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항(51) 원사의 3년여 도피 행각을 배후에서 지원한 세력은 누구일까.
병역비리 ‘몸통’으로 지목되면서 98년 6월 종적을 감춘 박 원사가 무려 3년여 동안 수사당국의 감
시망을 따돌리며 아파트 등지에서 은거해온 사실이 밝혀지자 박 원사에게 도피처와 자금을 제공한
배후 세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 원사가 정·재·관·언론계 등 사회 주요지도층 자녀들의 병역
면제 과정에 핵심 역할을 한 점으로 미뤄 병무비리 전말이 드러나는 것을 꺼린 이들 지도층 인사들
이 박 원사의 도피 배후세력으로 활동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병역비리 사건은 또다
른 뇌관으로 비화돼 걷잡을 수 없는 파문이 일 것으로 보인다.
군 검찰은 일단 박 원사의 도피 및 은신생활을 가족들이 주로 지원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도
피 기간이 3년에 걸친 장기간이란 점과 수사 당국의 감시 눈길이 가족들에게 집중된 상황에서 이들만
의 지원으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특히 박 원사가 검거직전까지 거주했던 동부이
촌동 현대아파트 전세자금이 1억여원이 넘어 생활비 등 3년 동안의 막대한 도피자금을 가족들이 조달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내연의 여인 지원설= 따라서 박 원사가 종적을 감출 당시부터 나돌았던 내연의 여인들과 박 원사
의 친구인 승려 함월(속명 김명훈·45)의 도피지원설이 우선 주목된다. 박 원사는 80년대 초반 이혼
한 후 카바레나 병역면제 청탁과정에서 만난 연인 10여명과 내연의 관계를 맺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중 박 모(61)씨는 수십억원으로 추정되는 박 원사의 재산을 관리하며 은신생활을 도와주었을 것으
로 군 검찰은 추정하고 있다.
특히 검찰 조사과정에서 박 원사와 내연의 관계로 밝혀진 서울 모호텔 사장 부인의 역할이 주목된
다. 검찰이 박 원사 도피혐의로 구속시킨 최 모(50)씨를 조사하면서 최씨가 이 부인과 수시로 연락하
며 최 원사 도피를 도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부인은 자신과 친분이 있는 고위층 부인들을 박 원사
에게 소개시켜주었고 그중 상당수가 병역을 면제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박 원사와 호형호제
하며 도피 당시 최측근으로 지목된 승려 김씨(지난해 구속)도 박 원사의 재산을 위탁관리하며 도피생
활을 지원한 유력한 용의자로 꼽힌다.
◇정·재계 등 사회지도층= 박 원사 도피 배후설의 가장 핵심적인 의혹이다. 박 원사는 87년∼98년 5
월까지 11년 동안 국군수도통합병원 헌병대에 근무했는데 15대 국회의원 27명의 아들 31명 가운데 상
당수가 이 병원에서 정밀심사를 통해 병역면제 판정을 받았다. 당시 박 원사는‘000의원의 아들 00’
라는 메모를 담당 군의관에게 전달하며 면제판정을 청탁할 정도여서 정치인들과 상당한 친분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분석된다. 정치인 자제들은 사회관심자원 리스트로 분류돼 병역면제를 받을 경우 받
드시 국군수도통합병원의 정밀검사를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 원사는 수배 한해전인 97년 10월 당시 여당 중진 ㅈ의원 보좌관 등 2명과 술자리를 같이하
는 자리에 98년 고위층 자제 병무비리 혐의로 구속된 군의관 임 모, 김 모 소령도 합석했던 것으로 드
러났다. 〈본보 지난해 11월 9일자 참조〉 특히 임 소령은 박 원사가 ㅈ의원 보좌관과 함께 이전에도
3∼4차례에 걸쳐 식사를 한 적이 있다고 검찰 조사에서 진술해 박 원사의 구여권 정치인들과 친분 정
도를 짐작케한다.
◇전·현직 군의관= 박 원사가 주로 쓴 병역면제 수법은 청탁자의 신체감정 CT필름을 다른 사람 것
과 바꿔치기 하거나 허위진단서를 발급받는 것. 이 과정에서 군이 지정한 대학병원과 종합병원 의사
들은 물론 군의관과 공모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합수부 수사 결과 병무비리 시장을 군인은 박 원
사, 민간인은 최경희(전 강남구청 병사계장)씨가 평정했다고 할 정도로 박 원사의 ‘실력’을 다른
브로커들이 인정하게 된 동기도 자신들이 하지 못하는 군의관들과 직거래를 박 원사가 척척 성사시
켰기 때문. 이 과정에서 어떻게든 박 원사에게 발목이 잡힌 전·현직 군의관들이 박 원사 도피생활
에 물질적 도움을 제공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박 원사는 서울 신화병원(원장 이종출)에서 군 면제에 필요한 허위 CT필름 및 진단서를 주로
발급받았는데 이 병원 원장 이씨는 예비역 군의관으로 수도병원에서 근무할 당시 박 원사와 친분을
맺고 93년 전역한후에는 병역비리 공모 과정에 개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이 병원 박홍기 방사선
실장은 98년 5월 도피중인 박 원사와 서서울 호텔에서 만난 사실이 수사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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