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 칼럼>일하는 엄마의 성공적 자녀교육

지역내일 2007-04-17
일하는 엄마의 성공적 자녀교육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벤자민 스포크 박사의 ‘육아전서’ 시리즈는 지구상에서 성경 다음으로 높은 판매 부수를 기록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스테디셀러이다. 미국의 베이비 붐 세대는 바로 스포크 박사의 ‘육아전서’를 교과서 삼아 키워졌다 하여 ‘스포크 세대’라는 애칭이 붙여졌다. 그만큼 스포크 박사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자녀양육에 미친 영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 그가 9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며 세상의 엄마들을 향해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자녀양육에 왕도(王道)는 없습니다. 바로 엄마 자신이 자녀양육의 전문가입니다. 엄마 자신의 타고난 감각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소신껏 키우십시오.”
최근 출산율 감소가 이어지면서 역설적으로 모성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음은 주목할 만하다 할 것이다. 다산(多産)에 부여되던 사회적 의미가 퇴색하면서 여성의 시간을 점유하기 시작한 것이 모성이라는 점은 진정 아이러니인 셈이다.

벤자민 스포크 박사의 유언
더 더욱 흥미로운 건 바람직한 엄마 역할의 기준이 사회구조적 변화에 발맞추어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해왔다는 사실일 것이다. 일례로 ‘모성 예찬’은 어린이기(期)야말로 발달 단계상 독특한 특성을 가진다는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진 이후 이와 보조를 맞추어 진행되었다. 곧 어린이는 성인과 달리 그들만의 욕구와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만큼, 어린이의 성장 및 발달을 위해서는 각 단계별로 그에 적합한 특별 과업이 수행되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충고가 등장함에 따라, 엄마 역할에도 막중한 책임이 부과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다산이 다복을 상징하던 시대, 자녀는 ‘그저 낳기만 하면 저절로 알아서 커 주었건만’, 산업화의 진입과 더불어 자녀는 특별한 지식을 요하는 전문직 종사자로서 24시간 헌신을 요하는 전일제 엄마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덕분에 엄마는 자녀의 정서적 안정과 모나지 않은 성격, 그리고 바람직한 습관을 형성함에 아버지보다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결국 어린이기의 성장 및 발달을 주제로 과학적 연구가 축적되면서 ‘모성의 전문화’가 진행되기 시작한 셈이다. 이제 엄마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모성 본능이나 고도의 도덕성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니라 그 역할을 학습하고 훈련받아야 함을 의미하게 되었다. 나아가 모성 역할은 전문직인 만큼 여성의 취업과는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당시의 사회적 에토스를 간파한 스포크 박사는 ‘문제 엄마: 일하는 여성’이라는 제목 하에, 아이의 욕구는 즉각 충족되어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일하는 엄마의 자녀들은 엄마의 지속적 부재(不在)로 인해 정서 불안과 욕구 불만을 경험하게 되고, 부모에 대한 원망과 불신 그리고 자신을 향한 분노와 열등감을 키워나감으로써 후일 일탈과 범죄의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이 경고에도 불구하고 취업엄마가 전업엄마의 비율을 넘어 사회적 규범으로 자리잡아가기 시작하자, 엄마 역할은 예기치 않은 긴장과 이중 역할 갈등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러자 스포크 박사는 일보 후퇴하여 일하는 엄마들을 향해 다음과 같은 충고를 전해주었다. 곧 ‘전일제보다 시간제 일을 선택하는 것이 두 가지 역할을 양립하는데 무리가 없음을 주지하고, 직업적 성공이 여성 본연의 의무를 저해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하는 엄마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계속 증가하게 되자, 스포크 박사는 ‘일하는 엄마의 성공적 자녀 양육’을 위해 별도의 장을 마련하곤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아이도 훈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아이의 욕구를 즉각 충족시켜주면 참을성 없고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이기적 인성이 키워진다. 아이에겐 누군가 지속적으로 애정과 관심을 쏟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니, 일하는 엄마가 죄책감을 느낄 이유는 추호도 없다.”

애정 쏟는 사람 있으면 충분
상황이 이럴 진대도 우리네는 최근 모성 과잉으로 인해 ‘사육(飼育)당한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오는가 하면, 소아 정신과를 찾는 아이들의 발길이 빈번해지고 있다는 가슴 아픈 소식도 있다. 시류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소신껏 자녀를 키우는 신뢰할만한 엄마 모습을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인지, 답을 구하고픈 간절함이 더해오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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