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해도 가난'' 근로빈곤층 400만명]병수발·보육 때문에 구직이 어렵다

3. 일자리가 필요한 근로능력자들

지역내일 2008-01-21
남편 산재로 일해야 하는 ‘가정주부’ 김영희씨

“남편이 일 나갔다 다쳐서 몸져 누운 3개월동안 소득이 하나도 없었어요. 남편 병수발해야 하고 애들 돌봐야 하기 때문에 일도 나갈 수가 없었어요.”
‘가정주부’인 김영희(가명·49·서울 은평구)씨는 일을 나갈 수도 그냥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형편이다. 가장이 아파서 일을 할 수 없어 자신이라도 벌이를 해야 하지만 조건에 맞는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김씨를 만난 곳은 서울 은평구 한 동사무소 복지상담실이다. 날씨가 영하 10도 가까이 떨어진 때라 김씨는 두꺼운 잠바와 모자를 눌러쓰고 상담실에 들어섰다. 병원에 갔다오던 길인 김씨는 추위에 민감해했다.
“고혈압을 앓고 있어서 매일 두알씩 약을 먹고 있어요. 오늘 혈압이 180에 가깝다고 하더군요.” 추운 날씨는 고혈압 환자에겐 좋지 않다. 인터뷰 때문에 일부러 동사무소로 나오게 한 게 미안했다.
애초 김씨의 집으로 찾아가려 했으나 김씨는 한사코 손을 저었다. 남편도 몸이 좋지 않고 아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됐기 때문이었다. 김씨는 공공임대아파트에서 두 아이 지은(가명·여·11) 수철(가명·9) 두 아이와 남편 등 네 식구와 살고 있다.

◆가난의 시작, IMF 여파와 카드빚 = 김씨 형편이 이렇게 나빠진 원인을 거슬러 올라보면 IMF(국제통화기금) 사태와 과다한 카드 빚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국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두 가지 사건은 아직도 우리에게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는 것을 김씨 가정형편에서도 알 수 있다.
“정규직이던 남편이 IMF이후 일용직으로 바뀌면서 가세가 크게 기울었습니다. 일도 거의 없었습니다. 백만원이라도 일정하게 수입이 있었으면 계획이라도 짜겠는데….”
남편의 수입은 일정치가 않았다. 어떤 때는 200만원도 되기도 했지만 대부분 일나가지 않은 날이 더 많았다.
김씨는 IMF 이후 부족한 생활비를 보충하기 위해 카드빚을 썼다. 만기일이 다가오면 다른 카드로 막는 카드 돌려막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러면 안된다고 생각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결국 돌려막기를 하다 이자와 원금이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돌려막기도 한계에 이르렀다.
“5개월 정도 카드사로부터 빚독촉을 받을 때는 자살할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매일 전화오고 독촉장이 와서 결국 애들도 왜 그러느냐고 물어올 정도였지요. 그 동안 낸 이자가 원금보다 많았는데….”
김씨는 우선 카드빚부터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해 카드사를 찾아가 담판을 지었다. “한달에 60만원씩 3년동안 갚는 것으로 하고 정리했습니다. 힘들긴 하지만 빚 독촉 전화가 안오니 살 것 같더군요.”

◆남편의 사고 = 그는 한때 파산신청도 생각했지만 애들도 어리고 그것까지는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지난해 3월 남편이 갑작스런 사고를 당했다.
건설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던 어느날 남편의 머리위로 크레인줄이 덮쳤다. 다행히 머리뼈는 다치지 않았지만 목뼈와 어깨뼈 등이 여러 곳이 부러졌다. 남편은 70일 동안 누워있었다. 병원에서는 일년정도 일을 하기 힘들다고 했다. 목디스크 가능성도 남아있는 상태다.
남편이 다친지 5개월뒤인 지난 7월 다행히 산재신청이 받아들여졌다. 소득이 하나도 없던 김씨 가족에게 단비같은 소식이었다. 겨우 생계를 연명할 정도는 된 것이다. 하지만 카드빚과 임대아파트 관리비 등을 내고 나면 채 100만원도 남지 않는다.

◆보육문제 해결 안되면 일하기 어려워 = 김씨는 남편이 누워있는 동안 일자리를 찾았다. 결혼 이후 일을 하지 않은 김씨에게는 쉽지 않았다.
제일 걸리는 문제는 아이들 육아문제였다. 주변에 마땅히 애들을 맡길 때가 없는 김씨로서는 일이 일찍 끝나는 일을 찾아야 했다. 응석받이인 막내아들이 엄마가 늦게 들어오는 것을 특히 싫어했다. 학교를 안가겠다고 떼를 쓰기도 했다. 큰 딸이 작은 애 공부를 봐주긴 했지만 엄마의 자리를 채우지는 못했다. 안심하고 늦게까지 애를 맡아줄 수 있는 데가 필요한 것이다.
김씨는 새 일자리로 산모도우미 신청을 했지만 이 일은 아침에 나가서 저녁 늦게 들어오기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건강이 나빠지면서 가까이 있는 것을 보지 못한다. 돋보기 없으면 바늘귀에 실을 꿰지 못할 정도다.
“일을 할 수 있으면 하고 싶습니다. 애들 가르치려면 많이 벌어야잖아요.” 그도 여느 부모처럼 교육에 대한 걱정이 많다. 다른 집 애들처럼 학원에 보내지 못하는게 항시 마음에 걸렸다.

◆“도움받은 것 잊지 않을 것” = 김씨는 기초생활수급자는 아니지만 가장이 일을 계속 하지 못하게 되면 소득이 거의 없게 돼 빈곤층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가정주부인 김씨는 때에 따라 경제활동인구와 비경제활동인구를 넘나든다. 일을 하지 않을 때는 가정주부이지만 일을 할 때는 취업자가 된다.
김씨는 지난해 공공근로를 신청해 3개월정도 일한 적이 있다. 하루 2만1000원 일당에 16일정도 일했다. 수입은 적지만 일찍 끝나기 때문에 일을 할 수가 있었다.
골목 청소를 하는 엄마를 창피하다고 할까봐 김씨는 애들에게 미리 말을 했다. “골목골목을 깨끗이 청소하는 일이다. 열심히 사는 것이기 때문에 창피한 일이 아니란다”라고.
김씨는 가구 주소득자의 질병이나 가출 등의 이유로 어려움을 겪는 가정에게 주어지는 긴급지원제도를 우연히 알게됐다. 동사무소를 찾은 김씨는 긴급지원을 받기도 했다. 실사를 받은 김씨는 3개월동안 생계비를 지원받았다.
이러저러한 도움을 받은 김씨는 “긴급지원을 받고 보니 세상이 너무 고마웠다”며 “우리도 조금 형편이 풀리면 어려운 사람 도우며 살자고 남편과 다짐했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같은 층에 혼자 사는 할머니 집을 자주 들여다본다.
김씨는 또 “돈이 없는 게 자랑은 아니지만 노력해도 안되는 게 있다”며 “지금 있는 좋은 정책이라도 소외계층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잘 알리고 개선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공부방 지원금도 수요자가 필요로 하는 곳에 쓸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지자체에서 지정하는 공부방에 다닐 때만 지원금이 나온다. 영어학원과 같은 다른 곳으로 보내면 지원을 받을 수 없다.
은평구 자원봉사자 조정실씨는 “김씨처럼 갑작스럽게 어려워지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며 “이들이 자신에 맞는 일자리를 찾고 소득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씨는 또 “꼭 지원을 받아야할 가구가 몇가지 규정이나 제한 때문에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범현주 기자 hjbeom@naeil.com

■긴급지원제도란
갑작스런 생계곤란 가구에 신속지원

주부 김영희씨가 받은 긴급지원제도는 가구의 주소득자가 갑자기 사망하거나 가출한 경우, 또는 가구구성원의 질병이나 학대 폭력 화재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곤란해졌을 때 정부로부터 신속히 도움을 받는 제도이다.
이 제도는 지난 2006년 3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먼저 경제적 위기로 인해 생계비가 필요한 경우 가구규모별로 공표하는 최저생계비의 100%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급받을 수 있다.
애초 최저생계비 60%까지였으나 2006년말부터 지원수준이 올라갔다.
현행 적정성 심사기준은 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30% 이하이고 재산은 대도시 9500만원, 중소도시 7750만원, 농어촌 7250만원 이하여야 한다.
긴급지원이 필요한 경우 보건복지콜센터(국번없이 129)나 시군구(사회복지과)로 지원요청을 하면 간단한 현장확인을 거쳐 우선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소득·재산조사와 지원의 적정성 심사는 나중에 실시한다.
이 지원은 생계비뿐만 아니라 의료·주거 서비스 등도 해당한다. 임시로 거처할 수 있는 주거지나 사회복지시설 입소 또는 이용이 필요한 때 지원받을 수 있다.
보통 1개월 또는 1회 지원이 원칙이지만 위기상황이 계속될 경우 생계지원 등은 최장 4개월까지, 의료지원은 2회까지 받을 수 있다.
범현주 기자 hjbeo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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