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회 국장) 국장님, 지금 어딥니까. 그렇게 숨어 다닌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만납시다.
(고 장래찬 국장) 김 국장, 잠실운동장 안에서 만나지.
(김중회 국장) 국장님, 이 야밤에 잠실운동장 안에서 왜 만납니까.
김 국장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왜 하필 잠실운동장 안이지?’ 그 넓은 곳에서 사람을 어떻게 찾을 것이며, 그것도 캄캄한 밤에 말이다. 김국장과 고장래찬 국장은 그날 강남의 모호텔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전화를 끊었다. 장국장에게서 또 전화가 걸려왔다.
“김 국장, 호텔 커피숍에서 만나면 사람들 눈도 있고 해서…. ”
“그 호텔 지하 주차장에서 만나지”
“알겠습니다. 국장님. 그럼 주차장 1층에서 만나죠”
지난해 10월, 당시 언론은 동방금고 불법대출 사건에 장래찬 전비은행검사1국장이 연루돼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금감원이 비리사실을 감추기 위해 장국장을 빼돌려놓고 말을 맞추고 있다고 보도했다. 금융감독원은 장씨를 불법대출과 조직적 비호 의혹에 열쇠를 쥔 인물로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도피를 방조한 듯한 의심을 받았다.
김 국장은 장래찬 국장을 반드시 만나야만 했다. 온갖 의혹과 따가운 시선이 금감원, 특히 비은행검사1국에 쏠려 있는 상황에서, 어찌됐건 당시 비은행검사1국장은 김중회였기 때문이었다.
“완력을 써서라도 잡아와라”
장 국장과 전화통화를 끝낸 김 국장은 부하직원인 구광본 팀장, 검사실장, 그리고 다른 국 직원 3명‘장국장 체포조(?)’를 만들었다. 구광본 팀장은 재경부 주사시절과 신용보증기금에서 죽은 장국장과 같이 근무한 적이 있어 장 국장이 검찰에 자진출두하도록 설득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당시는 언론이나 검찰뿐만 아니라 금감원 내부에서도 장국장을 찾아내기 위해 혈안이 돼 있었다. 김 국장은 다급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금감원 상층부로부터 “장국장을 반드시 만나, 검찰에 출두하도록 설득하고, 안되면 완력을 써서라도 서울지검 특수부에 넘기라”는 명령을 받은 상태였다.
‘장 국장 체포조’는 결국 장전국장을 만나지 못하고, 그해 10월 31일 장씨가 신림동 모여관에서 목숨을 끊었다는 뉴스를 접해야 했다.
왜 죽었을까. 그의 죄과가 과연 죽음으로 갚아야 할 정도도 무거운 것이었는지 아직 정확한 판단근거는 없다. 김중회 국장 역시 그의 죽음을 헤아릴만한 명확한 이유를 아직 찾지 못했다고 한다.
만일 장국장이 조직의 비리를 감추기 위할 생각이었다면 절대 죽음을 택하진 않았을 거라는 게 김 국장의 생각이다.
김국장! 당신은 공인(公人)이요.
지난해 11월 24일, 동방금고 사건이 채 마무리되기도 전에 열린금고 진승현 사건이 터졌다. 금고업계를 책임지고 있는 비은행검사1국장으로서 김 국장은 언론의 집중포화의 최전선에 서 있어야 했다.
열린금고 사건이 터진 직후인 11월 25일 금감원 기자실에서 작은 해프닝이 있었다. 김 국장이 기자실을 들러 몇몇 기자들이 제기한 의혹에 대해 해명하는 자리에서 벌어진 일이다.
당시 몇몇 기자들은 금감원이 열린금고 진승현씨가 거액의 출자자 대출을 발견하고도 제재가 늦었다며 김 국장에게 해명을 요구했다. 김 국장은 진승현씨가 대출금을 갚기 위해 한미은행에 돈을 입금한 입금전표를 들고 기자들에게 ‘금감원이 고의로 제재를 늦춘 게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 때 마침 금감원 기자실 맞은편에서는 금감원에 대한 국정감사가 열리고 있었다. 김중회 국장이 기자실에 왔다는 소식을 들고 국감장에 있던 모방송국 카메라 기자가 기자실로 와 김 국장에게 카메라를 들이대자 김 국장은 “저에게도 초상권이 있습니다. 카메라 치우지 않으면 설명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해버린 것이다.
‘온 나라가 금고 대주주들의 불법에 귀를 세우고 있는데, 조사책임을 맡고 있는 국장이 초상권 운운하다니….’기자들의 비난이 빗발쳤다. “김 국장, 당신이 지금 사인(私人)으로 이 자리에 온 것이오? 당신은 공인(公人)이오.” 김 국장은 그때 사건(?)을 이렇게 해명했다.
“그 때 저는 어떤 사안에 대해 공식 발표하기 위해 기자실을 간 게 아니었습니다. 몇몇 기자들이 제기한 문제에 대해 그 분들에게 해명한다는 생각이었죠. 그런데 어떻게 하다보니 공식적인 발표를 하는 것처럼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저도 법학을 전공했는데, 초상권을 모르겠습니까. 제가 그 때 신경이 곤두서 있었던 모양입니다.”따져보면 별일 아니었지만 그 사건은 금고검사 규정을 바꾸는 계기를 제공했다.
그전에는 금고의 대주주가 출자자 불법대출을 저질러도 금감원의 제재심의위원회가 열리기전에 출자자 대출금을 갚으면 제재를 안하도록 하는‘재제감경’조치가 있었다. 정현준씨나 진승현씨와 같은 금고 대주주들은 이 규정을 교모하게 이용했다.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금고에서 불법으로 대출을 받고, 금감원 검사에서 지적되더라도 제재심의위윈회가 열리기 전에 갚는 수법으로 불법대출을 반복했다.
기자실에서 벌어진 해프닝도 사실 이 규정 때문이었다. 언론은 김 국장에게 불법대출을 적발하고도 금감원이 왜 제재를 하지 않았느냐고 의문을 던진 것이었다. 김 국장이 언론으로부터 질타를 당한 것도 바로 이부분이었다. 불법대출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했다는 지적이었다. 언론의 지적은 맞았다.
김 국장은 재제감경조치를 없애버렸다. 금고의 대주주가 출자자대출을 하고, 갚는 수법으로 불법대출을 반복하면 곧바로 제재를 받도록 규정을 바꿨다.
“지는 게임이라도 원칙 지키겠다”
김 국장은 지난달 27일 이상한 편지 한통을 받았다. “금고의 합병과 통합을 추진하고 있는 당신은 역사의 죄인입니다”라는 요지의 편지였다.
지난해 금고업계는 엄청난 구조조정 회오리 속에 있었다. 자체정상화가 어렵다고 판단된 금고에 대해 계약이전 합병유도 영업인가취소 등 조칙 내려져 50여개 금고가 없어졌다. 지난해말부터는 김 국장 주도아래 금고업계 통합이 추진되고 있다. 지역내 금고간 합병, 계열금고간 합병 등 금고업계 정상화를 위한 구조조정이 계속되고 있다. 김 국장에게 편지를 보낸 사람은 “금융은 복층구조이어야 한다”면서 “합병 통합이 능사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김 국장이 생각하는 금고 생존 방식은 두가지다. 통합과 틈새시장 공략을 통합 수익성 창출이다.
“지역금고간 통합은 올해도 계속될 것입니다. 물론 퇴출되는 금고도 나올 것입니다. 금고업계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역낸 통합 계열금고간 통합 서울과 지역간 통합 등 통합밖에 없습니다. 지난해 전현준 진승현 사건을 겪으면서 욕도 얻어먹었지만 금고업계 발전을 위해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자리에 연연하며 인기 얻을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지는 게임 하더라도 원칙만은 버리기 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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