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모를 내부모처럼 모셨습니다. 남편이 사고당했을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지만 이 악물고 헤쳐나왔고, 지금은 아이들이 바르게 자라는 모습 보며 삽니다.”
시집온지 2년만에 위암에 걸린 시아버지의 뒷수발을 하고 충격으로 하반신 마비에 걸린 시
어머니의 대소변 받기를 16년. 급기야 사고로 누워버린 남편을 대신해 생계를 꾸려야 했던
윤금란(40·풍산읍 소산1리)씨. 윤씨는 그간의 효행을 인정받아 이번 지난 6일에 있은‘제10
회 아산효행대상’에서 효친부문 대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게 돼 상패와 상금 2천만원을
받았다.
윤씨는 지난 1982년 2남5녀의 장남인 가난한 농촌총각과 결혼해 남의 집 농사를 지어주며
받은 품값과 정미소 직원으로 있던 남편의 월급으로 근근히 생활하며 시동생 공부 뒷바라지
와 연로한 시부모를 공양해왔다.
그러던 중 위암으로 위독해진 시아버지와 중풍으로 쓰러진 시어머니의 대소변을 받아가며
지극정성으로 간호했다. 시어머니로부터 영험하다는 멀리 담양 구인사로 찾아가 기도를 드
리면 병이 나을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지만 형편이 어려워 소원을 들어주지 못한 것이 가슴
으로 한으로 남는다고 한다. 시누이가 시집갈 때 시부모님이 다 환자라 결혼준비를 혼자 다
하고 결혼식장에서는 혼주석에 남편과 나란히 앉아 시부모님을 대신할 때는 눈물이 나 고개
를 들 수 없었다고 한다.
윤씨는 지난 1990년도에 시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자신이 잘못 모신 것이라 자책하며 시어머
니를 더욱더 정성껏 모셨다. 혹시라도 손님이 와서 냄새가 난다고 할까봐 시어머니 몸을 매
일같이 목욕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허름한 집이지만 청결한 가정을 꾸밀려고 많이 노력했다.
하늘도 무심한 듯 엎친데 덮친격으로 남편이 사고를 당해 몸져 눕게 되자 윤씨는 눈앞이 캄
캄했다. 그러나 슬픔도 잠시 이 악물고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낮에는 남편과 시어머니를
돌보는 틈틈이 밖에나가 잡일을 했으며 밤에는 환자들의 피고름묻은 환자복을 빨래하며 억
척스럽게 생계를 꾸려나갔다. 지금은 1300여평의 자기 땅도 생겼으며, 아이들도 이런 어머니
의 효행에 감복했는지 ‘경상북도 과학발명품대회’와 ‘단소경연대회’에 참가해 은상을
수상하는 등 어머니의 어깨를 가볍게 해주고 있다. 이제는 아이들이 바르게 크는 모습을 보
며 산다고 말하는 윤씨 이번 그녀의 효행대상 수상은 백번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만큼 그녀
의 깊은 효심은 지역민들의 가슴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시집온지 2년만에 위암에 걸린 시아버지의 뒷수발을 하고 충격으로 하반신 마비에 걸린 시
어머니의 대소변 받기를 16년. 급기야 사고로 누워버린 남편을 대신해 생계를 꾸려야 했던
윤금란(40·풍산읍 소산1리)씨. 윤씨는 그간의 효행을 인정받아 이번 지난 6일에 있은‘제10
회 아산효행대상’에서 효친부문 대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게 돼 상패와 상금 2천만원을
받았다.
윤씨는 지난 1982년 2남5녀의 장남인 가난한 농촌총각과 결혼해 남의 집 농사를 지어주며
받은 품값과 정미소 직원으로 있던 남편의 월급으로 근근히 생활하며 시동생 공부 뒷바라지
와 연로한 시부모를 공양해왔다.
그러던 중 위암으로 위독해진 시아버지와 중풍으로 쓰러진 시어머니의 대소변을 받아가며
지극정성으로 간호했다. 시어머니로부터 영험하다는 멀리 담양 구인사로 찾아가 기도를 드
리면 병이 나을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지만 형편이 어려워 소원을 들어주지 못한 것이 가슴
으로 한으로 남는다고 한다. 시누이가 시집갈 때 시부모님이 다 환자라 결혼준비를 혼자 다
하고 결혼식장에서는 혼주석에 남편과 나란히 앉아 시부모님을 대신할 때는 눈물이 나 고개
를 들 수 없었다고 한다.
윤씨는 지난 1990년도에 시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자신이 잘못 모신 것이라 자책하며 시어머
니를 더욱더 정성껏 모셨다. 혹시라도 손님이 와서 냄새가 난다고 할까봐 시어머니 몸을 매
일같이 목욕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허름한 집이지만 청결한 가정을 꾸밀려고 많이 노력했다.
하늘도 무심한 듯 엎친데 덮친격으로 남편이 사고를 당해 몸져 눕게 되자 윤씨는 눈앞이 캄
캄했다. 그러나 슬픔도 잠시 이 악물고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낮에는 남편과 시어머니를
돌보는 틈틈이 밖에나가 잡일을 했으며 밤에는 환자들의 피고름묻은 환자복을 빨래하며 억
척스럽게 생계를 꾸려나갔다. 지금은 1300여평의 자기 땅도 생겼으며, 아이들도 이런 어머니
의 효행에 감복했는지 ‘경상북도 과학발명품대회’와 ‘단소경연대회’에 참가해 은상을
수상하는 등 어머니의 어깨를 가볍게 해주고 있다. 이제는 아이들이 바르게 크는 모습을 보
며 산다고 말하는 윤씨 이번 그녀의 효행대상 수상은 백번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만큼 그녀
의 깊은 효심은 지역민들의 가슴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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