창이라고 한다. 월 스트리트의 금융회사 시가총액이 8%에서 20%로 늘어난 것이 이를 입증한다.
지난 10년 간 영국과 미국의 집값이 각각 214% 및 135% 증가한 배후에는 실물경제의 영역을 벗어난 ‘돈의 경제’가 있었을 것이다. 빚을 내어 새 집을 장만하는 것은 실물경제지만 집을 사고팔아 가치증식 수단으로 삼았다면 이는 다른 재테크와 마찬가지로 돈의 경제가 된다.
산업생산, 고용, 실질소득 등은 실물경제의 지표로서 모두 국민소득과 직결된다. 그런데 새 책을 사는 데 지출된 돈은 국민소득으로 계산되지만 헌 책을 산 돈은 국민소득으로 계상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새 집 마련에 지출된 돈은 그 나라의 GDP를 증가시키지만 전매된 집은 그렇지 않다. 전자는 실물의 경제요 후자는 돈의 경제다.
주식시장에서 오고 간 돈도 그 자체로는 GDP와 무관하다. 주식거래에서 얻은 이익은 그 것으로 다른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사용될 때 비로서 국민소득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불황기일수록 돈의 경제보다 실물의 경제를 중요시해야 한다고 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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